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나라의 보배
오늘 글의 주제는 ‘어린이가 왜 소중한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유를 나열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어린이가 소중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읽는다는 전제하에 글을 이어서 써보려고 한다. 누가 어린이를 만날까? 어린이집 교사? 부모? 일부 정답이긴 하나, 정확히 말하면 우리 모두이다. 일부 사람들의 책임이나 몫으로 돌리기엔 ‘어린이’는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안고 가야 한다. 물론 요즘 이유 없는 호의나 막무가내의 친절은 기피대상이지만 적어도 우리 주변의 어린이에게는 우린 따뜻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어렵지 않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미소를 띠어라.
미소와 웃음이라는 단어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내가 느낀 미세한 차이점은 미소는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고, 웃음은 미소보단 소리와 표정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소를 고르게 되었다. 비록 세상이 안전하거나 따뜻하다고 믿지 않는 어른일지라도 어린이에게 그 순간만큼은 안도감을 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린이가 보고 있는 또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름답고 평온하도록 우린 미소를 띠어야 한다.
둘째, 최대한 상냥한 말투를 사용하라.
비단 어린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 속담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우린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종업원의 말투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며, 그 가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하물며 어린이들이라고 안 그러겠는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온 마음을 흠뻑 적실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어떨까. 평소 습관이 들어 바꾸기 어렵다면 존댓말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셋째, 기다려라.
우리는 많은 것이 다르다. 문제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대개 어린이가 느리지만)과 생각하거나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는 신체적으로 눈과 손 혹은 손과 발의 협응력도 부족하다. 이걸 통틀어 속도가 다르다고도 표현한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건 적어도 몇 년의 기간을 걸쳐 익숙해진 것이고 어린이들에겐 생 날 것인 경우가 많다. 어른이 답답하다고 해서,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 어린이가 스스로 할 기회를 뺏어버리면 자립심과 생각하는 힘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 사소한 것 하나 가르치려고 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좋을지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잊지 말자.
우린 모두 어린이였고,
이 존재는 환영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