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이 해체되던 날.

마시마로 눈사람 만들기. (제작연월: 2013,02,04)

오늘은 202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입니다.


다가올 새해의 희망찬 기대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꽁꽁 얼어붙은 경기 침체의 싸늘함을 절감하는 요즘,

내년엔 좀 더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며,

12년 전 제 인생에서 잠시 포근했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우리 쌍둥이들의 어린 시절 중, 기억력이 유독 저를 닮아 좋은 아들 녀석에게 물어보면 가장 좋은 시절로 기억하는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각자의 “기억이라는 저장소에 각인이 되는 이벤트”의 대부분은 오래 살던 공간에서의 일상보다는, 특정 시기에 스쳐 지나가는 장소에서 몇 가지 조건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의 기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된 장소는 상봉동에 위치한 6층짜리 상가건물 5층에 세를 살며, 1층 주차장 옆 작은 사무실로 베이스를 잠깐 옮겨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IMG_1716.JPG 아무생각없이 눈을치우다가 만들게 된 마시마로 눈사람, 저에겐 어린시절 아이들과의 가장 큰 추억 중 하나였습니다.


2009년 3월 30일, 힘들게 쌍둥이를 낳았던 집사람의 산후 우울증이, 정점에서 조금 내려왔지만 이때까지도 저와는 눈을 피할 정도의 냉랭했던 시기였고, 저 또한 퇴근 후 집에서 저녁 먹고 쌍둥이 녀석들과 아주 잠깐 임팩트 있게 10~20분 정도 세게 놀아주고는.


다시 사무실로 가서 밤새 설계와 디자인 구상하며 “라꾸라꾸 침대”에서 새벽 4~5시쯤 쪽잠 자는 생활을 하면서 버티던 시기였던지라, 사업의 성과는 좋아지는 반면 개인적인 삶은 피폐해져가는 힘들다는 표현을 넘어선 어려운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울창한 숲과 공원이 바로 코앞이었던 용마산 아래, 망우동 끝자락 다세대주택 1층의 계약이 끝나갈 무렵, 이혼 얘기와 함께 처갓집에서, 가까운 집을 계약했다는 집사람의 얘기에 황당하고, 화가 나서 급하게 구했던 이 집은, 지금도 제게 아낌없는 조언과 도움을 주시는 협력업체 싱크대공장 사장님의 상봉동에 위치한 상가건물 5층이었고 서둘러 들어갈 준비를 한 후, 집사람에게...


넓은 집 알아봤으니 가보자고 하니, 밑도 끝도 없이 "됐다고" 싸늘하게 대답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집 보러 가자고 하니 완강하게 안 가겠다고 합니다.

“실평수만 30평이야, 지금 사는 집 딱 2배 크기이고”, 이 한마디에 조금 반응합니다.


사실 싱크대공장 사장님께는 자초지정 말씀드리고 부족한 보증금은 월세로 좀 더 드리겠다고 하고, 1층도 사무실로 쓰고 싶다고 하니, 어렵게 시작했던 사업, 어엿하게 직원 거느리고 큰 공사하며 자리 잡은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셨던 분이시라 역시 저의 편이셨습니다.

(당신 능력 있고, 열심히 사는 거 잘 아니까, 잘만 살아...!)


현장을 보고 난 후 집사람.


이 크기면 보증금 만만치 않을 텐데, 없을 거 아니야...?

(이 정도 멘트는 마음이 흔들리는 게 아닌, 살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성수동 전시장 뺄 거야. 아래 1층을 사무실로 쓰고 장비실과 공구들은, 뒤 공간에 칸막이 쳐서 만들면 돼...!


그제서야 말을 흐리며~~ 저쪽 집 계약금 못 돌려받을 텐데...


얼마나 줬는데...? (말을 못합니다.), 200만 원...? (200만 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 인생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여자 입장에서 계약금을 날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표정입니다.

그래서 딱 한마디로 정리해 줬습니다.


우리나라 아파트 표준이 24평이야, 여긴 실평수만 정확히 30평이고.

