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탐구생활을 즐긴다. 매사에 철저하기 때문이고, 본인이 하는 업무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와 같이 보고서를 작성하다 간단히 확인할 사항이 있어 H에게 물었다. “H야, 8 × 6 값이 뭐지?” “아, 금방 알아보겠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이와 같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통상 1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10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H를 재촉했다. “H야, 아직 안 알아봤니?” “네, 제가 N사원이랑 같이 구구단표를 좀 알아봤는데 말입니다, 구구단표는 1 ×1부터 9 × 9까지 한눈에 찾아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 엄청난 것이더라고요. 특히 표의 대각선에 1 ×1, 2 × 2, … , 9 × 9를 배열해놓은 아이디어가 너무 훌륭하고요. 그 결과 예컨대 3 × 2와 2 × 3이 대각선을 중심으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어, 앞자리 수와 뒷자리 수의 위치를 바꿔도 같은 결괏값이 나오게 되는 곱셉의 특징, 즉 교환의 법칙을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설명해주더라고요.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고나 할까요?”
“H야, 그래서 8 × 6의 값이 뭐지?” “네, 그건 구구단표에서 찾아보면 결국 6 × 8과 같겠습니다!” (완전 신기)
“그래… 니가 얘기하는 거 대충은 이해가 가는데, 난 지금 8 × 6 값이 뭔지 궁금할 뿐이거든. 그래서 찾아봤니?” “아뇨… 아직…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N사원 등장) “H님… 제가 보니까 48 같은데요.” (눈을 부릅뜬 H) “N사원, 그건 그리 쉽게 답할 게 아냐. 팀장님이 물어보신 건데. 이따 다시 얘기해보자.”
“H야, 시간 없거든? 얼른 좀 알려줘.” “네, 알겠습니다.”
“H야…?” “팀장님, 아까 N사원이 말한대로 48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곱셈표는 22 ×22단까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인도 어린이들이 이걸 가지고 곱셈을 배운다고 하는데요, 이게 아까 말씀드린 것보다 수준이 높은 곱셈표라서 이 곱셈표도 한 번 확인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뭐 달라질 게 있을까?” “아, 아까 6 × 8과 8 × 6의 결괏값이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22 × 22단 곱셈표를 검토해보고 12 ×21과 21 × 12의 값이 똑같은지까지 확인해보면 보다 확실하게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 그건 해석학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고민하는 거지,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아, 네, 아무래도 확실하지 않은 건 팀장님이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또, 제가 확신을 가져야 팀장님도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H야, 나는 일단 48이라고 알고 업무 추진할 테니까, 더 알아보는 건 뭐 자네 맘대로 하시고.” “네, 저는 그럼 N사원이랑 같이 22 ×22단 곱셈표를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H야, N사원은 내비두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근데, 팀장님, 그거 아십니까? 이런 식이면 100 × 100단 곱셈표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찾아볼까 합니다.”
“H야, 이제 그만 됐다.” “아, 네… 근데 아무래도 좀 아쉽네요. N사원도 좋아할 것 같은데… 이따 N사원이랑 따로 얘기를 좀…”
“XX놈아...” ”…”(팀장 놈은 학문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게 틀림없어…)
H는 이렇듯 업무에 대한 학문적 열의가 대단하다. 수학과나 물리학과에 갔으면 대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H는 구구단을 외우는 것과 같은 기계적 학습은 취향이 아니다. 보다 근원을 파고드는 창조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본인의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H는 오늘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신을 공여한다’는 문장에는 ‘여’ 자가 두 개나 들어있으니, ‘신용을 공여한다’는 표현이 맞겠지? 그런데 ‘신용’이란 단어가 있는 걸 감안하며 왜 ‘여신’을 ‘여신용’이라고 쓰지 않을까? 아니면 왜 ‘신용’에서 ‘용’ 자를 빼고, 보다 간단히 ‘신을 공여한다’라고 표현하지 않을까? H는 본인의 머리론 이해되지 않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짐한다. 오늘은 100 × 100단 곱셈표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