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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Oct 30. 2022

시키지 마세요. 부탁하세요.

나의  MZ세대 파트너 #1.


나의 파트너는 각종 집안일을 함께 한다.

특히 재활용품 분리수거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데, 얼마 전 3단 분리수거함과 별도로 큰 쇼핑백에 모으는 폐지, 폐비닐을 한 번에 들고 내려갈 수 있는 구루마의 필요성을 호소력 있게 내게 프레젠테이션한 결과, 소원 수리 완료했다.

 

튼튼한 고무줄로 짐들을 고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드럽고 날렵한 바퀴 코너링으로 분리수거장까지 리드미컬하게 몰고갈 수 있으며 실어놓은 짐들이 쏟아지지 않도록 금속으로 만든 가림막까지 있는 최첨단 구루마를 장만해드렸다. 파트너님은 구루마가 배송 온 날, 넘치는 기쁨으로 섬세하게 포장을 뜯기 시작했고 옆에서 돕기 위해 포장 뜯기에 함께 하려는 나에게 근엄한 표정으로 '블로그 리뷰를 해야 하니 그렇게 마구잡이로 뜯지 말라.' 저지했다.


분리수거와 더불어 청소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보이는데, 자취 짬밥이 긴 내 눈에는 2% 부족한 것들이 눈에 보여 그가 청소하고 지나간 자리는 한 번씩 뒷짐 지고 다니며 리뷰를 하는데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던 모양인지 그렇게 검사한다면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여, 이 마저의 도움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즉시 '전적으로 믿고 맡기겠사옵니다!'를 외치기도 했다. 이 청소 검토와 함께 그가 몹시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시키는 것'.


설거지는 내 담당이나 뒷정리는 그의 담당인데, 뒷정리하는 그의 모습을 힐끗 보며 '식탁 좀 닦으세요.'라고 말하고는 다시 설거지를 하는 내 뒤로 뭔가 스산함이 느껴져 돌아보니 그가 입을 소문자 엔 모양으로 만들고서 손에는 물티슈를 든 상태로 서있었다. 뭔가 삐진 것 같다는 상황 간파가 되어 '왜 그러십니까?'라고 묻는 내게 그는 입을 대문자 엔으로 바꾸며 말했다.


"시키지 마세요!!!!!!!!!!!!!!"


'아...?!'


"시키면 더 하기 싫어요!!! 가만히 두면 잘하는데 왜 시켜요??!!!"


재빠르게 태세 전환하여 '앗 미안합니다. 식탁을 좀 닦아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의 자세로 의사를 전달했고 그는 식탁의 상단뿐 아니라 측면도 닦아 놓고는 유유히 게임을 하러 원위치하였다.


그 후에도 '이것 좀 똑바로 두세요.' '샤워 후 물기 제거 꼭 하세요.' 등등의 요구에 그는 '시키지 마세요!!!'로 응수하였다. 이건 존대형 안내에 더 가까운 표현이 아닌가 하는 나의 질문에 그는 '지시이자 명령이며 반발심을 유발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 답하며 진지하게 시정을 요구했다.


이 정도를 지시이자 명령으로 느껴 반발심을 느낀다면 이 거친 세상 어찌 살아가겠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현재의 나는 독거 아닌 리빙 투게더를 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소원 수리 완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부탁한다.

더욱 단순화된 집안일 처리와 MZ세대 파트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더한 함께의 평화를 위해.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데워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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