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퇴사를 했는지 손으로 꼽다가 헷갈려서 다시 한번 세어 보았다.
일 년에 몇 차례의 퇴사가 발생하기도 했고, 수년만에 한번 발생하기도 했다.
일단 입사만 한다면, 회사 마당에 수목장 될 비장함으로 입사한 곳이 한 번도 없어서일까, 아니면 눈치 없고 못생긴 여자친구처럼 상대의 헤어질 결심을 못 알아채고 그저 성실히 삽질을 했기 때문일까?
월급쟁이로 살며 퇴사는 매일의 순간과 맞닿아있었다.
지금 바로 퇴사할까?
언제 퇴사하지?
이직 알아봐야겠다..
회사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였다.
때때로 그들은 이유 없이 이별을 고하기도 했고,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를 말하며 밀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심히 궁박한 처사로 괴롭히는 상대를 참지 못하고 왈칵 내던진, 나 혼자만 가슴 시리던 이별선언에도 꿈쩍 않고 '어, 그래.'라고 답하는 차가운 애인이었다.
내가 이별을 고할 때 눈썹 하나를 실룩거리며 '왜?'라 답하는 경우도 있었고, 마지막 매너라는듯 '다시 생각해 봐'라고 영혼 없는 미련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결국 모든 이별이 다 그러하듯 '헤어져' 한마디로 관계는 다 끝났다.
이별선언을 하고, 몇 가지의 문서에 사인을 하고, 짐을 챙겨 나오면 끝이다. 회사의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그와 처음 만났던 날, 그와 무언가를 했던 꽤나 특별하고 대단해 보였던 일들에 대한 기억을 저 멀리 내면의 안개숲 속으로 밀어버린다.
그때 그 사람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 사람이 남긴 취향과 습관이 내 삶의 주변을 어슬렁 배회하다가 어느 날 딱 마주치는 순간들처럼,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있던 퇴사의 기억들은 국도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삶의 어느 부분에서 한 번씩 마주하게 된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고라니처럼, 예상치 못한 낙석들처럼.
입사가 있으면 퇴사도 있다. 때로 퇴사는 고통스럽기도 설레기도 했으며, 비정할 정도로 깔끔하기도 했고 질척이며 학을 떼게 만들기도 했다.
먹고살기라는 처절하고 고단한 삶의 이유를 싣고 내달리던 기차가 다음 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잠시 건널목 앞에 서있는 모습으로, 그렇게 퇴사는 인생의 여러 순간에서 '잠시 멈춤'할 건널목이자 과속방지턱이 되어 괴물화되어가던 나를 붙들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나를 키운 8할은 퇴사였다.
의미 있고 괜찮은 이별이었다.
그래서 이제 퇴사를 추억이라 부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