아이들의 부름에 부끄럼 없도록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발을 헛디뎠을 때
정신을 놓고 있는데 누군가가 깜짝 놀라게 만들 때
영화를 보는데 무서운 장면이 순식간에 나올 때
당신의 입에선 어떤 단어가 튀어나올까?
엄마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찾는다.
태어나기 전인 뱃속에서부터 가장 먼저 유대를 쌓은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가 위험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게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됐건,
'엄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 선생님을 많이 찾는다.
엄마는 무의식에 가깝다면 선생님은 의식적으로 찾는 것이 아닐까.
WHY?
부모님이나 자신의 보호자가 교실엔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의를 구현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고, 그게 선생님일 거라고 믿는다. 교실 안에 있는 단 한 명의 어른이자, 많은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것을 골라낼 방법 그리고 정답을 알려줄 사람으로 생각한다.
나는 꽤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는 편이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도를 넘지 않는다면 최대한 재미있게 잘 어울리고 싶다.
1) 서언~생~님
누군가의 잘못을 이를 때
포인트는 '서언'이다. 길게 늘이면서도 첫 발음을 또박또박하고 크게 부른다. 말투에서부터 최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선생님을 부르는 입 말고는 모든 행동을 멈춘다. 목소리의 크기와 세기에 따라 상황의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다.
2) 선생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때
거의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쭈뼛쭈뼛 다가와서 바닥을 보며 입을 움직였다 뗐다를 반복한다. 잘못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부끄러운 일이나,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을 교사에게 알려야 할 때 사용한다.
3) 선생님!
서로 장난치면서 도움을 요청할 때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와 같이 사용한다. 정말 급박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친구들과 놀면서 웃으면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사가 반응하면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보여주는 것은 덤이다.
4) 선생님 x2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확인받고 싶을 때
특히 애교를 부릴 때도 많이 사용한다. 갑자기 교탁으로 찾아와 선생님을 부르고 꽃받침을 한다던지, 집에서 가져온 신기한 물건을 꺼내서 보여줄 때, 자신의 활동 작품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을 때 등 사용한다.
5) 선생님 x3
아주 핫한 이슈가 생겼을 때
빠르게 선생님을 부른다. 우리 반에서 커플이 생겼다, 혹은 다른 반에 어떤 아이가 누구한테 고백을 했다. 어제 누군가를 봤다, 6학년 어떤 오빠가 잘생겼다 등의 아이들만의 핫한 이슈가 생기면 나에게 전달해주기 바쁘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부름에도,
교사의 개입이 즉각적으로 필요한 부름에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 부른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그 아이를 생각하는 단 한 명의 어른만 있어도 아동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교사가 다 해주길 바라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며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순간엔 누구보다 든든하고 멋진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그 마음과 무섭지만 잘못을 말하려는 용기, 함께 놀고 싶은 생각,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노력을 가치 있게 바라볼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배경사진 출처 unsplash, frank mcke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