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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Nov 22. 2020

13년간의 직장생활 - 매일 꼴값을 보고 꼴을 읽는다

사람에 대한 빅데이터 - 오늘도 업데이트 중

마케터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위법이 일상인 노동착취 대행사에 잘못 발을 들인 지 2년가량 되었을 때, 회사의 주축을 담당하던 큰 고객사에서 새로운 서비스 브랜드를 출시하며 그 담당자는 나였으면 좋겠다고 지목을 하였다.

 

학벌과 집안 재력 수준에 따라 직원에게 맞춤형 응대를 능동적이며 매우 융통성 있게 적용하던 실장님(실제 대표였으나 마케팅 회사의 대표라기에는 일천한 경력, 연령에 관계없이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일체 없던 분이었던 지라 스스로 대표라는 자리의 왕관을 보자기에 잘 담아 품에 안고 실장이라는 위치에 자리하신 기백 있던 분)은 고객사에서 왜 저런 담당자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을 매우 직관적인 어휘를 써가며 ‘이 일은 네가 하게 됐다. 너 혼자 다 해라.’ 결정을 전달했고, 전달받은 즉시 나는 기존 프로젝트에서 독립하며 고군분투 1인 프로젝트를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독립 전 나는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는 양대 산맥 프로젝트 중 하나에 속해서 일당백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프로젝트의 리더 (Project Leader)는 당시 20대의 나이가 무색한 외모와 그 외모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정치적인 행동으로 매일 회사에서 개소리 닷컴과 일간베스트를 보며 낄낄대던 것이 주 업무였던 사람으로, 내가 프로젝트에서 빠지자 비로소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의 일간베스트는 지금과 같은 성격이 아닌, 하루 중 각종 사이트와 커뮤니티에 올라온 컨텐트 중 가장 인기 있는 것들을 모아 보여주는 곳이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던가. 그렇다. 일당백이 떠나면, 막일해주던 엔진이 멈추면 비로소 일이 보인다.

 

늘 떠맡기고 개소리 닷컴을 보던 사람인데, 막상 바닥부터 천장까지 훑듯이 일을 하려니 매우 어려웠던지 옆자리에서 계속 툴툴거리며 보고서를 쓰던 그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만 프로젝트 리더였지, 프로젝트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루도 해본 적이 없던 그는 바로 옆에 내가 앉아 일을 하는 상태에서 ‘아이 C, 이걸 왜 내가 해야 돼?’라고 방백같은 독백을 내뱉었고 며칠째 이어지던 구시렁 노이즈로 스트레스의 임계치에 다다른 나는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 잡고 ‘얘기 좀 합시다.’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3개월간의 나의 독립 프로젝트가 끝나던 날, 짐을 챙겨 퇴사했다.

그것이 제대로 사직서를 쓰고 나온 나의 첫 번째 퇴사였다.

 

개소리 닷컴을 하루 종일 보고 있던 그는 내가 어릴 적 갖고 놀던 빨간 오뚝이의 안경 낀 버전의 외모였는데, 그리 크지 않은 키, 술톤 피부와 매우 작은 눈, 삶은 계란 하나도 까지 못할 것 같은 투실한 손과 자로 대고 그은 듯한 직선의 앙다문 입이 떠오른다. 코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인 것을 보면 이목구비 자체가 다 또렷하지 않았던 듯하다. 어릴 적 치아가 작고 약한 내게 엄마가 ‘쥐이빨’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다 커서 그 ‘쥐이빨’을 다시 본 게 그 회사에서의 그였다. 그는 투명한 사람이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매우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놀라운 권모술수와 딸랑 어법을 매일 시전 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바쁜 나날 속에서도 행태가 매우 똑같은 동갑내기 여직원과 눈에 뻔히 보이는 썸을 타고 다녔다. 그러니 일할 시간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것이 착한 거라고들 하던데, 이리 착한 내게 왜 이리 일은 다 떠넘기고 개소리 닷컴만 보며 뒤에서 사람 욕을 저리 하고 다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던 나날의 나는 도서관에서 허영만의 ‘꼴’을 집어 들게 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 장씩 넘겨가며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해보았다. ‘그는 왜 그런 것인가?’

 

이게 발단이었다. 도저히 머리로는 풀리지 않는 행태들, 아직은 순수하고 어렸던 나에게는 정상적으로 보기 어려운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그 주체가 되는 사람에 집중해서 너덜 해진 내 마음을 달래 주듯 상대의 관상을 보게 된 것이.

 

그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관상의 전문가도 아니고 그럴듯하게 풀이도 하지 못한다. 다만, ‘이런 면이 있겠구나. 이럴 수 있겠구나. 그러니 그런 상황이 정말 찾아와도 놀라지 말자.’ 하는 자기 다독임의 수단으로 지금까지 취미처럼 보아온 축적된 관상 지식을 활용한다.

 

세상 모든 사람의 유전자가 다른 것처럼, 얼굴의 어느 부분 하나 모든 이가 다르다. 하지만 강산이 한 번은 바뀐다는 10년간 수많은 사람을 보고, 겪고, 치를 떨며 축적된 데이터를 관통하는 인사이트는 있고 꽤 통한다. 이런 빅데이터에 근거하여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접근하고 마음의 자세를 다잡는 것은 결국 내가 개고생을 조금이나마 덜하고, 덜 상처 받기 위한 자기 방어 기술의 하나인 것이다.

 

나의 ‘사람’에 대한 빅데이터가 통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사회라는 곳의 사람 유형이 카테고리화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많지는 않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대학교의 교양강의에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인간관계론_직장 내 손절’ / ‘인간관계론_노답 상황에 대한 지혜로운 퇴사 법’.

 

직장생활이란 매일 꼴값을 마주하고, 치를 떨며, 또 출근하는 것의 연속이니까 웬만한 일에는 크게 상처 받지 말고, ‘그러라고 해’, ‘그럴 수도 있어’ 하는 양희은 님 어록을 되뇌며 살아 낸다.

 

그렇게 나는 매일 꼴값을 보며, 꼴을 본다.

 

ADHD나 경계성이 의심되던 전임자가 팀원과 업무과다로 인한 공황장애를 이유로 잠적하듯 떠난 자리에 곧 새로운 사람이 온다고 한다. 그 자리에 딱 맞는 경력은 없지만 열정이 있어 뽑았다는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되는 면접 피드백을 들었는데, 며칠 전 그 새로운 분을 스치듯 만났다.

 

어떤 꼴값을 보아도 놀라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책을 펼쳐 든다.


덜 상처 받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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