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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ul 28. 2023

억대 연봉 찍고 2.5개월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episode 1.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첫 월급 70만 원에서 억대 연봉을 찍기까지 13년가량 걸렸다.


누구나 다 알법한 대기업이 아닌, 블라인드에서는 검색도 안될,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쌓아 올린 연봉이었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고, 또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매일 새벽 영어 학원을 다니고 퇴근 후에는 전화영어 수업을 받으며 주말에는 월급을 아껴 과외까지 받을 정도로 몰입했던 영어 공부 덕분에 연봉은 계속 우상향 했고, 승진도 빠른 편이었다.


영어 공부 덕분에 외국계로 옮기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영어를 쓰며 일하는 스스로를 멋있다고도 생각했다.


남이 보기에는 승승장구였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안은 곪아가고 있었다.


내 업무 태도의 가장 큰 문제는 회사에서 맡은 일, 담당하는 브랜드는 모두 나의 것이라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늘 왕따였고, 늘 상사의 미움을 받았다.


노예는 노예다워야 했는데, 주인처럼 일하니 모두가 싫어했다.


몸담았던 한 회사의 직속 상사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입사 날부터 퇴사 날까지 인사를 받지 않았다.


한참 일하다 정신 차려보면 나 빼고 모두가 회식하러 나가기도 했었다.


인사를 받지 않던 그 상사는 스카이 대학 나오지 않았으면 입도 열지 말라는 말을 얼굴에 대고 했고, 해외 연수와 유학 경험이 없는 내게 독학 영어는 중학교 수준이라는 말을 하며 앞으로 회의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도 했다. 매일 그런 무시를 받다 보니 기가 죽어 있었다.


퇴근하고 오면 온몸에 근육통이 일었다. 늘 웅크리고 있는 것은 마음만이 아니었다.


매일 상처받았지만, 버텼다.


주위에서 독하다는 말을 하며 잘 버틴다고 했다. 칭찬이 아니었다.


미련하게도 그때는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버팀도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아서, 조금씩 연봉은 올라갔다. 그리고 좋은 조건으로 이직의 기회도 찾아왔다.


이직한 곳의 상사는 경력 허위인 사람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학력도 의심될 정도의.


내가 신입이나 주니어 정도였다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마케팅 업계에서 에이전시부터 한국회사, 외국회사를 두루 거치며 산전수전 겪어온 내게 그녀의 일천한 능력이 드러나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직장 생활에서 만난 보스는 최선을 다해 성과를 만들어준다는 자세로 일하는데,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시 투성이었다. 도덕적 해이 또한 심해서 배임 내지는 횡령에 가까운 행태를 수없이 목도했고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권한의 한계에 여러 번 좌절했다.


마케팅이란 고도로 정밀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드는 인사이트를 발휘해야 하는 복잡한 업무인데, 해당 업무 경험이 없다 보니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칠 의사결정을 서슴지 않았고, 이미 마케팅 분야의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내게 경영학과 1학년이 보는 마케팅 교재를 보며 함께 마케팅 스터디를 하자고 했다.


MBA를 졸업했고 수없이 많은 뷰티 브랜드를 론칭한 경험이 있으나 지금 이 회사에는 아직 마케팅의 '마'도 시작을 안 했다고 큰소리치던 그녀는, 내 앞에서 STP가 뭔지 아냐며 장황히 자랑스레 설명을 했다.


엉망진창이었다. 매일이 삽질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맡은 브랜드이니, 반드시 성공시켜 보겠노라고 고군분투했으나, 끝없이 나를 도매급으로 매도하며 가스라이팅 하는 것에 질려서 이직 제안을 받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그렇게 새 곳에서 억대 연봉을 찍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갔다는 표현이 딱 맞는, 드디어 월급쟁이 내 인생에도 이런 날이 온다는 기쁨과 자부심이 생겼다. 내가 기특했다. 정신없이 적응하고, 일하며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그날은 초여름의 토요일 오후였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별다를 것이 없던, 아주 평범한 토요일일 뿐이었는데, 갑자기 내 안에서 쇳물이 끓어 넘쳐 모든 것이 녹아 일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격하게 거스를 수 없이, 억누를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를 어찌어찌 보냈고, 그 다음 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어떤 식욕도 없었다. 꼼짝하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서 영화만 봤다. 한편 보고 나면 기계적으로 아무 영화나 골라서 한 편 더 보는 식으로 아무 의식 없이 영화만 틀어놓고 멍하니 보았는데,


그날 본 영화 중 하나가


츠레 (남편)가 우울증에 걸려서




영화에 등장하는 남편의 우울증 증세가 최근의 나와 똑같았다.


설마.. 싶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어 출근을 하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회사에 가서도 멈추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었다.


당연히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손수건을 손에 감싸 쥐고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탈진하듯 힘이 들어오지 않았고 책상에 엎드려 눈 감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내내도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인간의 눈에서 이렇게까지 많은 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눈물은 쏟아지는데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냥 슬펐다. 모든 것이 하고 싶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숨을 몰아쉬면서 안정하면 또 어느새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눈물이 멈추지 않는 매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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