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이버릿: 마스다 미리
엄혹한 코로나 시절, 동네의 도서관이 닫았다.
코로나 이전부터 극심한 비염으로 늘 마스크를 쓰고 살아왔기에 마스크 착용에 대한 불편은 전혀 느끼지 않았고,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고 회식을 하지 않게 된 것들이 기쁠 지경이었기에 코로나 블루는 남의 이야기였건만, 도서관이 닫히자 이루 말할 수 없게 우울했다.
오래된 백팩에 책을 가득 넣어 어깨에 지고 있는 것처럼 묵은내가 풀풀 나고 무게에 찌듦 그 자체이던 일상에서 2주에 한번 들러 읽을 책을 한 아름 대출해서 안고 집에 가던 결코 작지 않은 일상의 기쁨을 강제로 뺏기고 뺨까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시대의 그 갑갑함은 도서관 폐쇄에서야 실감이 났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 도서관이 다시 열렸다.
도서관 냄새를 다시 맡게 된 순간, 코로나 블루는 이미 날아가 나를 책냄새 속에 날개 젓게 했다. 도서관을 찾아가고 바로 직행한 곳은 마스다 미리의 책이 꽂힌 에세이 섹션이었다.
그녀의 책을 무슨 계기로 알게 되었고 언제 처음 읽었는지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멈췄던 내 생활의 기쁨을 되돌려 받자 가장 먼저 만끽하고 싶던 행복의 정점은 마스다 미리 에세이 읽기에 있었다.
화려하다 못해 수려한 미문도 아니고, 위대한 사람의 범접 못할 자기 혁신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이 들어 초밥을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파의 뿌리를 심어 키우는 이야기, 큰맘 먹고 비싼 옷을 한벌 마련한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남의 집 들여다보기처럼, 남의 삶을 마치 누군가의 어깨에 작은 사람이 되어 올라타 지켜보는, 글로 보는 생방송 나 혼자 산다의 시청자가 된 느낌.
TV, 유튜브, 넷플릭스는 절대 줄 수 없는 훔쳐보기의 그 짜릿함.
따뜻한 흰쌀밥, 구운 김, 계란프라이, 김치, 콩나물국이 함께한 누구나 다 아는 맛의 평범한 밥상 같은 그녀의 글은 코로나로 오도 가도 못하고 휴일이든 주말이든 일단 집에서 배 깔고 누워 이불 덮은 채로, 때로는 의자에 기대어 앉고 다리는 책상에 쭉 뻗어 올린 채로 맥주를 야금야금 먹는 그 순간을 완벽하게 완성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마스다 미리 같은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되겠노라고.
위대하지 않은, 그리될 수도 없는 지구의 먼지 같은 월급쟁이의 벌어 먹고 사는 얘기.
출근길과 퇴근길의 뻔한 시간, 퇴근 후 뭘 해도 재미없어 뒹굴거리는 호젓한 때.
오며 가며 슬쩍 열린 창문 사이로 지켜보던 어느 단정한 집을 본격 구경하게 되는 재미.
그런 재미를 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에세이 작가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