며칠 전, 정확히 실측하고 도면 그리고 확인한 거야...!


이 말 한마디에, 이혼 얘기는 사그라들었으며, 사무실 정리도 속도를 내어 1층으로 옮기고, 5층 주출입구 바로 앞방을, 제가 쓰면서 드디어 지긋지긋이 허리가 아팠던 라꾸라꾸 침대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 1층 다세대보다 정확히 2배 넓은 공간이었고, 바로 아래 4층 쇼핑몰 사무실이 퇴근하는 저녁 6시 이후에는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마구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후 아파트에 살면서 도덕이라는 암묵적인 규범은, 아이들이 집이라는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의 자유로움과 정신적인 성장판을 닫게 만들었고, 눈치를 보는 공간으로 변해버리는 과정을 경험하며, 특히 아들 녀석이 이 집에서의 기억을 가장 좋았던 시절로 생각하는 이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두가 상당히 길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항상 어떤 배경에서 시작합니다.

그 배경 속에 살아가며 떠오르는 생각이 아이디어로 발전하고 특허로 이어지면서 상품 개발까지 넘어가는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글로 무언가를 기록하는 입장에서 이런 서사 없이 본론만 얘기하고 끝나버린다면, 그건 제품이나 결과물에 대한 아카이브이자 포트폴리오이며,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을 염두하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글 쓰는 이의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5층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면 바로 사무실, 출퇴근 시간은 러시아워 감안해도 1분 안쪽...ㅎㅎ

이전까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 주변을 돌아야 하는 불편함도 없고 저녁시간 이후 술집을 기웃기웃 할 필요도 없어졌기에,


일에서의 몰입으로 능률은 3배 이상이고, 삼시세끼를 배고픔이 느껴지면 1분 안에 숟가락을 들 수 있고, 저녁 식사를 마치면 층간 소음 걱정 없는 집안에서 애들과 격렬하게 놀아주고 일터로 내려오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땐 정말 하루 25시간 일하는 체제였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가깝고 멀고의 거리 문제가 아닌, 집사람의 산후 우울증이 극으로 치닫았을 때, 술 한잔 마시고 귀가하면 싸우기 일쑤였고 서로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을 무렵, 제가 먼저 제안하며 절제를 단행한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난 술을 끊을 테니까, 넌 약 잘 먹고 우울증 이겨내...!


말도 안돼는 소리 한다는 둣, 집사람 왈...! 허이구~~ 참이나 술 끊겠다...!


하지만 저는 이후로 정말 6년 동안 술을 끊었고, 양가집의 어른들과 형제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이 저를 다시 볼 정도로 정말 성실히 이행하였습니다.


이때가 술을 끊은 지 2년째 접어드는 시기였고, 집사람이 아직도 저에 대해 인정하는 부분은...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잖아...! (이 얘기 한마디엔 대꾸도 못합니다...ㅎㅎ)


1층 사무실에 있으면 전 그야말로 건물 경비원입니다.


최소 하루 3번이상은 아이들을 볼 수 있고, 어린이집 가면서 한번, 동네 마트 가면서 한번, 그냥 아빠 보고 싶어서 한번, 밥 먹으라고 알려주려고 한번, 그때가 애들 정서에도 가장 좋았던 시기로 기억하며, 지금 훌쩍 큰 녀석들의 뇌리에 평생 남아있을 무언가를 하나 만들며 아이들의 순수함을 볼 수 있었던 시기로 기억됩니다.


2013년 2월 4일.

새벽부터 내리던 눈이 오전이 되자 더욱 굵어집니다.

그런데 눈을 만져보니 근래에 내렸던 눈들과는 차이가 많이 느껴집니다.


얼마만인지 모를, 잘 뭉쳐지는 눈송이가, 수십 년 전, 시골에서의 기억과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놀았던 그때의 추억처럼 잘 뭉쳐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습기를 한껏 머금은 무거운 눈...!)


