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젝트는 아국 기업이 참여한 PF 사업에 대하여 receivership을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한, 국내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사례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receivership 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그리고 법정관리 제도 대비 대주단에게 어떤 효익을 제공하였는지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 사업에 대한 개요입니다. 이 사업은 SK종합화학(지분 30% 보유) 이 BP, Glencore 등과 함께 싱가포르 Jurong 산업공단에 연산 2.4백만 톤 규모의 정유제품 및 1.4백만 규모의 방향족(Aromatics)1) 석유화학제품을 생산 및 운영하는 사업으로, SK그룹이 플랜트 건설, 원재료 공급, 제품 구매 및 사업 운영 등 사업 전반에 관여한 투자개발형 사업입니다. 이 사업의 프로젝트 회사 이름이 바로 Jurong Aromatics Corporation(JAC)입니다.
다음은 이 사업이 어떻게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입니다. 동 사업의 주생산시설은 계획대로 ‘14. 3월 완공되었으나, 보조 생산시설 완공은 다소 지연(’14. 6월)되었습니다. 한편, JAC는 공장의 정상 완공을 예상하여 ‘14. 1월 원재료인 컨덴세이트2)를 대량으로 구매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장 가동이 지연되어 이를 제때 활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14년 하반기에는 주력 생산물인 파라자일렌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4. 12월 설비 일부에 문제가 생겨 공장 가동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곧 운전자금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회사 자구책 마련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8개월간 협상을 지속했으나, 자본확충을 통한 유동성 공급 문제, 리스케쥴링 문제, 사업주간 지분 조정 문제 및 원재료 공급채권 처리방안 문제 등에 대하여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15. 9월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3)
다음은 대주단 주도 구조조정 방안 추진 경과입니다. 대주단은 협상 결렬에 대비하여 receiver 고용을 미리 검토했었고, 협상이 결렬됨과 동시에 receiver를 선임4)하여 JAC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습니다. Receiver의 선임은 JAC와 대주단의 담보대리인(Security Agent)간 체결한 Debenture5) 16.1 Appointment of Receivers 조항에 따른 것입니다.
Receiver 선임 즉시 대주단은 receiver와 함께 채권회수 위한 방안을 검토하였습니다. 대출금 채권을 매각하는 방안은 당시 시장 할인율 수준이 너무 높아 선뜻 이행에 나서기 어려웠습니다. 한편,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은 잠재적 매수자가 원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차주의 채무구조가 복잡하여 이를 잠재적 매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려면 위에서 설명한 Scheme of Arrangement를 활용하여 반대 채권자들을 배제해야 했는데, 이는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절차였습니다. 참고로 당시 주주 간 대여금 관련 비교적 단순한 Scheme을 진행 중이었는데, 1년 가까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주주 및 후순위채권자 등 동의 없이 담보채권자들의 의지만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JAC가 보유 중인 각종 인허가 등을 새로운 사업주에게 이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았습니다. 즉, 새로운 사업주가 싱가포르 정부와 복잡한 협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다만 잠재 매수자 후보군은 BP, Glencore, 그리고 ExxonMobil 등 글로벌 오일메이저/트레이더 등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염려는 크게 없었습니다. 또한 싱가포르 정부가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해서 대주단은 자산매각 방식으로 JAC 구조조정을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한편 매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했습니다. 공장이 오랫동안 가동 중단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 성능에 의문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의문을 해소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운영자금(working capital)이 모자랐습니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바로 BP/Glencore와 Tolling Agreement를 체결한 것입니다.6) 이들이 스스로 원재료인 컨덴세이트를 조달하여 JAC 앞 제공하고, JAC가 생산한 석유화학제품을 가지고 가는 계약입니다. 즉, 원재료 조달 위험 및 판매 위험은 이들 BP와 Glencore가 지고, JAC는 가공 수수료만 받는 방식입니다. 떡방앗간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제가(BP/Glencore가) 멥쌀(컨덴세이트)을 가지고 떡방앗간(JAC)에 가면, 떡방앗간(JAC)이 떡(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 제게(BP/Glencore에게) 주는 것입니다. 떡방앗간은 그 대가로 수수료(tolling fee)를 받습니다. BP/Glencore는 Tolling Agreement를 체결하여 돈을 벌고, 나아가 공장의 실질 상태를 파악함으로써 추후 있을 매각 입찰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BP와 Glencore는 그간 원료대금 일부(이를 “원료대금 채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를 못 받은 상태였는데, 이를 만회할 기회를 잡은 것이지요. 한편, JAC 입장에서는 공장을 돌릴 기회를 얻은 것이고, 매각까지 필요한 운전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Tolling Agreement는 ‘16. 4월 체결되었습니다. 이때 대주단은 조속한 조속 공장 정상화 시 BP/Glencore 앞 인센티브도 지급키로 약속하였습니다. 이후 공장에 화재가 발생7)해 실제 tolling 개시는 약 3개월 가량 지연되었으나, tolling 개시 후 공장은 빠르게 정상화되어 ’16. 9월 이후 지속적으로 90% 이상의 가동률을 보였습니다.
