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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랑 Aug 16. 2021

성공회대의 성공, 같은 말

씨부렁 #1

2011년에 성공회대에 입학했더니 이곳에 왜 있는지 의아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한 선배는 사회과학 배우겠다고, 카이스트 다니다가 우리 학교로 온 사람이었다. 우리가 자취방에서 술 마실 때 옆에서 논문 읽고 있던 센빠이 ... 고대랑 회대 편입 붙었는데 우리 학교 온 선배도 있었고, 내 동기 중에선 중대 합격하고는 우리 학교로 온 애도 있었다. 공대 나와서 학부 다시 온 서른 살 먹은 2학년 선배 같은 건 애교 수준이었고.

입시 전문가(?)가 된 지금에서야 10대를 돌이켜보니, 입시 제도를 열심히 훑어 봤다면 나에게도 다른 수가 있긴 있었을 것 같다. 여하간 그땐 논술 다 떨어진 후에 빡쳐서 정시는 그냥 성공회대만 넣고 입학했다. '시덥잖은 데 가느니 성공회대나 가지' 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고. 물론 서울대를 갈 수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죵,,,

학교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늠하자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다른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당시 굳이 우리 학교를 선택한 매력은 뭐였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학부 차원에서는 성공회대가 '비판적 사회과학'의 요람 쯤으로 보였기 때문일 테다. 신영복, 김수행, 조희연, 김동춘, 정해구 등 어쨌든 고등학생 수준에서 조금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은(혹은 듣고 싶은) 청소년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나에게도 역시. 지금에서야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 ^^;

그래서 '진보의 요람'이나 '김일성대 남조선 캠퍼스' 같은 별명 역시 따라다녔다. 물론 나는 그걸 '진보 팔이'라고 비아냥거리던 학생에 속했었지만. 그러나 그 '진보 팔이'도 3-4학년 쯤 되니까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살 길은 정당이나 시민단체 상근자 말고는 없는데(내가 사교육을 할 수 있다곤 정말 생각지 않았다), 내심 그 진보연하는 인적 네트워크에 빌붙으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땐 '진보 학벌' 정도로 자리매김하는 게 우리 학교가 그나마 살 수 있는 길이라고도 생각했다. 이 애매한 권위의 학교가 '진보 학교'라는 이미지까지 상실하면 대체 뭘로 먹고 살겠는가. '진보 팔이'라고 욕하긴 했지만 그런 거라도 있어서 학교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은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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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알다시피 ... 신영복, 김수행 선생은 돌아가시고 조희연 선생은 교육감으로 정해구 선생은 정치권으로 훌훌 가버리셨다. 그래서 우리가 농담처럼 성공회대는 '교수취업사관학교'라고 말하곤 했다. 나중엔 전공과목이 유지되는 게 과연 가능한지 걱정될 정도로 정교수들이 사라져버렸다. 3학년 땐 사회과학부 학생회장이었기 때문에 그 위기를 좀더 피부로 느꼈던 것도 같다. 교수들은 출세하는데 학생들은 빌빌 기고 있다는 열패감도 있었다.

물론 성공회대 학생으로서 내가 느끼는 위기감은 비단 그런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소위 '진보'가 기층권력으로 들어가고부터는 우리가 가진 도덕적, 지적 우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성공회대에서 말하는 '진보'란 리버럴들의 말장난일 뿐이라고 욕하던 빨갱이였지만, 그럼에도 너른 차원에선 '진보 진영'의 약진을 바라마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들이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그런 기대를 버리게 된 것 같다. 개인을 욕하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성공회대 교수진들을 포함해 그때의 소위 '진보 지식인'들은, 학자로서의 완성도는 차치하고서라도 존경받는 어른 정도의 권위는 있었다. 지금으로선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다. 우파들이 우릴 놀리는 건 언제나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박원순 사태 등을 거치며 처참히 무너져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진보'는 이제 이 사회에서 부패한 기층권력의 일원으로나 남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성공회대의 권위가 추락한 것은 결국 '진보'가 무너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권력에 눈치보지 않고 제 신념을 지키며 사는 어른들이 한 두 명 정도는 있어야 했다.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적어도 학생들과 그 비전을 나누는 어른들은 거의 없었다. 386, 서울대 카르텔을 결국 깨지 못하는 어른들이나 마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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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판적 사회과학'의 요람 정도로 우리 학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진보'도 '비판적 사회과학'도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버린 지금, 그런 걸 기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신념의 존재들이야 있겠지만 굳이 더 나은 제도권의 길을 포기하면서까지 변방을 선택할 만큼 이 세상의 진보라는 게 매력적일 수 없다. 지식인일 땐 자본주의를 욕했지만 부동산 할 때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존재들을 보고 있는데, 대체 진보가 뭐고 비판적 사회과학은 다 뭐란 말인가. 학벌이나 챙겨야지. 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우리가 '각자도생'하게 되는 거였다. 이 학벌사회에서 성공회대 타이틀 달고 우리가 어떻게 '경쟁'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공동체'로서 함께 한다면 존속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이 굳이굳이 일어나서 미약하게나마 몸을 썼다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하고 싶다는 그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니 학생회장 같은 것도 했다. 학생운동 같은 말로 퉁치진 않았으면 한다. 나는 학교 다닐 때도 그런 건 믿지 않았다.

그러나 어른들은 사라졌고, 이제 우리는 밥벌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렇게 살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성공회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소위 '진보'의 이상이라는 것에 감화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퇴근하고는 괜히 이런 생각이 들어 새벽까지 주절거렸다. 오늘 오전 수업인데, 망함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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