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나의 가해자.
더운 나라, 6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나라로 그의 등을 떠밀듯 보낸 것은 나였다.
그가 취업이 결정되어 출국하던 날에도 난 울지 않았다.
출국 전날 그는 내게 복숭아 한 박스를 사주었다.
가족들의 저녁 간식거리로 한 박스의 복숭아는 금세 사라졌다. 복숭아가 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의 부재가 실감 났다. 이제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꽤 긴 시간을 함께 했기에 그곳에서 자리 잡기를 하기까지의 기간은 별 것 아니라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영영 멀어진 이유가 되었다.
내 생각이 상대도 같으리라는 착각이자 오만함.
그는 떠나고 9개월 만에 나타나 입 안에 토사물을 머금은 채 종종거리는 취객처럼 할 말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다 나의 채근에 그곳에서 만나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사라와의 관계를 떠듬떠듬 우물거리듯 고백하고 다시 그곳으로 떠났다.
돌아간 그곳에서 다시 만났을 사라에게도 이도저도 제대로 못 밝힌 채 벼랑에 있는 안타까운 연인에 빙의되어 부둥켜안고 침대 위를 뒹굴었을 것이다.
내게 정리하겠다고 제자리로 오겠다고 했지만, 종종 밤새 연락이 되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화상통화를 하는 날이면 일 때문이라며 노트북을 켜놓고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집중하는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그의 안경에는 노란색 카카오톡 대화창이 또렷하게 비쳤다.
너무나도 얕은 수의 그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으나 그때의 나는 헤어짐보다 이 철딱서니 없는 짓거리를 바로 잡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를 미치도록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의 상처가 헤어짐으로 인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사라와의 이별여행이었을, 내게는 출장이라고 거짓말했던 여행 후에 그는 많이 달라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내게 충실했고 다정했다.
그는 원래가 매우 다정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사라에게도.
또 내가 몰랐던 누군가에게도.
머지않아 다가온 추석을 맞아 한국에 왔고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남자친구의 면모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 6시간을 날아 그곳으로 돌아갔고, 나는 출근을 했다.
맥심 커피를 타서 전자레인지에 10초쯤 더 데워 자리로 가져와 마신 후 노트북을 켜고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었다.
맥심 커피가 담긴, 손을 못 댈 정도로 아주 뜨겁게 데워진 컵이 키보드에 얹힌 내 왼손에서 약 10센티쯤 거리를 두고 놓여 있었고, 나는 가볍게 양다리를 박자 맞추듯 까딱이며 부팅되는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폰을 바라보았는데 불편한 저릿함이 밀려왔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씨 여자친구 되시죠?
****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끔씩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는 숨이 쉬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심장과 연결된 중요한 혈관들을 모두 뭉텅 잘라버린 느낌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사라였다.
요는 그러했다.
나는 그와 오래 만나왔고 나는 당신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한국에 가서 정리한다더니
하지 못하고 왔고 나를 떨쳐내려 하는데
나는 그럴 수 없으니 네가 물러나라.
무례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말투, 정제되지 않은 어휘들.
눈도 못 마주치고 더듬거리며 사라의 존재를 말하던 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나는 지금 일해야 하는 시간이라 연락해 줄 수 없다고 잘라내려는 찰나, 폭격처럼 쏟아지던 앞뒤 안 맞는 메시지들 사이로 가장 문법적으로 맞는, 한 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 임신했어요.
더 할 말이 없었고, 바로 국제전화를 걸어 그에게 사실 확인을 한 후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반쯤은 기어가듯 사무실 밖의 계단으로 나가 쪼그려 앉았다.
마음을 삭히고 다시 연락을 해보니 그는 취해있었다.
그 정도인 사람이었다.
사라에게서는 어떻게 할 거냐는 메시지가 계속 오고 있었고, 그녀의 천생연분은 울며 술에 취해있었다.
세기의 인연이었다.
그는 이틀이 지나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바로 나타나지 못한 이유는 사라가 여권을 뺏어 도로로 뛰어드는 것을 저지해야 했고, 결국 여권을 돌려받지 못해 긴급하게 다시 발급받아 오느라 그랬다고 했다.
여권을 갖고 있을 정도의 사이의 여자라는 것은 한 이불을 가끔 덮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매일 덮고 사는 사이라는 것임을 알리는 것일 텐데, 이렇게 바로 앞의 유추도 미리 못 보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마비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지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사라와도, 나와도 이어지지 못했다.
그와 헤어짐을 결정짓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기도 했던 이 일에서 내가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그가 벌인 일들만이 아니었다.
사라의 연락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된 내게 용서를 구하러 급히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남긴 그의 아버지 편지에는 잘못을 꾸짖는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종교적 임무를 책임지는 직업이었다. 그런 일을 한다면, 어른이라면, 이런 자식의 허물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종교적 신념을 강권하던 그는 알고보니 신이 두렵지 않은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와 사라.
나에게는 그저 인면으로 수심을 품은 두 존재에 불과했으나 사라는 안타까웠다.
타국에서 애인 있는 상태의 남자를 사랑했고, 임신까지 했지만 그는 제대로 시작할 생각이 없다며 아이를 지우고 각자 갈길을 가자고 하는 상황에 놓인 현명하지 못한 여자.
그 상황에서도 그런 남자 붙잡겠다고 나에게 연락해 꽃밭에 불을 질렀음에도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수치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나의 가해자였지만, 피해자이기도 했으며 결론적으로는 구원자였다.
사라가 아니었다면, 그 모든 죄악질을 회개의 이름으로 갈음한 그의 다정함에 취해 나라는 존재가 깎아지는 것도 모르는 미물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랫동안 내 안의 분노 언저리에 그와 사라가 손을 잡고 서성이고 있었고, 많은 것을 떠나보내고 잊고 덮어버리고 나니 아스라이 그들의 존재가 기억이 났다.
망각은 축복이었다.
이젠 안녕, 나의 가해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