대주단은 공장이 정상화되자마자 자산매각을 위한 국제경쟁입찰에 나섰습니다. ‘16. 9월 RfP를 70여 개 잠재 매수자 앞 송부하였고, 3차에 걸친 입찰을 통해 ’17. 3월 ExxonMobil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한편, ExxonMobil은 JAC를 운영 중인 상태(‘hot transition’8))로 넘겨받기를 원했고, 이를 위하여 JAC, BP/Glencore 및 ExxonMobil 삼자 간 Transitional Agreement 등을 체결하였습니다. 동 계약에 따른 의무가 종료된 ‘17. 8월 ExxonMobil은 매각대금을 완납하였습니다.
이 모든 절차가 2년 이내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담보채권자인 선순위 대주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아마도 receivership이 아니었다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JAC 매각 과정을 돌이켜 봄으로써 receivership 제도의 장점, 그러므로 PF 여신 승인 시 receivership을 활용한 담보의 경영관리 목적을 점검해야 하는 까닭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동 제도의 장점은 매각 직후 벌어진 사태로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매각이 마무리된 시점에 Tolling에 참여한 BP와 Glencore가 JAC 앞 지급해야 할 일부 대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즉, 매달 이들이 JAC 앞 지급해야 하는 마지막 달 tolling fee(“tolling fee 채무”)와 hot transition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JAC 앞 지급해야 하는 대금(“hot transition 채무”)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동시에 매각이 완료되어 자신들이 받아야 할 인센티브를 받은 즉시 법원 앞 JAC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대주단의 입장에서는 이를 악의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이 경쟁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분풀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BP와 Glencore가 주장한 핵심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JAC 파산신청을 통해 “원료대금 채권”과 “tolling fee 채무” 및 “hot transition 채무”를 서로 상계되어야 한다. (insolvency set-off)
② Insolvency set-off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이들 채권채무는 서로 비슷한 성격을 지니므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서로 상계되어야 한다. (equitable set-off)
이러한 BP/Glencore의 주장에 대하여 대주단은 receiver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였고,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9)하였습니다.
