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정하 Jul 31. 2023

억대 연봉 찍고 5개월 후, 실업자가 되었다

episode 5.  한 여름밤의 꿈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여 받은 한달의 병가.


침대에 누워 눈물만 뽑아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상담에 가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생계의 전쟁터로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을 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나를 숨 막히게 했던 사무실이라는 공간.


그 공간 안에서 나를 절대 반길리 없는 상사의 멸시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살기 위해 그곳을 향하게 된다면, 책상 모서리에 관자놀이를 찍어대던지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몸을 던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휴직이 마무리되어갈수록 그 공포는 극심해졌고 두려움 속에서 고민하는 내게 사람들은 말했다.


꾹 참고 딱 1년만 버티라고.

퇴직금까지만 받고 나오라고.

그 연봉 아깝지 않냐고.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고 그곳을 향해 저녁까지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마주하고 질책을 받고 괴로워하고 속상해하는 그 일련의 하루를 상상해 봤다. 퇴근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벌벌 떨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내어 울었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거대한 공포였다.


병가 만료를 며칠 남겨놓은 시점, 인사팀에 메일을 써서 퇴사 의사를 밝혔고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예의상으로라도 다시 생각하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인생 최고의 연봉을 찍고 5개월 만에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매달 반드시 빠져나가는 돈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전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매달 나가야 하는 주거비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간다면 한 달에 100만 원만 벌어도 괜찮았다.


재취업을 하기에는 몸과 마음의 체력이 모두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고, 사람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버스나 지하철도 타기 힘들었다. 마지막 직장에서의 근속 기간은 5개월 밖에 안되었고, 나의 퇴직 사유는 우울증으로 인한 병가 후 자발적 퇴사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고 싶지 않다.'였다.


심리상담료는 비쌌고, 정신의학과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다.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회사를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지 않으면 천상 굶어 죽을 일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회사를 가지 않고 돈을 벌어야 했다.


노트북을 켜고 '재택 알바'를 검색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고,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화상 영어수업 강사 모집

위촉직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고용형태였고 급여는 최저임금이었다. 4대 보험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택근무였다.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테스트 차원에서 도전하여 취득했던 TESOL 자격증이 있었다. 수년간 영어를 쓰며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영어 사용에 문제도 없었다.


이보다 딱 맞는 일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입사지원서를 쓰고 나니 해가 뜨려 했다.


잠을 청했다.


억대 연봉은 그렇게 한여름 밤의 꿈으로 저물었다.


이전 04화 억대 연봉 찍고 4.5개월 후, 비만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