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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 Jun 24. 2020

「모래로 지은 집」 _ 최은영

단편 감상

 나는 내 안의 멋짐을 잘 찾지 못하는 편이라, 주위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찾곤 했다. 내가 누군가와 관계 맺고 있는 것.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한강에 앉아 술을 마시는 것까지. 멋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자주 안도했다. 일말의 가치가, 계산적인 무언가를 넘는 어떤 것이 내게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겠지. 때때로 그런 사실은 내 존재의 정당성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도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줄지, 혹은 너와 내가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이 나만의 착각은 아닌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너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0부터 100까지, 우리의 친밀도는 몇이나 될까.


 추상적인 무언가를 수치화하려고 애쓰는 순간 그것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량적인 사고를 위한 재고 따지기가 보이지 않던 무언가를 보이게 해 줄 것이기 때문에. 혹은 책정된 수치가 애초에 친밀감 따위는 실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런 논리적 사고가 조금은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나는 30 정도. 그러니 이런 걸 묻기에는 어색한 사이 같은데. 누군가 이렇게 대답한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걸까. 아무래도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확실한 것을 원했던 것 같다. 당장 누구에게 연락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을 수 있고, 그 만남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우리는 친하다고, 그래서 어디까지는 민감한 얘기를 해도 괜찮으며 그도 나와 같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어쭙잖은 관계 속에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부담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아직 누군가에게 이런 것을 물어본 적은 없다. 혼자 머리만 굴려볼 뿐.


 '공무'와 '모래', 그리고 '나'는 천리안의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만난 통신 친구다. 대학교 1학년이 되던 해 동호회는 폐쇄하게 되었고 그때쯤 이루어진 정모에서 셋은 처음으로 만난다. 별명을 쓰는 데다 비공개 모임이었던 터라 사적인 글이 많았기에 실제로 만난 셋은 서로를 보며 서로가 썼던 글을 떠올리게 된다. MSN에 대화방을 만들어 매일 말을 걸고 만날 약속을 잡는 '모래' 덕분에 셋은 상당히 친한 사이가 된다. '나'가 일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모래'의 인터넷 음악방송을 듣는 셋.


- 넌 꼭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말한다.
얼마나 갈지가 그렇게 중요해?

공무가 관계의 지속을 바라는 마음을
유치하다 비웃는 것 같다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 응. 나는 그래.

나도 최대한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우리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미래가 환상일 뿐이라는 거 알아.
우리는 현재만을 살뿐이고,
모든 일의 끝을 어림하는 게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사회에 있을 때 받았던 군인 친구의 연락은 최악이었다. 휴대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이어진 한 시간이 넘는 통화에서 그는 본인의 이야기만 하기에 급급했다. 자신도 지금 이렇게 힘든데 (체력이 부족한) 네가 오면 엄청 힘들걸, 하는 은근한 멸시와 함께. 한두 번 참고 들어준 이후로는 그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7년째 보는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더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랬는데,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느껴지면 어쩌지. 대화중 내 입에서 나올 것은 구질구질하고 지루한 군대 이야기밖에 없는데. 바깥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웬만하면 연락을 하지 않으려 했다.


 '공무'의 아버지는 조금 이르게 전역한 군인이었는데 진급에 실패하고 본인이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 빠져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을 할 때에는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됐고, 화장실에 남은 물기 같은 것을 본인을 무시하는 처사로 매도했다. '공무'는 항암 치료를 받는 아내가 죽기 직전까지 삼시세끼 밥상을 받았던 아버지와 폭력을 행사하는 형으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형의 사고로 한동안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입대를 하게 되는 '공무'.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 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SNS를 볼 때마다 외로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사라진 학교와 동아리는 당연하게도 아주 평온했고 친구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렇지. 그래야지. 그런데 쓸쓸해지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했을까. 왜 다들 내가 없어도 재밌게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이렇게 힘든데. 질투 섞인 마음으로 피드를 내리다가 문득, 나의 대인관계를 이루던 모든 것의 실체가 불분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연결되어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 한 번씩 길에서 만나 인사하는 것으로도 만족했었는데. 연결만으로는 긴밀함을 말할 수 없으니까. 사실 이젠 내가 너와 연결되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고민할수록 점점 무인도에 갇히는 기분이 들었다.


 일련의 사건들 이후 '모래'는 떠나버린다. 남긴 편지에서 그녀는 이때까지 자기 자신을 따돌려왔음을 고백한다. 너희에게는 너희가 좋아할 만한 내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미워 보이고 창피했던 내 모습을 따돌렸다는 '모래'. 본인은 항상 누군가를 책망하며 살아왔고 그만큼 그들에게 의존했다는 그녀의 말을 보며 '나'는 자신도 그녀에게 누구보다도 마음을 기댔다는 것을, 그러면서 그녀의 의존성을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음을 깨닫는 듯하다. 그녀가 드러내 보인 고통이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에서 나왔다는 사실과 어느 누구도 그런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까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분명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했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 비참해서도, 누군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대학교 1학년을 떠올려본다. 갈피를 잡지 못한 이상한 패션센스와, 피상적인 관계로 점철되었던. 수업을 같이 듣는 반 친구들과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갔다 기숙사로 돌아와 누워 휴대폰만 들여다보기 바빴다. 무언가 부족했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타의로 조직된 집단에서 긴밀한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듯했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1학년이 끝날 때쯤, 돌파구를 찾으려고 동아리에 들어갔다. 겪었던 우울감의 일부가 나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그런 나에게 그곳은 조금 과하게 긴밀했던 공간이었다. 본인의 민감한 부분을 이렇게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다니. 20년간 기독교에 갇혀있던 내가 벽장을 열고 나오기에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생각보다 나를 좋아해 주었던 사람도 많아 여러모로 행복했던 시간들. 그래서였는지 군대에 온 것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나를 드러낼 수 있다는 해방감은 사라진 채.


 다른 공간에 있는 우리가 이어지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이 아닐까. 욕심이 아니라는, 너와 조금 더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요구하는 것이 관계의 끝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무슨 말로 그걸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으니까. 한 번 두 번 휴가를 나갈 때마다 나를 환대해주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SNS는 그들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과 힘든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그만 까먹고 싶었다.


*

 학교에서 잠시 빠져나와 충무로 어딘가의 옥상에서 서울을 내려다봤던 지난주,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허투루 살지 않았다 싶을 정도로 안심이 되었다. 주위의 누군가로 인해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경험을 한다는 것. 여전히 그것을 함께 할 사람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조금 벅찬 감정이 들곤 한다. 이런 일상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수밖에.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2019) 에 수록된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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