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가 어른 없던 세상 - 시장 핫도그

by 도정하

이 사회에 정말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중 단언컨대 하나를 꼽자면 어른이 없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지하철 노약자 석에 자연스럽게 앉게 될 나이가 될 텐데, 그때가 되었을 때 자리 양보를 바라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근력운동을 많이 해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요새 광장시장 노점에서의 바가지 영업으로 손님이 아주 크게 줄어서 상인회가 노점상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서울의 정취, 찐 로컬 바이브 중 하나라고 여겨지던 광장시장의 낭만을 되지도 않는 논리로 몇 푼 더 갈취하기 식의 영업을 한 일부 노점상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들었고, 경험했고 보아왔어서 안타까움이 느껴지지 않으니 이 또한 안타깝다.


내게 시장은 이거 저거 먹을 것이 많긴 하지만, 결코 싸지 않고, 친절하지 않으며 특히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어린이나 청년 대상으로는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알겨먹으려는 탐욕의 아줌마, 아저씨들 세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가면, 길가에서 파는 핫도그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케첩을 나선형으로 뿌리고 설탕을 팍팍 뿌린, 손가락처럼 가느다란 소시지를 몇 겹의 밀가루 옷으로 씌운 영양학적으로나 인심적으로도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그것이 너무 맛있었다.


아마 그날도 핫도그 사달라고 졸랐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상태가 좋아 보이는 것으로 집으려 하자 핫도그 아저씨가 다른 것을 가리키며 '이거 먹어, '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분들은 반말이 디폴트다.


그래서 반항 못하고 핫도그를 집어 먹었는데, 약간 거뭇한 게 묻었지만 튀김이 타서 그런 거겠지 하며 신나서 먹던 중 아저씨가 핫도그를 시장 바닥에 떨어뜨렸다가 냉큼 주어서 내가 먹은 핫도그 더미 위에 다시 올리는 것을 봤다.


조금 후에 나보다 큰 어른들이 와서 핫도그를 고르자 다른 더미를 가리키며 그걸 먹으라 안내하던 아저씨.


7살 어린이는 그 자리에서 항의도 하지 못하고, 먹던 핫도그를 내던지지도 못하고 그냥 우걱거렸었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시장에서 핫도그를 사 먹지 않았다. 핫도그를 좋아하지만 먹지 않았다.


그 후로 다시 먹게 된 것은 시간이 훌쩍 지나 직장인이 된 후, 매장에서 파는 명랑핫도그가 생겼을 때 이제 핫도그를 사먹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매장 앞에서 서서 핫도그 먹기도 불편하고, 저걸 포장해서 들고 집까지 가기도 번잡해서 그냥 언젠가 먹어야겠다고만 생각하며 마지막 핫도그는 여전히 7살에서 멈춰있었다.


혼자 사는 것의 장점은 정말 많지만, 그중 하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장을 볼 수 있다는 것.


엄마였으면 절대 안 사줬을 불닭면, 비엔나 소세지 등을 내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점점 엄마의 장바구니 흔적을 벗어나며 먹고 싶은 것을 사 먹다가 발견한 '냉동 핫도그'.


어렸을 때 밥솥에 밥 지을 때 냉동 핫도그를 넣었다가 밥이 다 되면 근사하게 다 익혀진다는 광고를 본 기억이 나서 몇 번 구르며 사달라고 했지만 맛볼 수 없던 그 핫도그를 내 맘대로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주문해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으니 맛은 있는데 크기가 상당히 작았다. 그거 먹으려고 일부러 케첩도 새로 샀는데.


내 기억에 시장 핫도그도 그거보단 컸던 것 같지만, 일단 재료가 좋은 것이라니 믿고 먹어야지.


과연 대기업의 맛은 기대 이상으로 꽤나 훌륭했다.


이제 명랑핫도그도 있고, 검증된 대기업에서 만든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핫도그도 있다.


어른이 없는 세상도 서글픈데, 어른이 없어도 되는 세상이 이미 와 있었다.


아저씨 그때 왜 그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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