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할래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단연컨대 일요일 밤에 먹는 커피이다.
풀타임 직장인 시절 커피를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커피란 출근 해서 잠을 깨우기 위해 마시는 각성제와 같았고, 식사 후 커피 한잔 하러 가자는 동료들의 제안은 밥 먹고 지나가는 길에 올리브영 한번 들르는 것처럼 습관적이고 관성적인 별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저 잠 깨우고 집중력을 세우기 위해 마시는 탕약에 불과했었다.
커피가 맛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니, 커피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은 웃긴 허세 내지는 허영이라고 생각했고 커피를 함께 마신다는 것은 직장 내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준의무적 행위에 가까웠다.
커피 맛 모르며 일하는 사이 30대는 끝나가고 있었고, 내 안의 영업 기질에 근간한 공감능력과 추임새력, 스트레스 압박력이 위기임박 신호를 보냈다.
종종 숨 쉬는 법을 잊은 듯 호흡이 멈출 때가 있었다. 숨 쉬는 법을 기억해 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고 이어서 온몸의 피가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듯한 아주 맹렬한 출혈감을 느꼈다.
몸과 마음이 매우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았고 수면유도제와 술을 먹어야만 겨우 눈을 붙이고 아침이 오면 겨우 잠들었던 눈을 열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정서라는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일상, 생계를 위한 노동, 인간관계 그 어떤 것도 이어나갈 수가 없었고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드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뜨는 그 평범한 진리가 새로웠다.
여름이 저물어 가는 시점의 밤공기는 깨끗했고 선선했다. 낮의 냄새가 이산화탄소라면 밤은 산소였다.
불현듯 커피에 대한 생각이 켜졌다.
아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찬장을 뒤적거려 직장인 시절 아침잠 깨우기 위해 3개씩 타먹던 카누를 발견했고, 한봉을 꺼내었다.
자뭇 진지한 자세였다.
커피 포트에 물을 끓였다.
보글보글 소리.
설레었다.
컵에 커피가루를 붓고 쪼르르 물을 부었다.
작은 집에 커피향기가 퍼졌다.
사소하지만 압도적인 감동이 밀려왔다.
경건하게, 컵을 양손으로 쥐어 들고 잠시 커피의 색을 응시한 후 조심스레 한입 마셨다.
호로록.
구수한 듯 향기롭고 씁쓸한 듯 부드러우며 코로 전해지는 아주 약간의 신맛에 한여름에도 동상에 걸려 굳어있던 감각의 해빙이 느껴졌다.
커피는 이런 맛이었다.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초기에 느꼈던 행복이 점차 불시에 급습하는 매연 같은 생계의 고단함으로 가리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월요일 아침, 사람의 파도에 부딪혀 까치발 해야 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하지 않는 결코 작지 않은 기쁨을 환기할 필요가 있을 때, 커피를 탄다.
이 커피는 승리감도, 안도감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도망칠 날만 바라보다 낙오된 패잔병임을 늘 기억하며, 여전히 총탄이 날아드는 저 먼 곳의 화염을 물끄러미 볼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불어 미안함을 느낀다.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온몸이 녹는 모멸감을 버텨낼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나는 이제 그곳을 떠나왔다며 위세 당당히 삶을 자랑하며 약 올리듯 누군가에게 박탈감을 주어서도 안되고, 이만해서 다행이라며 감성 충만하되 공감은 결여된 미문으로 그래도 견뎌보라거나 힘내라 말하고 싶지 않으며, 어서 뛰어나오라는 책임 없는 선동을 해서도 안된다. 그건 함께 죽어가며 일하던 사람들에 대한 건방진 무례다.
나는 겪었지만 다음의 누군가는 겪지 않도록 부수지 못하면 균열이라도 내고 싶었던 회사 속 겹겹이 존재하던 유색 유리들.
나는 탈출을 꿈꾸다 방출된 어항 속 거북이에 불과하다.
뻔뻔하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이렇게 별것 아닌, 글 나부랭이로나마 말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커피 한잔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