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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Oct 09. 2023

손흥민이 꿈에 나왔다.

종종 대하서시사에 버금가는 블록버스터급의 꿈을 꾸지만 깨어나면 언제 그런 명작에 출연했냐는 듯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뚜렷이 기억난다.

꿈 속이지만, 나는 손흥민의 연인이었다!


손흥민이 누구인가!


월드클래스가 손흥민이요, 손흥민이 곧 월드클래스 아니던가! 그가 내 꿈에 출연했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이었다니..!


하지만 그 정황까지만 기억이 날 뿐,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무슨 달콤함을 함께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슈퍼스타를 개런티 한 푼 주지 않고 모셔왔건만 왜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 아스라이 사라진 기억에 안타까워하며 스스로를 꾸짖을 뿐이다.


꿈을 꾸면서도 '꿈에 손흥민 나온 걸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하며 어찌나 다짐을 했는지 아침에 눈뜨자마자 한 말이 '나 꿈에 손흥민 나왔어.'였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탓에 씻을 때 유튜브 틀어놓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오늘만큼은 손흥민 다큐를 틀어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욕실로 향했고 세수하고 나온 후에는 자연스레 손웅정 감독 편 유퀴즈를 반복 재생하며 외출 준비를 했다.


살아있는 위인전, 현세에 만나는 전설과도 같은 이가 바로 손흥민 아닌가.


그가 내 꿈에 친히 알현한 엄청난 날이다. 그렇다. 이것은 결단코 로또를 사라는 계시다.


대학 시절 한 동기의 지난밤 꿈에서 내가 돼지를 타고 로데오 하더라며 기쁜 마음으로 로또를 샀으나 5천 원도 당첨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꿈 좋다고 로또를 사는 것은 일확천금을 바라는 야망의 실패가 공익사업자금 조성에 기여하여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행위로 승화되는, 다시 말해 없는 셈 치고 좋은데 돈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왜냐면, 손흥민이니까.


만날 사람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계속 '꿈에 손흥민 나왔으니 오늘은 로또를 사야지!'를 되뇌며 발걸음 총총 이동했다.


오늘은 꿈에 손흥민이 나왔으니 로또를 사야 한다는 생각에 두리번거리며 복권가게를 찾지만, 왜 오늘따라 이토록 로또가게는 없는 것일까? 그전에는 한 집 걸러 로또집 같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다 폐업이라도 한 것인지 당체 보이지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복권가게가 있는 즉시 들어가겠다 결심했다. 손흥민이 7번이니 일단 7번부터 골라서 로또 숫자를 정하고 기왕 하는 김에 7장을 사겠노라며 나름 치밀한 당첨 전략을 세웠는데 왜 로또 가게는 보이지 않을까?


결국 로또가게 찾기를 완수하지 못하고 지하철을 타고, 환승하고 결국 도착역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나와 집까지 이르는 순간까지 로또 가게를 찾지 못했다.


오늘 꿈에 손흥민이 나왔는데, 왜 로또가게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나 오늘은 꼭 로또 사야 하는데, 손흥민이 나왔는데, 월클이 나왔는데 하며 마음이 다급해진다.


집에 도착해서도 '오늘 로또 사야 하는데, 손흥민이 꿈에 나왔는데..'를 되뇌며 밥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한 후 다시 손웅정 감독편의 유퀴즈를 틀며 '아 오늘 꿈에 손흥민 나왔는데..'를 웅얼댔다.


분리수거하는 날이라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도 두리번거리며 '아니 왜 이 동네는 로또가게 하나가 없나?' 하며 아쉬움의 한숨을 내뱉으며 또 말한다.


'아 오늘 꿈에 손흥민 나왔는데, 오늘 로또 사야 하는데..'


쓰레기를 다 버리고 나니 문득 약간 기름진 과자에 맥주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 분리수거 바구니를 든 채로 근처 편의점으로 발길을 향하면서도 나직이 말한다.


'아 오늘 꿈에 손흥민 나왔는데, 오늘 로또 사야 하는데..'


이런 나의 절박함에도 로또가게는 보이지 않아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서 육포와 꽃게랑, 썬칩을 골라 집었다.


바삭한 감칠맛이 맥주랑 얼마나 어울릴지 두근거린다. 손흥민과 로또에 대한 생각이 잠깐 주춤거린다. 그러나 계산을 하며 여기가 로또 파는 편의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로또를 팔지 않는 곳.


'오늘 꿈에 손흥민이 나왔는데.. 아쉽다..'


과자를 한 아름 안고 집에 돌아와 맥주를 따르고 꽃게랑을 안주삼아 한잔 한다.


언제 먹어도 짜릿하게 맛있는 차가운 맥주. 그 착착 감기는 맛의 소멸이 아쉬워 찹찹 거리며 또 한 번 말해본다.


'아 오늘 꿈에 손흥민 나왔는데.. 로또 샀어야 하는데..'


로또가 되려면 일단 사야 하는데, 살 방법이 이리 없다니.. 심지어 손흥민이 나온 날인데!


안타깝지만, 당분간 그의 내 꿈 재출연은 힘들듯 하다.


그가 튀니지와의 경기를 준비하러 오늘 파주 NFC에 입소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로또 당첨 전략은 다음을 기약하며,

머리 위로 가득히 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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