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살아보니/김형석
좋은 이웃 - 책 읽는 이웃 2
2019년 여름, 배곧 한울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 타이어에 펑크가 난 김에 읽던 책이나 마저 읽을 심산으로 공원가 벤치에 앉았다. 그러나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로 복잡하지는 않았으나 뭔가 번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서 힘겹게 확성기로 질서를 유도하는 해수 체험장 직원의 목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규정 속도를 넘어 오이도 방향으로 세차게 달리는 자전거들도 원인이 아니었다. 나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즉 개인들이 무질서하게 만들어내는 그래서 쉽게 주변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집단으로 뭉친 이들이 만들어내는 조직적인 소음이었다.
과거 잠시 미국에 살 때 자주 찾았던 미시간 애비뉴 공원의 환경이나 분위기는 배곧 한울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시간 애비뉴 공원을 찾는 사람들도 배곧 한울공원을 찾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선탠을 하면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공원을 거니는 사람과 애완견의 비율도 비슷하다. 결정적인 차이는 소음의 '집단성'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이와 비슷하게, 깃발을 등에 꽂으면 절대 길을 양보하지 않고 또 음주 금지 플래카드 앞에서 버젓이 막걸리를 돌려마시며 떠들썩한 일부 등산 동호회나,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고 오히려 위협하며 떼 지어 한강을 질주하는 일부 자전거 동호회 등 '쪽수'로 법규정이나 사회 통념을 가볍게 무시하는 이들이 나의 힘겨움의 근원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이긴 하지만 한국은 사람이 많은 곳은 번잡하고, 사람이 없는 곳은 적막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없는 곳이 적막한 것은 선진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차이는 사람이 많은 곳도 크게 번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의 공원도 서울의 공원보다는 훨씬 덜 번잡하게 느껴졌다.
한 사람이 공원에서 독서를 하는 경우 그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은 기껏해야 사방 몇 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시끄러운 이는, 특히 집단으로 소음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그 몇 배의 공간을 주장한다. 이들이 침범하는 공간은 거의 필연적으로 내가 점유하고 있던 공간과 겹치는데, 주로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나는 거의 항상 피해자가 된다.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내가 먼저 견딜 수 없어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아, 저들 무리가 양처럼 흩어져서 평화롭게 공원에 드러누워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형석 교수의 '백 년을 살아보니' 서문이 생각났다.
“나는 세계 여러 지역과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이 선진국가가 되고 세계를 영도해가고 있는가. 그 나라의 국민들 80% 이상은 100년 이상에 걸쳐 독서를 한 나라들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등은 그 과정을 밟지 못했다. 아프리카는 물론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에 가도 독서를 즐기는 국민적 현상을 볼 수가 없다. 나는 우리 50대 이상의 어른들이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후대에게 보여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시급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우리들 자신의 행복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진입, 유지하는 애국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나이 들어 느끼는 하나의 소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