처음엔 빗자루로 1층 주차장 주변을 쓸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 돼, 별생각 없이 눈을 뭉쳐 굴리는데,


어랏...! 정말로 잘 뭉쳐지는 것입니다.


이게 될라나...!

IMG_1697.JPG 눈사람 만들려고 굴려놓은 눈 덩어리를보며 아이들의 시선으로 생각하다, 마시마로를 만들기를 시작합니다.


주먹만큼 뭉쳐서 땅에 올려놓고 굴리니, 어릴 적 만든 눈사람이 돼가는 것이었습니다.

30년도 넘은 어릴 적, 그 손맛이 느껴지는 순간, 몇 번을 굴리고 커다래진 눈덩이를 보고 그냥 눈사람을 만들어보자 생각하고 두 덩어리를 올려놓고 눈, 코, 입을 만들다가,


갑자기 홱 떠오르는 아이디어...!

이거 캐릭터 만들어 볼까...! 뭐가 좋지, 아~~ 마시마로...!


바로 사무실에서 마시마로 캐릭터 출력해서 옆에 놓고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깎고 다듬고 2시간여를 공을 들이니 모양이 나기 시작합니다.


IMG_1700.JPG 팔.다리 만들어놓고 형태는 잡았으나 긴가민가...! 그런데 귀를 하나 달아놓으니 비슷해 보였습니다.


IMG_1704.JPG "조각"은 말할것도 없고, 깍고 덪붙이는 "조소"마져도 그림 그리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좀 뚱뚱해보여...!),


눈, 코, 입은 바닥에 나뒹구는 나뭇가지로...

손에 쥐는 소품들은 아이들 장난감으로...

캐릭터 뒤 배경은 가독성 좋게 잘 보이도록 건물 구석 나무 팔레트로...


제일 처음 보신 분은 바로 건물주 사모님,

어유~~ 쌍둥아빠 너무 잘 만들었다...! 애들이 아빠 최고라고 하겠네...!


어떠세요 괜찮아 보이나요...?


너무 예뻐...! 하여튼 재주도 많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단지 건물 내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눈을 치우다가 갑자기 동심에 사로잡혀 3시간 가까이 추위에 달달거리며 작업했던 눈사람을 어린이집 마치고 돌아온 쌍둥이와 조카 녀석이 보고는 난리가 납니다...!


우와...! 토끼다...!


IMG_1719.JPG 아이들이 신기해 하는게 처음엔 눈으로 만든 토끼라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IMG_1723.JPG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니, 그건 자신들보다 훨씬 큰 눈사람 그 자체였고...


IMG_1724.JPG 그리고 그 눈사람을 다름아닌 아빠가 만들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때 모처럼 웃는 집사람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알았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함엔 아이들만의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건 바로 대부분의 사물들을 “의인화”시키고 자신과 공동체로 묶어서 해석하는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언어에서 대상을 표현할 때 항상 “우리”라는 공감대 및 공동체를 뜻하는 표현이 먼저 나오고, 좀 더 대화에 귀 기울이면, 정확히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의 표현을 합니다.


우리 토끼 잘 있졌쪄...!

많이 추웠지...! 로


시작되는 기본 안부 인사에 점점... 나는 널 좋아하고,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알고,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서툰 발음에 다 이해한다며 교감을 나누면서, 집에 같이 못 올라가는 걸 안타까워하며, 이따가 밥 먹고 바로 내려올 테니 또 얘기하자면 토닥이고 올라갑니다.


IMG_1729.JPG 이때 토끼에게 말을하는 아이들의 시점이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의 언어라는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입장에서 어느 순간 아이들이 부쩍 크고 철이 들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정확히 대화 상대를 마주하는 시점이 간소화되고 나와 너로 함축되면서 고달픈 세상살이의 첫발이 떨어지는 지점임을 확인할 때, 잘 크고 있다는 안도감보다는 동심과 꿈이 소멸하고 있다는 섭섭함이 밀려들 때가 있습니다.


