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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ul 30. 2023

억대 연봉 찍고 4개월 후, 그저 누워만 있었다

episode 3. 짬뽕 하나 갖다 주세요..

우울증 진단서를 내고 한 달간의 무급 휴직, 병가를 받았다.


이름뿐인 휴직이었다. 복직을 기대하는 이도, 원하는 이도 없었다.


마지막 퇴근 준비를 했다. 아마도 정상 퇴근 시간을 넘겼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사무실에서 짐을 챙겨 나서는 내게 팀의 막내 사원이 따라 나와 인사를 건네었다.


건강해져서 다시 만나자고 했던 것 같은데 나의 대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겨우 끌어낸 힘으로 뭔가를 말했을 텐데,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회사 정문 앞에 서있던 기억이 그곳에서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 후 어떤 일상을 마주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날 오전, 내가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팀 단체 톡방에서 뭔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고 거기에 한마디 내가 던지자 그 단톡방의 대화가 멈추었다.


온 집의 커튼을 드리웠다.


기어가듯 방 안으로 들어가 털썩 침대에 드러누웠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눈물은 멈췄다. 머리에서는 흘려보내라고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데 눈 인근에서 무엇이 억지로 물세를 막는 느낌이었다.


머리와 마음에서는 피 섞인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제 눈물의 형상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역류하고 있었다.


세 번 정도까지 밤과 낮의 바뀜을 세었고 그 후로는 세지 않았다. 욕실에도 시계를 둘 정도로 시간에 예민했던 나였다.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없어진 내게 시간은 그저 지루한 것이었다. 가끔씩 누운 자세만 바꿔가며 방 안에 꽉 찬 우울의 덩어리가 한데 섞여 웅크리고 있었다.


여러 업무와 인간관계로 인해 늘 세 자리 숫자 적힌 빨간 동그라미가 떠있던 카카오톡은 울리지 않았다.


속세를 떠나 은밀하고 어두운 나의 세계로 들어오자 마치 어딘가에서 일러두기라도 한 것처럼 연락이 끊겼다.


몇 번의 밤과 낮이 지났을까, 그저 광고 메시지라 생각하여 단발로 울리는 진동을 무시하고 있던 때에 조금 집요하리만치 전화가 울렸다.


겨우 힘을 내어 전화를 받고 얼른 끊으려는 찰나,


'**** 마음 상담실입니다. 예약하셨었는데 오늘 오시나요?'


휴직이 정해지면서 인사팀에서 회사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심리 상담을 연계해 주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회사돈으로 해주는 거라는데.' 하는 생각과 '힘들어도 꼭 오셔야 해요. 꼭 오세요.'를 연신 말하는 전화 너머의 누군가의 목소리로 '나 아직 살아있음.'이 비로소 환기되었다.


황신혜밴드의 짬뽕을 아는가?


그 노래를 작곡한 아저씨가 실연의 아픔에 수일째 눈물을 흘리고 칩거만 하다가 겨우 정신이 들고, 사람 목소리가 고파 전화한 곳이 중국집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힘을 짜내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고 했다.



짬뽕 하나 갖다 주세요..

https://youtu.be/X9a6c1IQp0o 


상담 꼭 받으러 오라는 그 말이 내게 짬뽕이었다.


집을 나섰다.


햇빛이 눈을 찔렀다.


그 새 완연한 여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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