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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Aug 01. 2023

억대 연봉 찍고 6개월 후, 최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episode 6. 너의 이름은

회사로 가지 않는 것, 이것 하나면 되었다.


정신의학과를 정기적으로 가고, 끼닛거리와 맥주를 사고, 관리비를 내는 데 있어서 100만 원이면 족했다.


그저 나 하나 건사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누군가와 얽혀 상처받고 싶지도 않았고, 오만 떨며 상처 주고 싶지도 않았다.


화상 영어 수업 강사의 일은 단순했지만 업무강도가 높았다. 수업 외에 수강생 평가나 상담, 의무 교육 수강 등의 시간은 업무로 판단되지 않아 급여에 반영되지 않았다.


즉,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였다.


수강생들 중에는 아직 영어는커녕 한글도 떼지 못한 수강생도 많아서 공갈젖꼭지를 빨고 누워있거나, 집에 설치된 작은 미끄럼틀에서 무한 반복 미끄럽틀을 타는 아이, 가족 외식 중인지 불판 앞에서 푸른색을 뿜어내는 업소용 냉장고를 배경 삼아 앉아있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고 때로 어딜 가는지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수업을 받는 경우도 많다.


수업이라 할 수 없었다. 배움도 가르침도 사명도 없었다.


특히 수업 시간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경우가 난감했는데, 영어와의 노출을 높여주어야 하니 혼자서라도 열심히 영어로 말해달라거나 아이와 영어로 프리토킹을 해 달라는 요구 역시도 많았다.


주어진 수업 시간은 10분 이었다.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급여, 과연 이것을 수업 시간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쯤, 수업 화면에 한 아이가 '**년'이라 휘갈겼고 그 상황을 캡처하여 회사에 전달했으나 그 아이를 다른 교사에게 배치하는 것으로 사후 조치는 마무리 됐다.


위촉직이라는 고용형태였기 때문에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았고 퇴직금 역시도 없었는데, 소속된 직원 이상의 업무와 책임, 의무가 발생하는데 이런 처우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고용노동부에 문의를 했으나 위촉직은 일종의 자영업으로 볼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답변이 돌아왔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100만 원이 절실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것의 몇 배에 달하는 급여가 통장에 찍혀도 기뻐하지 않았던 나였다.


말이 좋아 화상수업 '교사' 였지, '사'자 붙을만한 대우도 아니었고 나 역시도 사명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나와의 만남을 매우 반가워하며 온몸을 다 써가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기계적인 웃음과 교재 읽어주기 속에서도 그런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화상 수업 시작 버튼을 누르면 이미 그 시작이 되기 전부터 손을 흔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수업 교재에 강아지가 등장했고, 강아지를 좋아하냐는 내 말에 아주 좋아한다고 답하며 선생님도 강아지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럼 좋아하지. 많이 좋아하지.
키워본 적 있어요?
응. 그런데 지금은 하늘나라에 갔어.
이름이 뭐예요?
베니란다.
베니? 멋지다..


수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 가족들조차도 잘 언급하지 않았던 우리 강아지 이름을 5살 어린이가 불러주었다.


아이가 불러준 것은 잊힌 강아지의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오랜만에 소환된,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이었다.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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