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늦봄의 어느 날 갑자기 멈추지 않는 눈물의 형태로 찾아온 우울증을 나는 벼락처럼 찾아와 여름처럼 저물었다고 말한다.
'몸을 가눌 수 없는'이라는 표현이 뭔지를 우울증으로 인해 알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이라는 의미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은 나의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직장이 사라졌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병원과 심리상담실을 오가는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눈물은 멈추었지만 나는 작아질 대로 작아졌다.
모두가 돈 벌러, 싸우러 나온 직장이라는 이름의 전쟁터로 뛰어들어가 양손에는 각각 총과 방패를 들고 뛰어다닐 자신은커녕 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슬쩍 문 열고 곁눈질하는 것조차도 두려워 웅크렸다.
꽤 긴 밤을 노트북에 이력서를 띄워놓고 한 줄 쓰지 못한 채 눈만 꿈벅거렸다.
우울증이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기세에 버티느라 웅크렸고, 중증의 우울증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들어가기가 무서워 웅크렸다.
이전이 타의에 의한 웅크림이었다면 이후는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문과 출신의 30대 월급쟁이로는 부러움을 살만했던 연봉에도 기뻐하지 않았던 시간들 속에서 행복과 불행의 경계는커녕 무감정, 무감각의 체온 없는 인간으로 살던 그때,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숫자가 결코 행복과 비례하지 않고 기쁨으로 환원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았으면서도 숫자에 집착했다.
벼락을 맞고 나가떨어진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숨 쉬는 삶이었다.
못 견딜 슬픔이나 고통, 서러움, 무시가 없는, 혹 있더라도 적당히 아파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 그저 그렇게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할 수 있는 별거 없는 삶이었다.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던 절대적 빈곤의 시기를 벗어나기 위해 악에 받친 듯 악다구니 치며 보낸 20대, 30대를 보내고, 30대의 마무리는 괜찮은 커리어와 연봉을 쌓아 올린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도록 밀폐한 작은 집에서 자발적 고립 상태로 눈물만 뽑고 있는 우울증에 사로잡힌 무직자였다.
행복하려고, 나 좋자고 여태 그렇게 독하게 살며, 일하며 버틴 것이었는데 하나도 좋지 않았다. 그걸 마흔이라는 이름의 집 현관 앞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자발적 저소득자가 되기로.
적게 벌고,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