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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Aug 19. 2018

내게 감수성을 준 사람

나를 키운 8할, 첫사랑

이 빡빡한 삶 속, 나를 밀어올린 뜨겁기도, 가슴시리기도 한 부력-첫사랑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라 하던 시인의 말처럼, 나를 키운건 이래야할지도 저래야할지도 제대로 모르며 객기와 오기로 어느날 끝내버린 첫사랑이리라.  

이보다 쿨할 수 없다는 듯이, ‘우리 지금 어떤 것 같아?’라는 말로 시간을 갖고 좀 생각해보자던 것이 어느덧 12년이 흘렀고, 정작 끝낸 것은 나였으면서도 꽤 긴 시간동안 온갖 찌질한 짓을 하며 시간낭비 연애를 하다 대학을 졸업했고, 아스팔트 보다 밑에 있다는 미천하기 짝이 없는 대행사 인턴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점차 연차를 올리며, 피지컬만으로는 어쨌든 어른이 되어갔다.

이제는 고전이 된 미드 ‘섹스 앤더 시티’ 주인공 캐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다가 헤어지면 그 사랑은 어디로 가버리는거냐고 자조적으로 말하자 그 친구인 사만다가 말한다.

‘다음 사람에게!!’

그러자 캐리의 말

‘No...그건 다른 사랑이지.’

....

한번이라도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해본적이 있고 또 그 사람과 헤어져본 사람들이 다 똑같이 괴로워하는 것은, 더 이상 그 사람을 볼수도 만질수도 없는 엄연한 현실보다도 그 뜨겁게 불나방처럼 스스로를 던지게 만들던 그 사랑이 어디로 가버렸는지를 알 수 없는 그 막막함 때문일 것이다.

‘니가 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왜 이러는거지?’

하고 애끓는 분노를 쏟아봐도 정답은 정해져있다.

수저 하나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이었지만, 수저 하나만도 못해질 사이가 바로 연인이니까.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회한때문이 아니더라도 잊기위한 노력을 할 때 단언컨대 우리는 반걸음씩 나아갔을 것이다. 너무나 가난할 때 만나 그럴싸한 데이트 한번 못한게 너무 서운하고 속상해서, 언젠가 길에서 만나 나이스한 미소를 띄며 안부를 물을 때 ‘나 어디다녀.’ 라고 말할 수 있는 직장을 잡으려 노력했고, 헤어진 후 초췌해진 내가 너무 꼴보기 싫어져 얼굴을 다듬고 다시 화장을 하며 조금씩 더 한듯 안한듯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손에 익히게 되었듯이.

나의 커리어에, 나의 역량에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도를 구성하는 그 기저에는 한 사람이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을 때 한 솥 가득히 보글보글 끓던 물이 기어이 끓어 넘치듯 그리움이라는 것이 터져 흘렀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그때가 그리운 것인지, 그대가 그리운 것인지도 명확치 않아졌고 그 뜨거웠던 순간들이 끊어진 필름처럼 가끔 피어오르지만, 지금은 예능캐릭터가 된 폭풍저그 홍진호의 리즈시절을 알게 된 것도, 뭔가 어줍잖은 상황을 빨리 수습해야할 때 GG치라는 말을 알게된 것도 한 사람 때문이었다.

게임방송 시청은 ‘남 노는거 구경하는 짓’이라 하던 나였지만 옆에서 줏어듣던 풍월로 마케팅 대행사 시절 ‘적절하다 / 9시 방향 / 이건 GG칩시다’ 등의 말을 회의시간에 썼다가 팔자에도 없는 게임 마케팅을 맡을뻔 한적도 있는데, 결국은 맡지 않았지만 ‘원피스입는 긴머리 신입녀가 게임 좀 한다.’ 는 근거없는 소문과 함께 나름 반전매력의 참신한 캐릭이 된적도 있으니 이 역시 내가 어이없어하던 그의 게임방송 사랑이 본의 아니게 만든 나비효과.

레드핫칠리페퍼스, 퀸, 유투, 프린스, 너바나를 알려준 것도, 엄지손가락뼈의 아래 관절을 꾸욱 누르면 뚝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한 사람이었다.

헤어지고 단 한번도, 우연히 만난적이 없지만, 언젠가 그가 나를 어디서 본다면 아쉬워하도록, 후회로 몸서리치며 잘 먹지도 못하던 술을 퍼마시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나라는 사람의 내면 모터를 움직인 주요 동력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서로 상처주기 콘테스트 하듯, 헤어진 후 악담을 주고 받던 적이 있긴하지만, 그건 서로 알면서도 하지 않은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의 다른 표현이었다.