① ”원료대금 채권“은 receiver가 고용되기 이전의 채권이며, “tolling fee 채무” 및 “hot transition 채무”는 receiver가 고용된 이후의 채무이다. Floating charge 성격을 가지는 두 채무는 Debenture 4.4 (b) 자동전환(automatic conversion) 조항에 의거, receiver 선임 즉시 fixed charge로10) 변경되어 대주단의 허락 없이는 상계 대상이 될 수 없다. BP와 Glencore는 Tolling Agreement를 통하여 receiver가 이들 채무를 자유롭게 처분할 권한을 대주단으로부터 위임받았기 때문에(즉, 대주단이 이들 채무에 대하여 처분권을 포기하였기 때문에11)) 두 채무가 다시 floating charge화12)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대주단은 채권회수를 위한 실무적인 처리방안을 receiver에게 위임한 것이지 결코 이들 채무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 채권채무를 서로 상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② 이들 채권채무가 최종적으로는 원료 구매대금 및 생산물 판매대금과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은 서로 다른 계약관계에서 연유하고 그 발생 사유 또한 서로 다르므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서로 상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JAC 구조조정을 추진13)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지만, 판결문을 받아 든 순간 또한 가장 짜릿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고 기억합니다.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감정을 섞어가며 소송을 진행했고, 결국 승소 판결을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한편, 과연 대주단이 receiver를 고용하지 않았다면 이런 판결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자문해 봤습니다. JAC 경영진이 그대로 회사를 운영한 경우, 이들 BP/Glencore와의 Tolling Agreement 체결을 위해 많은 것들을 양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Receiver는 담보채권자인 대주단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에, 대주단의 권리를 철저히 지켜가며 이들과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receivership이 아니라 법정관리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경우, 자산관리인은 모든 채권자들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BP/Glencore의 상계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좀 길게 PF 방식의 채권보전장치 및 구조조정, 그리고 PF에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receivership 제도에 대하여 알아봤습니다.
많은 이들이 금융의 ’앞단‘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뒷단‘에까지 신경을 쓰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하여, 저는 「모비딕」의 허먼 멜빌의 글로 오늘의 강의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태우지 않는다‘는 스타벅스의 이 말은 가장 분명하고 유용한 용기란 직면한 위험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 나오며,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동료라는 뜻인 것 같았다.
1) 고리형 불포화 탄화수소 그룹으로 벤젠(benzene, C6H6) 구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JAC는 벤젠에 메틸기 2개를 결합하여 만든 파라자일렌(paraxylene)을 주로 생산하여 중국 등에 판매하려 하였습니다. 방향족이라는 이름은 이 석유화학제품에서 나는 특유한 냄새 때문에 주어진 이름입니다.
2) 컨덴세이트(condensate)는 납사가 주성분이면서 소량의 LPG 유분, 등유 유분, 경유 유분 및 잔사 유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컨덴세이트는 경질유로도 불립니다)
3) 당초 여신 승인 시 SK 측은 자신들이 지분을 30% 보유하고 있어 ‘blocking majority’를 보유하고 있다며 대주단을 안심시켰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blocking majority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구조조정 상황에서는 blocking majority가 아니라 타 사업주를 리드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JAC 경영진을 교체하였습니다.
5) 포괄적 담보 패키지를 확보하기 위한 금융 증서입니다.
6) 안타깝게 가장 큰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SK종합화학은 아예 이 딜에서 손을 떼 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아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주가 이런 식으로 꼬리 자르기가 가능하니 PF가 매력적인 금융방식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7) 이로 인하여 JAC는 당장 운영자금이 부족한 상태에 빠졌으나, 대주단은 빠르게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여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동 신규자금은 싱가포르 회사법, Debenture 및 receiver 선임 계약에 따라 우선 상환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이는 INSOL 제8원칙(신규자금에 대한 우선 상환권)과도 부합합니다.
8)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정지 중인 상태(cold transition)’입니다.
9) 1심은 판결(www.elitigation.sg/gd/s/2018_SGHC_215)은 2018. 10월, 상고심 판결(www.elitigation.sg/gd/s/2020_SGCA_09)은 2020. 2월에 이루어졌습니다.
10) crystalized라는 표현을 씁니다.
11) 여기에서 다시 fixed charge와 floating charge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는 질권설정자가 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처분할 수 없는 담보이며, 후자는 질권설정자가 매일매일의 업무처리를 하기 위해 질권자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담보입니다.
12) decrytalized라는 표현을 씁니다.
13) 수출입은행 최초의 해외 PF 구조조정 사례였고, receivership이라는 생소한 제도를 활용한 구조조정 사례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