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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May 17. 2023

태도가 경쟁력이긴 하다만..

전 직장인의 먹고살기 표류기

바이럴 마케팅,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라는 말이 생경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나의 마케터 생활.


입소문마케팅 대행사에서 첫 정규직이 되며, 브랜드 블로그를 운영하는 업무를 맡아 운영하던 블로그로 파워블로거에 선정도 되어보았지만 그것은 나의 채널이 아닌 고객사의 것.


정작 나의 채널은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의 이름 모를 잡초와도 같은 그것.


꾸준한 채널 운영이 얼마나 큰 경쟁력이 되는지,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생활의 보탬이며 기회의 물꼬가 되는지 아주 잘 알면서도 그것을 오롯이 일로 시작해서인지 재미를 느끼며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한없이 어려웠으나, 회사라는 견고한 성과 같던 조직에서 떠밀려 나온 현재,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이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는 피할 수 없는, 어부로 치자면 언젠가 잡혀 들어와 줄지 모를 대왕문어를 기다리는 투망 치기와 같은 것이 되었다.


1일 1 포스팅이 기본이라는데, 이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지 이것저것 먹고살기를 위한 생존형 노동, 맛있는 밥 먹고 깨끗한 곳에서 살기 위한 삶의 질 노동을 마치고 나면 어느덧 자정을 넘긴 시간.


이 마저도 안 하면 그냥 지쳐 쓰러져 잠드는 노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를 위로하는 딱 한잔의 위스키를 마시고 한숨 한번 쉬면 어느새 길가에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시간이 되기에 1일 1 포스팅은 살아나가기 위해 필히 행해야 하는 생존형 노동의 일환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쪼개어 포스팅하고자 하나 쉽지 않다.


도서관에 가서 나란히 꽂힌 라이프스타일과 미니멀라이프, 정리정돈과 수납의 기술 책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고졸한 아취를 담아낸 책 한 권 세상 속에 한번 비집어 넣고 싶다는 건조한 듯하나 갈급한 그 욕망이 솟구칠 때의 감정을 잘 접어 무의식 안에 저장했다가 일에 치이는 순간 속에서 문득 ‘아 맞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방언처럼 터지는 환기가 구겨 놓았던 욕망을 터뜨릴 듯 펼쳐낼 때 무엇에 이끌린 듯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매서운 눈길로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을 휙휙 훑게 된다.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는 조용한  ADHD인 탓에 아름다운 오와 열을 만들지 못할 바에는 없애버리기 전략으로 타고난 본성을 조금이나 숨기고, 사회적 동물로서의 적절한 적응과 교정을 위해 시작된 극강의 미니멀리즘 생활을 담아 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그나마  덜 부끄러울 만한 피사체가 될, 일상의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최근의 것들을 훑던 중 눈에 띈 하나.


‘태도가 경쟁력’이라는 짧은 영상.


더 이상 삶의 현장 속으로 나가 먹고 살기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먹고 살기의 고단함에 지친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는 그 인기 텔레비전 프로의 한 부분을 짧게 발췌한 영상 속에는 대기업 임원이라는 하늘 저만치의 별에서 서점 주인이라는 조약돌처럼 소박하게 들리지 만 보이지만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 의지, 여유, 자신감, 건강 등이 수반되야만 영위할 수 있는 삶을 사는 한 분이 등장하여 말했다.


‘직장생활을 해 보니 태도가 경쟁력이더라.
모두가 가진 재능을 꽃피우는 것은 결국 태도더라.’


그렇다. 태도는 경쟁력이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3년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 상사 앞에서도, 남초 조직 속 단 두 명인 여직원들을 오리주물럭처럼 이리저리 말로 조물딱 거리는 희롱이 일상인 남자직원들의 단톡방 너머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시시껄렁한 히히덕거림을 애써 무시하면서도,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이며 ‘왜 인사 안 받으시죠? 왜 무시하시죠? 왜 이리 무능력하시죠? 왜 니들끼리만 쑥덕이죠?’를 시전 할 수 있는 똘기가 있었다면 지금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내가 하여 즐겁고, 남이 봐도 재미있어 지갑 열게 하는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는 청운의 꿈 하나로 나름의 노력을 다해 키워온 내 안의 재능, 열정이, 꿈이 과연 꽃필 수 있었을까?