이후 보름 가까이 건물 주차장 한구석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 “마시마로” 캐릭터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포토존으로 사랑받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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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712.JPG 그랜드 오픈 이전, 첫 번째 학생손님들...! (우연히 길가다가 와아!! 꺄르르 하고 다짜고짜들어와 사진찍고 놀다갑니다.)


IMG_1841.JPG 며칠이 지나면서 자꾸만 녹아가는 마시마로는 2월중순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끈질기게 버텨줍니다.


반드시 경비원인 제 허락을 받고 무료입장에 신이 나서 들어가는 학생들...ㅎㅎ

지나가다 우연히 고개를 돌리고는 깔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어가는 동네 주민들의 이야깃거리로 그렇게 주차장은 한동안 동네 “핫스팟”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나와 보니 눈사람 “마시마로”가 처참하게 부서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건물주 사모님 왈...!

중학생쯤 보이는 애들이 발로 차고 부수는 걸 보았다면서 속상해하십니다.


당장 쌍둥이와 조카 녀석들이 걱정입니다.

애들 동심이 파괴되는 순간이니까요.


그날 오후...

속상해하는 쌍둥이와 조카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우리 다음에 눈 오면 아빠가 더 크게 만들어 줄 테니까,

이제 남은 재료들 제자리로 돌려놓자,


자~~

토끼 손에 들려있던 장난감은 너희들 거니까 다시 집에 가져가고...

눈, 코, 입은 나뭇가지였으니까, 다시 화단에 놓아주고...

뒤에 이거 큰 팔레트는 짐을 싣는 거니까 원래 있던 제자리로 옮겨주고...

이제 눈은 따뜻해지면 녹아서 물이 되는 거니까 그대로 두면 돼...


라며 최대한 아이들의 언어로 얘기해주며 치우는 순간 갑자기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실 제가 개발을 할 때 정의 내리는 용어인 기능적 고착이라는 이론을 접목시키며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부터 업사이클링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자행합니다.


사실 그 당시 “업사이클링 디자인 상품”들과 “정크아트”를 보면서 참신한 표현과 발상에 제겐 딱 맞는 재미있는 주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좀 전까지 아이들과 눈사람을 해체하던 행위들은 소멸시키는 과정이 편안하게 자연으로 돌려주는 행위였기에, 보름동안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모든 재료들을 본래 있었던 제자리로 돌려놓고 아무 일 없듯이 일상으로 돌아왔던 평범했던 그 과정이 하나의 깨달음으로 울림니다.


그래서 크게 느낍니다.


어찌 보면 내 개인적인 재미와 제품을 만들겠다고 가공하는 업사이클링 행위 자체가 새로운 오염의 시작이겠구나...!


그때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다시 원래대로 회귀했을 때, 그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 범위에서 아이디어를 다듬자는 나름의 이유와 철학이 생겼고, 이후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버려지는 소재 중, 원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디자인 개발을 취미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성숙해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IMG_1727.JPG OO사무실공사 최종 미팅, 저의 창의력을 묻는질문에 ,이 사진한장 보여주고 1억2천만원짜리 계약서 도장찍었습니다...ㅎㅎ


그리고 눈사람 마시마로는 당시에 아이들에게 행복감을 주었고, 저에겐 뜻하지 않게 이사진 한 장으로 저희 회사로서는 기록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공사를 수주하는 결정적인 포트폴리오가 돼주었습니다.


당시까지 같이 일했던 직원인 저의 막내동생에게, 올해는 다 지나갔으니까, 내년에 눈 많이 내리면 면목역 광장에 애들데리고 북극곰 한번 크게 만들어보자...! 마지막 장식은, 한손에 "코카콜라" 빡 꼿고, 목에는 "빨간색 영창피아노 건반덮개" 이렇게 하고 PPL한번 유치시켜볼까...ㅋㅋ


하지만 서서히 지구 온난화는 가속되고, 이제 여름이면 동남아 못지않은 더위에 겨울이면 눈 보다는 마르고 매서운 바람만 부는 극강의 추위로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추가 공해를 발생시키는 과도한 업사이클링은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2013년 02월04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2025년 12월25일에 다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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