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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ul 31. 2023

억대 연봉 찍고 4.5개월 후, 비만이 되었다

episode 4.  우울증은 뱃살을 타고

상담을 시작했다.


이걸 한다고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서 무척 회의적이었다.


결론적으로 상담을 하며 나의 깊은 우울감이 떨쳐지거나 삶에 대한 다시 한번의 열정이 샘솟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간 직장생활을 대했던 태도, 나를 대했던 태도, 마주했던 상황을 대했던 태도.


이런 태도들에 대해서 제3자의 시선이 되어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각도로 그것을 관조하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타인의 시선이 되어 보는 것은 매우 달랐다.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이 착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팀에서도 나 혼자 하드캐리 했는데 인정받지 못했고 미움만 받았어요.'


직장 생활 내내 왕따였지만, 팬이 있어야 안티도 있다며 당당했다. 하지만 그 미움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나는 질식했고 정서적 뇌사상태가 되었다.


그 숨 막힘의 결말로 이도저도 아닌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어 있는 내게 상담사가 말했다.


'당신은 상사가 제일 싫어할 사람이에요.'


'나를 뛰어넘을 것 같은 부하를 좋아할 상사는 없죠.'


'사회생활은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살아남아요.'


그저 분하고 억울했던 불과 얼마 전까지의 직장생활을 반추하며 털어놓는 내게 전혀 예상 답안에 없던 상담사의 말들이 쏟아졌다.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은 스스로 총알받이가 되겠다며 기꺼이 팔 벌려 뛰어다니던 천둥벌거숭이 같은 짓이었다. 난 맞추기 쉬운 과녁이었다.


일은 내가 다 했고 성과도 만들어 줬는데요?

라고 항변하는 내게 다시 한번 예상 답안 너머의 말이 이어졌다.


상사들은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을 좋아해요.


일 잘하는 사람은 이용 대상이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팀과 상사가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태워 쓰던 땔감에 불과했다.


나를 태워 불타오른 성과에 사람들은 승진을 하고, 성과급을 받았다.


나는 재가 되었다.


상담을 시작하며 잊고 있던 통증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우울증이 나를 집어삼키기 상당 기간 전부터 머리가죽을 누군가 잡아 뜯어 얼굴까지 벗겨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수시로 찾아왔다.


얼굴의 반쪽이 얼얼해지고 날카로운 무엇으로 찔러 마구 파헤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었지만 타이레놀을 비타민처럼 먹어가며 버텼다. 그냥 그러다 말겠지 했다.


뭐가 중요한지를 몰랐다.


얼굴이 뜯기는 통증이 지나가면 날개뼈 뒤쪽에 손바닥만한 크기로 특정 부분이 실컷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는데, 회사를 나오고 얼굴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등의 통증만은 끝까지 따라다녔다.


휴직 전 가끔 한의원에 가서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침을 맞고 뜸을 떴지만 그때만 잠시 나아질 뿐 또다시 견딜 수 없는 뻐근함이 찾아왔다.


상담을 받으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본적 답에 가까이 다가서자 다시 그 뻐근함이 밀려왔고 상담을 마친 후 근처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마무리하고 돌아서는데 인바디 기계가 보였다.


호기심에 올라서서 검사를 해 보았다.


경도 비만


우울증은 축 처진 뱃살이 되어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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