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과거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그들이 들려주는 과거는 ‘찬란함’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 가능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은 자신이 가장 빛났던 그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들은 잘 모르는 사람인 나에게, 이제 막 만난 나에게, 자신의 현재가 아닌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과거 이야기의 ‘찬란함’에 중점을 두고 추측해 보자면,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정 욕구와 권력 욕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눈치가 있다면 이야기의 밑바닥에서는 아래의 메시지가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왕년에 이렇게 잘난 사람이었어. 그러니 나 무시하지 마.’
‘네가 지금 보는 모습의 내가 다가 아니야. 그러니 날 존중해.’
그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거나, 아니면 적어도 약자로 분류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 이제 이야기의 중심을 그들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려보자.
왜 나는 그들의 과거를 알아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난 이제 막 그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과거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난 그들을 어떤 이슈 때문에 만났고, 그 이슈는 그들의 현재와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현재 능력 또는 현재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대가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내 눈앞에 있는 상대의 현재는 버려진 존재 같아 오히려 지금의 그 사람에 대한 기대는 자꾸만 낮아지고 만다.
물론 상대의 과거를 알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내 앞에 있는 상대와의 관계를 조금 더 진전시키고 싶을 때이다.
그 사람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내가 상대와 더 잘 지내기 위해서 내가 알아야 할 점이 있는지 등을 알고 싶을 때 상대의 과거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상대와 더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지금의 상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상대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난 그냥 지나칠 인연의 과거에까지 내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인연이 함께할 인연인지 알 수 없으니, 이를 위해 상대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 이야기를 들을 의향은 있다.
과거는 조금 더 상대의 현재가 쌓였을 때, 그때 현재를 더 이해하고 미래도 함께하기 위해 듣고 싶다.
그러니 당신의 과거가 궁금할 수 있게 지금의 당신을 더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