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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Nov 02. 2023

빈대의 습격을 추억하다.

극혐의 아이콘: 빈대

인천에서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우리나라에도 빈대가 있나?' 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곧 고개를 끄덕였다.


꽤 잘 사는 나라에서 그들에게 셀 수 없이 살을 뜯겨본 내게 빈대는 과거형도, 후진국형도 아닌 생생하게 언제든 습격해 올 수 있는 살아있는 짜증이자 혐오의 아이콘이다.


빈대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옆에 있어왔다. 그리고 여러 바이러스 만연의 시기를 거쳐 그들도 진화하고 더 강해졌다. 그런 그들이 우리의 곁에 다시 돌아왔다. 참으로 반갑지 않고 피곤한 일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기인 70년대를 거쳐, 80-90년대를 추억하는 한 장면 중 하나인 '소독차'를 대표로 한 정부 주도 방역활동의 노력, 높아진 위생의식과 주거환경 개선과 함께 빠르게 품질 향상된 다양한 살충 제품들의 확산으로 빈대는 박멸된 것으로 알려졌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는 어린이, 2000년대 10대 시절을 보낸 내게 빈대는 본 적은 없으나 뭔지는 아는, 빈대는 해충의 의미보다 몰염치한 사람에게 쓰는 말로 더 익숙했다.


그런 내가 빈대를 직접 마주하고, 흡혈 당해 상당기간 견딜 수 없이 간지럽고 열까지 나는 고통을 겪었던 것은 6년 전.


꽤 잘 사는 외국의 한 도시에서였다.


연휴를 맞아 방문한 그곳에서 일생 처음으로 빈대에게 뜯겼다.


처음에는 모기나 개미에게 물린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모기나 개미는 아무 데나 대책 없이 무는, 일종의 무작위 흔적을 남기는데 반해 빈대는 내 몸의 어디를 경로로 거쳐갔는지를 확연히 확인할 수 있는 일렬로 길게 이어진, 그들의 물어뜯음 흔적은 마치 연속성을 가지는 행군의 흔적 같았다.


그리고 그 간지러움이란 모기나 개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버물리와 호랑이 연고로도 듣지 않았던 그 간지러움의 고통은 점점 벌겋게 붓고 열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외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향할 때는 그 아쉬움에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 그저 창밖만 바라보며 몇 번이고 돌아보건만, 분명 그때의 내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한국에 가면 당장 피부과부터 가겠다며, 이놈의 빈대새끼들! 하며 울분에 젖어 그 어느 때보다 감격에 가까운 기쁨으로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피부과에 가서 벌겋게 부어오른, 빈대의 여정이 오롯이 드러나는 빨간 곡선 형태의 그것을 보여주자 의사는 말했다.


풀밭에서 놀았나요?

빈대에 물렸습니다.


빈대라는 말에  사뭇 놀랄 줄 알았지만, 그는 태연하다 못해 고요했고 진통제와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자 간지러움이 놀랍도록 사라졌다. 무심했던 그의 처방에서 마치 화타의 재림을 보는 듯한 감사를 느꼈다.


빈대의 습격에 다리 한쪽이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듯한 모습으로 출근하자 다들 어디서 이렇게 된 거냐며 물었고 '빈대에게 물려봤는가?'를 되물으며 타오르는듯한 열감과 극강의 간지러움이 주는 짜증과 고통의 참상을 알렸다.


모기보다 간지러우냐는 비교도 안될 간지러움을 들이대는 그들에게 나는 근엄히 말했다.


빈대란 지구에서 다 태워 괴멸시켜야 할 존재!

꽤 잘 사는 나라로의 휴가맞이 여행을 다녀왔을 뿐인데 몰골은 예방주사 맞지 않고 떠난 오지 여행에서 풍토병 걸려 정신줄 하나 붙들어 매며 귀국한 사람에 가까웠다.


나를 습격했던 빈대들의 본거지였던 휴가지의 그 침대는 여러 소독에도 불구하고 빈대 괴멸은 커녕 더 강해진 그들의 창궐만을 도왔기에 결국 버려졌다고 들었다.


빈대의 소굴 침대가 폐기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빈대 따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쾌적함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기뻤다.


입가에서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가 흘러나오며 이어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으렵니다.'로 마무리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EFPYyZAlWM


https://www.youtube.com/watch?v=-cXTbVHcI6Q


그런 서울에도 빈대가 몰려오고 있다. 빈대에 물려보았는가? 


물려본 자의 경험으로 한마디 보태자면, 일단 방역을 열심히 하고 그럼에도 그들이 습격한다면, 답이 없다.

일단 싹 가져다 내다 버리고 화형에 처해야 한다. 


코로나 가고 이젠 빈대인가?


인간의 삶은 결국 징글징글한 것들의 쉴 새 없는 습격 역사로 채워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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