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PF도 잘 모르는데 PF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나요?(전 못해요)” 매우 논리적인 얘기처럼 들립니다. 알파벳도 모르는데 영작을 어떻게 하냐는 질문과 동일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PF와 PF 구조조정 간의 관계는 알파벳과 영작의 관계처럼 직접적이고 선형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해서 위 문장에 내재된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면 됩니다: “그럼, CF는 잘 아니까 CF 방식으로 여신이 취급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어렵지 않게 취급할 수 있겠네요?”
최근 대우조선해양 또는 한진해운 등 초대형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러한 얘기를 듣는다면 아마도 위의 질문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워할 것입니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구조조정의 어려움은 프로젝트 계약구조의 복잡성(PF가 그 점에서는 좀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내용들은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 등 자문사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줍니다. 오히려 대주단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채권 회수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불확실성이 큰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조정 업무의 실질적인 어려움은 관련 당사자 수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사자 수가 많다는 것은 거부권을 가진 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니까요.1) 예컨대 구조조정 방식에 따라 수많이 이들이 직장을 잃는 경우를 생각해 보시죠. 대규모 구조조정은 대부분 정치적 이슈로 비화됩니다.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면, 그 건은 소위 ‘전국구’가 됩니다. 다시 말해 관련 당사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구조조정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게다가 ‘구조조정의 어려움’과 ‘(구조조정의 목표인) 채권회수의 어려움’이 반드시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편, PF 거래 당사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입니다. 금융채권자들도 마찬가지구요.2) 프로젝트 계약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계약 상대방이 빡빡한 태도를 유지해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상대방이 불특정 다수가 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3) 게다가 구조조정 방식 또한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PF 사업 구조조정 작업의 핵심은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프로젝트 승인 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이 아니라면 담보권을 행사하여 회수하는 금액으로 차입금을 전부 변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애당초 PF 구조조정 개시 사유로서의 채무불이행은 원리금 미상환 등과 같이 명백한 채무불이행보다는 프로젝트 금융계약상의 특별약정4) 조항의 위반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실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구조조정을 개시하게 되면 이미 수십 개의 EoD가 발생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할 것 같으면 이를 미리부터 파악하기 위하여 금융계약서에 포함시켜 놓은 수많은 경보장치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해 왔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순수하게 채무자의 재무상태를 고려한 재무적인 관점에서의 구조조정이라고 한다면, PF 사업 구조조정은 필요에 따라서는 (프로젝트 현금흐름을 회복하기 위하여) 금융의 기반이 되는 프로젝트 계약의 구조 및 내용의 수정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5)
그러니 PF 구조조정, 특히 개도국에서의 구조조정은 대부분 채무재조정(amend and extend) 방식으로 추진됩니다. 그 과정은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고,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제8조에 따른 금융채권자협의회에 의한 공동관리절차와 유사합니다. 즉, 각각의 구조조정은 개별적인 특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① 구조조정 개시 사유 발생 또는 발생 예정, ② 채무자의 자구방안(remedial plan) 수립, ③ 채권단협의회 결성 및 정보 공유, ④ 권리행사 유예(standstill agreement6)) 약정 체결, ⑤ 구조조정 방안 협상, ⑥ 수립된 구조조정 방안 실행의 순서로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7) 또 이때 별첨으로 소개하는 INSOL8) 원칙을 따라 행동합니다. 제 경험상 구조조정 경험이 풍부한 국제 상업은행들은 채권회수 극대화를 기본적으로 추구하지만, 평판 관리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판을 깨는’ 행동은 잘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행동할 경우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상업은행들은 오히려 MDB 및 ECA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하여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이들 기관들은 사업소재지국과의 관계, 그리고 자국 사업주와의 관계 때문에 보다 정치적인 관점을 가지고 구조조정 업무에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담보권을 행사하여 프로젝트 자산 또는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통상 상기 채무재조정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경우에 활용하게 됩니다. Receiver를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통제하는 방법, 또는 지분에 대한 질권을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통제하는 방법에 대하여서는 제2절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직접계약을 통해 프로젝트를 통제하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법적 절차에 따른 구조조정 방법이 있습니다. 미국의 Chapter 11과 영국의 Scheme of Arrangement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업 소재지국에는 PF 사업의 구조조정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화된 도산법이 없는 경우가 왕왕 존재하는데, 이때 이들 국가들의 법체계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PF 채권단은 프로젝트 회사 지분에 대한 담보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개시되면 담보권 실행을 통해 프로젝트 회사를 관리하여 경영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산절차 신청과 관련하여 신청 주체인 프로젝트 회사와 PF 채권단 간에 관할지에 대한 사전 합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PF 채권단은 프로젝트 회사로 하여금 PF 채권단이 원하는 특정 국가 법원에 도산절차를 신청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대부분의 프로젝트 금융계약은 영국법 또는 미국 뉴욕주법을 준거법으로 정하고 있고, 영국이나 미국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연계성만으로도 제3국 채무자의 도산절차 신청을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기 두 가지 제도가 국제 PF 구조조정에 자주 활용됩니다.
Chapter 11과 Scheme of Arrangement는 둘 다 다수 채권자들이 반대 채권자들을 배제(cramdown)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전자에는 후자와는 달리 기존 경영자가 계속해서 차주를 경영하는 제도인 DIP(Debtor In Possession) 및 채무자의 모든 재산에 대하여 담보권의 행사 등을 실행하는 행위가 자동적으로 정지되는 ‘자동정지(automatic stay)’ 제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김채호의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스 사업의 구조조정에 관한 법적 연구」(2018. 6월)을 참조하세요. 김채호의 논문은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Scheme of Arrangement보다는 Chapter 11이 PF 구조조정에 보다 적합한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무적으로,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지 이와 같은 법적 절차가 개시되는 경우 채무재조정 등 합의에 의한 구조조정 방안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는 것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실무자로서는 편한 면도 있습니다. 법원이 절차를 주도하기 때문에 책임 문제 등에서 훨씬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맞게 된 변호사들도 매우 좋아할 것입니다)
1) 예컨대 이런 기사를 보시죠, “... 쌍용차 회생계획안 인가 키를 쥐고 있는 상거래채권단은 이날 화상회의를 열고 회생계획안 인가에 대한 전체 구성원들의 입장을 수렴했다. 상거래채권단은 협력업체 340여 개로 구성됐으며 전체 채권단의 약 8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토레스 돌풍, 회생계획안 인가 눈앞... 쌍용차, 부활 가속페달 밟는다”, 이데일리, ‘22. 8. 17) 세상에... 상거래채권자 수만 340여 개입니다. 물론 이들 각각이 거부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만.
2) 물론 채권(bond)을 발행한 경우라면 좀 다르겠지요.
3) 물론 PPP 사업은 항상 정치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언제든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4) 정보제공 약정, 재무약정 및 일반 약정 등입니다.
5)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스 사업의 구조조정에 관한 법적 연구」(김채호, 2018. 6월) 제5장 참조
6) 미국에서는 이 용어보다 ‘forbearance agreement’라는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standstill 보다 구조조정에 임하는 채권자들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 주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7) 자세한 내용은 위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스 사업의 구조조정에 관한 법적 연구」(김채호, 2018. 6월) 제5장을 참조하세요.
8) INSOL(International Association of Restructuring, Involvency & Bankruptcy Professionals)은 London Approach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2년 설립된 국제도산 전문가 협회입니다. 동 협회는 기업회생, 도산 등과 관련된 전문가, 신용기관 및 관련 기관들 사이의 상호 정보교환 및 협력 증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