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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Feb 25. 2023

네가 갑자기 무슨 비행?

마음만은 항상 비행청소년이야

2020년에 써놓고 발행을 해놓지 않은 글이다. 2018년에 일어난 일을 2020년에 글로 쓰고, 발행은 2023년에 하는 오래 묵은 글. 오랜만에 읽으니 옛추억이 생각이 나서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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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 베리 근처의 작은 공항. 

2인승 초경량 비행기 안에서 나와 교관 빌의 첫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날 좋은 여름날, 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는 두 사람을 태운 스포츠 스타는, 새가 날아가듯 사뿐히 이륙해 Georgian Bay의 해안선을 따라 날았다.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호수와 그 근처의 작은 마을. 초록빛이 만연한 숲을 지나 강가를 따라 넓게 진 늪. 그 위를 날아다니며 천천히 왼쪽 턴, 오른쪽 턴... 상승과 하강을 연습한 뒤, 아마도 이곳에선 거의 볼일 없는 이 젊은 아시안 여자가 궁금한지 빌이 물었다.


"너 취미는 뭐니?"

"취미요? 어... 저는 일이 안 바쁠 때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요"

"여행은 취미가 아니지, 항상 할 수가 없잖아. 스포츠라던가 그런 건 안 해?"

"스포츠는 썩 안 좋아하는데요"

"그럼 일 안 할 땐 뭐 하니?"

"친구랑 수다 떤다던가.. 술 마시러 간다거나..."

"너 몇 살이니?"

"26살이요"

"너 취미도 없는 삶을 살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다. 인생 한번 사는데, 너 이거 재밌니?"

"네 아주 재밌어요"

"그럼 이게 네 취미인 걸로 하자"

"?"


나는 그렇게 취미를 획득했다.


일의 특성상 (나는 웨딩관련 프리랜서였다) 여름, 가을이 아주 바쁘고, 겨울(12월-3월)은 시간이 아주 많은지라, 여름에 정신없이 일하며 살고, 겨울엔 여름에 벌어놓은 돈으로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살았으니, 꾸준한 취미가 없는 상태이긴 했다.

하지만 이건 파일럿 자격증이 아닌가? 나같이 공부에 손을 놓은 지 오래된 사람이 함부로 도전해도 되는 취미가 아닌 것 같은데..


"파일럿 자격증 따려면 엄청 똑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똑똑해야 하냐고? 아 전혀 아냐"

"공부가 엄청 어려울 것 같아요"

"아냐 아냐. 아주 쉬워"

"진짜로요?"

"진짜야. 아주 쉬워"


이게 전부 그의 거짓말이었다는 걸 깨닫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개인 면장, 사업용 면장, 계기비행, 멀티 엔진 등을 공부하며 머릴 쥐어뜯던 수많은 밤들. 나에게 이게 쉽다고 했던 빌을 생각하며 얼마나 분노에 이를 갈았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허무할 수도 있지만, 이 작은 거짓말이 나에겐 비행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용기였다.

여행이 좋다고 했지만, 난 그 여행을 가기 위해 타게 되는 비행기가 참 좋았다. 이륙을 하기 위해 파워풀하게 돌아가는 엔진,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 위의 마법 같은 풍경, 구름을 뚫고 내려가면 보이는 크리스마스 전구같이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 이 삭막한 세상에서 비행은 내가 겪었던 일중 가장 마법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파일럿이란 꿈은 감히 꿀 수도 없는 직업 중에 하나였다.

일단, 주변에서 찾기가 참 힘들다. 내 주위에 파일럿은 아무도 없었을뿐더러, 비행기를 타더라도 그 작고 비밀스러운, 복잡한 방에서 일하는 그들은 내게 먼 존재로만 느껴졌다.

비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교들의 문턱은 내게는 너무나도 높았고, 게다가 안경도 쓰던 나는 당연히 안 되겠거니 하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었다. 이렇게 먼 존재들인데. 심지어 여성 조종사는 더욱더 멀리 있었다.


그렇게, 어릴 적 스치듯 꿈꾸었다 머릴 저었던 파일럿이란 직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 잊혀 갔고 

하늘을 난다는 이 멋진 일을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여행으로 욕구를 채우며, 일에 몰두해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6살이 되고 나니, 나는 캐나다에 살고, 경제력도 (조금) 쌓였으며, 심지어 공부도 내가 소화할만하단다. 파일럿이 될 수 없는 변명거리가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산업용 면장 시험에 합격한 뒤 멀티/계기/교관 레이팅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여기에 하나하나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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