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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an 16. 2024

잔망스러운 글재주로 먹고살겠다.

새롭게 몸담은 곳의 대표가 바뀌고, 평화에 균열이 가다 이제 곧 깨어질 지경이 되었다.


다시는 무리하는 삶을 살지 않겠노라고 공언했었건만, 이미 무리하고 있다.


책상이 빼곡하게 들어앉은 사무실에서 경직되다 못해 압축되다 서서히 무너져 뭉개지는 삶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그리 다짐했건만, 또다시 무리하는 삶이 타오르는 불길을 내뿜는 철문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도망치거나, 아니면 눈질끈감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내 살을 태워 만든 향냄새를 맡거나.


기억나는 머지않은 과거부터, 매년 1월이 되면 소망을 썼다. 

'작가 되기'가 그 시작이었고 그 후 조금 더 구체화된 것은 '인세 받는 작가 되기' 었으며 몇 번의 다듬음을 거쳐 완성형에 다다른 것은 '출간 작가가 되어 인세를 받는 전업작가 되기'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나 아직 올해의 소망을 쓰지 못했고, 경건한 마음으로 소망을 써 내려가기 전 더욱 결연한 의지를 확인하고자 서점을 찾아가 '국내 에세이 베스트' 코너에 놓인 책들을 한 권씩 열어 보았다.


공통점을 발견했다.


책 앞표지에 있어야 할 작가 소개 부분에는 내가 보아왔고 기대한 그것이 아니라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히면 딱일 것들이 쓰여 있었다.


내 인생의 그 어떤 특정한 시간을 투자하여 누군가의 글을 읽어 내려감으로써 온전히 내밀한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시간을 줄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작가 소개 부분을 이토록 무성의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저 형용사만으로 채워진, 감성만 충만한데 대체 뭔 감정인지도 알 수 없는 작가 소개글 앞에서 자괴감을 느꼈다.


이런 글들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서는데 나는 그 얼마나 하찮은가.


아무리 내가 좋아서 하는 브런치요, 좋아서 하는 글쓰기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과 시선을 얻지 못하는 철저한 비주류, 좋게 말해 강호의 고수요 실제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재야의 강제 은둔형 작가지망생에 불과한 게 팩트다.


그러다 훌쩍훌쩍 넘겨보던 한 권의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당장 책임질 노부모와 생계의 무게가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글을 써서 그걸 묶어 출판사에 찾아갔다는.


나는 당장 책임질 자신이 있고, 대출금을 제때 내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에라도 은행에서 찾아올 부채덩이가 있는데도, 그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야 할 이 순간에도 무리하는 삶은 싫은데 하며 징징 거린다.


이러다 무리하는 삶으로의 불길 속으로 문 열고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어쩌지 하며 동동거리며 촐싹대다 잘못 밟은 다이아몬드스텝으로 발이 엉켜 그 무리하는 삶 속으로 철퍼덕 굴러들어갈 판이다.


지금 정신 똑바로 안 차리고 조금만 삐끗하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헌신하듯 하다 머지않아 토사구팽 될 확률이 매우 높은 그저 그런 밥벌이의 기회에 굽신거리며 살게 될지 모르는 상황.


이러려고 자발적 저소득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덜 불행하고 싶어서 선택한 약간의 자유가 더 있는, 상대적 빈곤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으니 일단 뭐라도 써야겠다.


쓰지 않고서는 절대 글쟁이로 먹고살 수 없다.


수십 년간 그토록 소망했던 전업작가는 더 될 수 없다.


글을 팔아 불행을 제치고 싶다.


1월 16일, 오늘에서야 올해 소망을 적겠다.


밥벌이의 그 고단함을 타파하고 싶다면 이 작디작은 재주로 힘껏 재간 한번 부려보자고 말이다.

먹고살고 싶으니 글을 쓰겠다. 가능한 많이, 되도록 성실하게.


잔망스러운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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