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을 위한 고향의 맛 시리즈 1
누구나 하나쯤 ‘일요일의 음식’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카레, 누군가에게는 간장 달걀밥일, 마음이 여유로운 일요일에 가족과 먹는 ‘일요일의 음식’ 은 흔히 말하는 ‘인생 음식’ 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하듯.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데, 우연히 흘낏 넘겨 본 동료의 다이어리에서 ‘삼시세끼 어촌 편 시작하는 날’이라는 표시를 보았었다. 연예인들 몇 명이 시골에서 온종일 밥 지어 먹는 얘기만 보여주는, 별것 없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따로 적어두는 정성이 놀라워 찾아보게 된 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지금까지도 종종 본다.
어촌 편답게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등장하지만 내가 수없이 돌려보고 있는 한 장면, 그것은 바로 ‘슬로바키아 남부식 잔치국수’ 등장 편이다.
출연자가 애호박을 잘게 썰어 프라이팬에 볶은 뒤 멸치육수에 넣어 잔치국수를 끓였다. 누군가 “왜 애호박을 바로 육수에 넣어 끓이지 않느냐?” 묻자, 그는 태연하게 “원래 볶아서 넣는 거야”라고 답했다. 그러자 제작진이 “아, 이게 슬로바키아식이구나” 하고 장난스럽게 맞장구를 쳤고, 출연자는 다시 “남부식이야, 이게”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별다른 비밀 재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조리법도 아닌데, 나는 그 짧은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왜냐하면, 나의 일요일 음식이 바로 볶은 애호박을 듬뿍 얹은 잔치국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요리법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 잘게 썬 애호박을 양파와 함께 들기름에 볶을 때 고춧가루를 살짝 더한다. 정식 반찬으로 내도 손색없을 만큼 맛이 깊어지고, 은근한 다홍빛이 맑은 멸치육수 위로 스며든다. 그 국수 위에 얹힌 볶음 애호박은 더 이상 고명이 아니라, 엄연한 주연이었다. 엄마도 어릴 적부터 그렇게 먹어왔다고 말씀하셨다. 내겐 그것이 진짜 ‘슬로바키아 남부식 잔치국수’였다.
평생 먹을 단 하나의 음식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빨간 애호박볶음 잔치국수를 택할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식당에서도 이런 잔치국수를 본 적이 없다. 사회생활 속에서 헛헛함을 느낄 때마다 간절히 떠올렸던 그 잔치국수는 엄마의 요리가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었다.
맏딸은 집안의 살림 밑천이라는 말의 현대적 표현인 K 장녀로 태어나, 결핍이 가득했던 유년 시절 내내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찾아갈 곳이 없다는 것이 막막함. 추위에 언 볼을 맞대어 비빌 사람과 언제나 거기 있으리라는 믿음의 공간 부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온 청춘이 발버둥 쳤었다. 푸르다 못해 퍼렇게 멍든 청춘이었다.
그러다 여러 이유로 멈출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마주했다.
나약한 사람들이 하는 핑계, 속 빈 앓는 소리라 생각했던 마음의 감기가 독감이 되어 나를 덮쳤다. 손 내밀어 일으켜줄 사람이 없다는 막막함을 극복하기 위해 숱한 날 나를 불태우며 월급의 앞자리 숫자를 행복으로 환원시켰던 지난날에서 남은 것들은 너무나 알량했다.
돌아갈 곳, 잡아줄 사람, 그저 한없이 포근한 마음. 내겐 그런 것이 없었고 사방이 막힌 암흑 속으로 그저 끝없이 침잠할 뿐이었다.
어딘지 모를 어둠 속에서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는 다 해봐야 해’라는 절절한 멜로디가 스쳤다.
정말 그랬다. 이렇게 죽을 순 없는 것이었다.
웅크렸던 몸을 피고 일어나 주섬주섬 찬장을 열어 찾았다. 언젠가 해 먹고 남은 소면이 한 움큼 남아있었다. 조금 더 찾아보니 사다 둔 시판 멸치육수도 한번은 해먹을 양이 있었다.
하지만 애호박이 없었다.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분연히 일어나 국수해 먹으려는데 애호박이 없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럴 순 없는 것이었다. 무릇 제대로 된 잔치국수에는 반드시 빨갛게 볶은 애호박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선 집 밖의 공기는 꽤 찼었다. 비장하게 마트에 들러 애호박 2개와 양파 작은 망 하나를 집었다. 사는 김에 마늘도 조금.
빨간 애호박볶음이 얹어진 국수를 먹겠다는 열망이 마음속 가득하던 음울을 이겼다. 푹 익은 식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국수는 3번 끓어올랐을 때 찬물에 헹궜고, 양파와 애호박은 엄마 요리법대로 채를 썰어 볶았다. 고춧가루 적당히.
그렇게 빨간 애호박볶음이 올라간 잔치국수를 완성했다.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아니면 먹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요일의 음식을 내가 직접 해 먹었다. 배가 차니 살 것 같았다. 돌아올 곳, 볼 비빌 사람, 한없이 따스한 공간이 없어 괴로운 게 아니었다. 그저 나는 잔치국수가 먹고 싶었을 뿐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빨간 애호박볶음이 올라간 ‘슬로바키아 남부식 잔치국수, 나의 일요일 음식’.
나의 불안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의 원천인 나의 엄마. 평생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의 품이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나의 웅크림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