연애만큼 한 사람을 빨리 변화시키고, 또 빨리 학습시키는 것이 있을까? 수십년간의 습관이 한 사람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바뀌고, 자기도 몰랐던 나쁜 버릇이 한번의 지적에 고쳐지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인생 중 겨우 3년 정도에 불과한 그 시간이, 나의 얼마나 많은 자격지심을 노력으로 치환시켰는지를 생각할 때, 이제와 고백하건데, 아마 시간을 돌이킨다면, 그때와 같은 상황이 될 것을 알아도 나는 그 한 사람과 20대를 보내며 또다시 처절히 아플 것 같다. (물론 그 처절함이 나를 벼랑으로 밀어버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나의 시선에 다른 창문을 열어주고, 이렇게 사랑이 시작될수도 끝날수도 있음을 알려준 사람.

가진건 젊음 뿐인, 가난한 주제에 그저 그렇게 마음만 갑갑하던 시기에 청춘드라마같은 추억과 함께 네이트판에나 올라올만한 사연들도 곳곳에 심어 놓아 나의 20대를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어, 그리움에 아련해지다가도 분노로 맥주를 까게 만드는 사람.

하지만 그로 인해, 나 정말 열심히, 멋있어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취업 앞에 사랑은 시간낭비, 사치라 여기는 20대들이 많아진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사회문제이다. 젊은 날의 사랑이 얼마나 새로운 경험, 지치지 않는 생각의 시간을 부여하는지, 헤어짐의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근육이 되어 치사하고 쓰라린 순간들을 만나게 될 때, 이를 악물어도 견딜 수 있는 마우스피스가 되는데, 그 특별한 시간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너무 비극이다. 정말 건강한 사회란, 아픔에도 내일을 희망하게 만드는 건강한 멘탈이 존재해야 하고, 그 멘탈을 연애로 배울 때, 누군가에 대한 공감이라는 것을 함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남자가 되고, 소녀가 여자가 되는 진정한 성장통은 진저리쳐지는 연애의 한판이 끝나야 제대로 온다. 그 성장통없이 더 큰 세상에 들어간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 이해, 그리고 한뼘 너머의 더 큰 생각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여러가지의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던 불면의 밤은 기획서 앞의 여러 옵션을 생각해내는 인사이트가 될 수 있고,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수없이 자문을 구하고 지식인을 뒤적이던 노력은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붙들어잡는 센스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만 기억을 쫓으며 아파하리란 분노가 나를 이렇게 밀어올렸듯, 어쩌면 그 역시도 같지 않았을까?

하지말아야할 것을 알면서도 그리움과 궁금함을 못이기고 들여다본 그의 SNS에서 내가 좋아하던 시를 발견하고, 나의 것과 거의 똑같은 아이디를 쓰는 것을 발견하며 헤어진 후 단 한차례의 미련행위를 하지 않고, 그 흔한 ‘자니..?’ 문자도 없었으면서 치사하고 유치하게 나의 취향을 벤치마킹 한다며 어이없어했지만, 10년의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그게 그 사람으로써는 터져나오는 그리움, 소리없는 아우성, 어떻게든 남긴 나의 흔적일지 모른다는 나만의 소설을 써본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빛인줄도 모르던 그 빛나던 시기에 함께 나눈 내밀한 대화가 그의 취향이 되고, 성정이 되어 30대의 괜찮은 남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닮은 한 남자가, 그를 닮은 내가 서로 가닿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들. 서로 닮은지도 모른채 살아가는게 남은 삶의 필연이라면, 그 혼란의 숲을 헤쳐나갈 오기를 남겨줘서, 좋은 음악은 함께 듣던 순간의 온도로 기억됨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내가 후회하는 건, 그렇게 끝낸 그날뿐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아직도 생각없이 사냐고, 정신차리게해줘 고맙다고 던져낸 말들은 사실 그리웠다는 뜻의 다른 말이었고, 남자가 사랑할 때를 알게해준 900여일간의 시간이 나를 여자로, 지금으로 밀어 올려줬다고 말이다.

지금 그의 취향, 그 어딘가에 녹아있을 스물한살의 내가 잘있는지 궁금할 때, 또 한번의 잊음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하고 일에 몰두한다. 날아가버린 내 사랑이 그의 오래된 아이디 안에 숨쉬고 있길 슬며시 바라는 마음은 뒤켠에 두고 난 살아간다. 잊음을 위해, 어디선가 이 글을 볼지도 모를 한 사람을 위해.

이제 내게 남은 그의 흔적은 때때로 나도 모르게 하는 엄지손가락 밑 관절 누르기 습관뿐인게 말할 수 없이 쓸쓸할 때가 있다.


무심결 내는 엄지손가락 관절의 ‘뚝’하는 소리가 그날의 나로 이끄는 문 앞의 노크가 되건만, 그 문을 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낸다.

영화 첨밀밀에서 단 하루의 사랑으로 평생을 그리워하는 여명의 고모가 하던 대사처럼, 나도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그는 나를 잊었을거야. 하지만 괜찮아. 내가 기억하니까.’

덧붙임: 헤어지고 난 한번도 홍대앞 놀이터를 가지 못했다. 저 멀리서 배경없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질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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