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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 Jul 20. 2020

내로남불

라이프 6

 고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뱉은 말에 부끄럽지 않은, 그러니까 내 의견과 생각은 마음속에서 진득하게 우러나온 것이고 나는 그것과 합치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있던 시절. 공부에 집중한다는 명목 하에 확인할 일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을 온 뒤에는? 넓어진 토론의 장과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내가 한없이 모순적인 존재임을 증명받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따라서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관건이 되었을 터. 자잘한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내 모순됨을 인정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나의 부도덕함을 갈음하겠다.


 최근까지도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을 선언처럼 친구들에게 하고 다녔던 나는 요즘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쓸 새가 없었나? 그것은 아니다. 틈이 없진 않았으나 딱히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내게 아무도 없는 지금이 좋다고, 당분간은 이렇게 여유 있게 지내고 싶다고 말했던 한 달 전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금 내게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정적인 것도 같다.


 무언가 부족하거나 아쉬울 때에 글을 쓰고 싶고, 잘 써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데, 한 달 전의 나는 왜 그런 말을 했는가? 로맨틱한 무언가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내 신세가 비참해서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막 뱉은 말이었던 걸까.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

 지난주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성 정체성과 지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분위기 속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여성 친구를 좋아했던 적이 있고, 그것이 내가 게이임을 정체화 하는 것에 혼란을 주었다는 것. 성소수자 동아리에 들어간 이후 정체성과 지향성이라는 것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이후엔 큰 고민 없이 일단 지금의 나는 게이라고 정체화를 마쳤다는 이야기까지.


 고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는 본인의 성향이나 특징, 의견 같은 것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말했던 많은 것들을 부정하고 정정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꼰대 같지만 나이가 먹어갈수록 느끼는 것은, 굳이 그런 변화 기점 이전의 것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잘못된 생각으로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은 이상,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변화한 내 생각까지 모순적인 흠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거 말고, 정말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얄팍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내 입을 묶어버리고 싶다. 어떤 사건 속에서 휙휙 바뀌는 나의 의견. 애초에 줏대라곤 보이지 않는, 실체 없는 내 생각의 뿌리를 알고 있음에도 떠벌리기를 멈추지 않는 내가 미친 것 같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와 근거 없는 주장에 왜 흔들리는가? 앞으론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것에는 내 생각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연대를 포기해선 안되지 않나. 무언가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책임 없는 누군가를 책망하며 비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찾아올 자책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 도가 넘는 비난은 지양해야 한다는 말 말고는 내가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요즘의 나는 알 수 없었다. 기계적 중립 이상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

 읽었던 책이, 좋았던 소설이 누군가의 인생을 갉아먹음으로써 탄생했다는 것을 깨달은 요즘, 내가 즐거움을 느끼곤 했던 모든 창작물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졌다. 적어도 '소비해도 될 만한' 작품을 고를 수 있다는 자신 정도는 있었는데. 그래서 친구에게 소설을 추천했고, 책을 선물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감상을 쓰고, 어쩌면 이런 것들 덕분에 내가 숨 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가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허망하게 느껴졌다. 분별없는 선호가, 부도덕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했다. 앞으로 무엇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을지, 어떤 것에 대한 선호를 공개적으로 표출해도 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

 나 자신의 모순됨을 일단 견뎌내야만 그 너머의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나 자신을 자주 직시하면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나. 받아들일 만한 생각의 변화와, 팔랑거리는 귀 때문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줏대 없는 의견만을 잘 구분하고 싶다. 누구나 내로남불의 기질을 버리긴 어렵겠지만, 끊임없는 반성과 객관화는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주위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를 용인하거나 부정할 정도로 정신을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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