내가 경험한 세상은 태도가 경쟁력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더러워서 못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가도 마음 편하게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과 환경, 두려움 없이 펼쳐들 수 있는 통장잔고, 그리고 무엇보다 무한의 지지를 보내는 사랑 가득 가족의 언덕이 있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태도가 경쟁력이 될 수 있으려면, 태도가 경쟁력임을 알아보아 주는, 이 시대의 유니콘 같은 상사를 만났어야 했고 그런 상사가 살아남아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의 조직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런 조직에 들어갈 수 있는 측정 가능한 우수 스펙에 더불어 타고난 복이 가득한 성장 환경이 있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눈으로 경멸을 쏘아 보내는 사람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으려 악을 쓰는 강철 멘털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 강철 멘털이라는 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줄 믿었던 나는 정확히 직장생활 15년 만에 나가떨어져 한없이 저 깊은 곳, 해저 이만리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된다.


의지와 노력은 배신한다.
그것만으로는 피어날 수 없다.


많은 부분의 진전과 성취는 수면 위로 밀어 올려주는 운과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부력이 있어야 했다. 일 잘하는 것이 착한 것이요, 인정받는 길이라는 믿음은 철저히 잘못된 것이었다.


일을 잘하면 일을 못하는 이의 것까지 떠안게 되며, 운이 나빠 업무 능력은 없으나 생존본능만 있는 상사까지 만나게 되는 상황은 원플러스원 처럼 꼭 함께 온다. 그런 상사는 빼먹을 것은 다 빼먹고 일 잘하는 이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공개 상황에서 기획된 망신을 시전함으로써, 누군가를 짓밟아 상대적으로 하찮기 짝이 없는 본인의 능력을 과대팽창연출 하는데 활용하는데, 이로써 성실하게 일잘하는 순수한 열정은 누군가의 만개를 위해 부어진 물과 영양제가 되었다가 종국에는 나를 짓밟던 이의 승진이나 인정 등으로 구체화되어 그것으로 파생된 부산물 내지는 찌꺼기를 받아내는 화분받침으로 귀결된다. 내가 그랬고, 내 앞의 여럿 똑똑했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철저히 누군가의 타오름을 위한 번개탄이 되고, 제물이 되어 배가 갈라져 창자가 저잣거리에 내놓아져 놓고도 좋은 소리 못듣는 그런 상황에의 목도.


그게 내가 만났고, 경험했고, 회상하는 직장생활이다.


태도는 경쟁력이 맞다.


태도가 경쟁력이라 말한 그분의 풀버전 영상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분이 말한 태도는 매사에 진지한 열정, 순수한 호기심, 최선을 다하며 집중하고 노력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고자 하는 끝없는 움직임과 같은 박수받아 마땅한 가능성의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경쟁력이 아닌, 살기 위해 의도된, 크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왔던 그런 태도들이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훨씬 크다.


응원받을 수 있고, 응원해 주고 싶은 태도가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세상에 들어갔다면 이미 출발선은 다르다. 그리고 그 출발선은 어지간해서는 종착선까지 이어진다. 이겨내라고, 견디라고, 버티라고 하는 말은 이미 너무 많이들 하니까, 그렇게 하다가 추락해 본 1인으로 감히 말해보건데,  그래봤자 우리는 지구의 먼지들이다. 괴롭히는 사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 그 모든 상황을 방관하는 모든 사람 역시 언젠가 죽고, 슬플 날도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꿈을 찾거나 이상을 실현하거나 자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너무 하지 말고 적당히 이용하며 수단으로 삼았어야 했는데, 그것을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아침이 오는게 끔찍하던 그 곳, 그게 온 세상, 지구가 아니었다.


가난해졌지만,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이유 중 단연 첫째의 이유는 그것이다.

아침이 무섭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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