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괜찮아: まぁ、いいだろう]

by 운옥

난 이제까지 항상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라든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언제까지 뭘 하고, 이후에는 뭘 해야지라는 생각들을 주로 해왔다.

이런 내 삶의 최종 목표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내 스스로 마지막까지 삶을 조금이라도 넉넉하게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였다.

즉, 이제까지의 나의 삶은 나의 물리적/경제적 상황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연금보험을 들고, 언제까지 일하고, 연금을 제외하고 얼마 정도는 모아 놓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이것들을 달성하기 위한 작은 목표와 계획 세우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안에서 무한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결론은?

‘아, 모르겠다’와 ‘어떻게 하지?’ 였다.


근데 이제 이 모든 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려놓게 됐다.

이제는 이 생각들을 멈추고 방 천장을, 버스 창 밖을, 길 위 하늘을 잠시 바라보려고 한다.


삶의 목표도, 태도도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몇 년 전에 이런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었다.

그때 이제는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자라는 생각을 했고,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억울하진 말자라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갈림길은 분명히 있었는데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예전의 길을 걸어가려고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보람도 없고, 성취도 없고, 재미도 없는 길


아, 다시 잠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물리적,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삶의 태도’, ‘내 삶의 색깔’을 찾아야 할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꽤 살다 보니 삶이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이런 건 어린 학창시절에도 경험한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학창시절에는 치기 어린 분노와 짜증이 동반됐었는데, 지금은 체념의 시기를 지나 잔잔한 물결 같은 고요함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마저도 내 시간이 아깝다.

이제는 내 시간을 소소하지만 재밌고 평온한 순간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바람이 더 크다 보니 그런 감정에 예전처럼 매달리지 않는다.

소중한 시간이 가고 있는 것이다.

째깍째깍


지금 내가 바라는, 나의 삶에서 누리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자잘한 것들로 소소하게 키득키득거리는 것

이게 내 삶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뭘까?

난 나의 완벽할 수 없음에도 완벽하려고 달달거리는 것을 그만두려고 한다.

내 기준과 상식을 나에게도, 남에게도 너무 들이대려고 하는 것도 그만두려고 한다.

나도 좀 숨을 쉬고, 남도 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꼬맹이들이 되바라지게 굴어도 허허 웃을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갖고 싶다.


내가 조금 더 관용적이면 될까?

내 그릇이 커서 여유 공간이 있으면, 내 역치가 높아져 있으면, 조금 더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들도 많아지겠지?


그 흐름에서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허름한 선술집에서 중년의 아저씨가 술 한잔 하며 앞에 앉은 젊은이에게 웃으며 하는 말

‘まぁ、いいだろう(뭐, 괜찮아)’


언제 나의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말을 나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살아보고자 한다

‘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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