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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냥 Feb 20. 2019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Before sunrise in Barcelona



Before sunrise

누누이 얘기했던 영화였어

더 놀라운 건 영화처럼 만난 너였다.


유랑에 글 써서 바르셀로나 맥주 축제 글 쓰고 모집했을 때 너랑 다른 한 분 있었는데 일이 생기셔서 마침 너랑 나랑 딱 둘만 만나야 했었지.


유난히도 날이 좋다가 그 날만 폭우 내리고 비 내리고 우중충한 게 갈까, 말까, 고민도 했었는데 시작을 내가 해서 인지 책임감에 가게 됐었잖아.


비가 내리는데 우산이 없어서 너한테 했던 말 기억나? 죄송한데 역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잖아 네가 참 난감했을 텐데도 선뜻 알겠다고 했을 때, 난 사실 비 안 맞을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나가자마자, 갑자기 바람도 엄청 불고 길도 뻥-뚫린 게 오늘따라 왜 멋 부린다고 날씨 감지 못한 내 패션에 절레절레했었지. 근데 그거 내가 말했잖아? 전날 쇼핑한 거 그대로 입고 나온 거라고.


그래서인지 처음 본 너한테 나 춥다고, 죽을 것 같다고, 살을 파고드는 추위라고 소리 지르면서 경보하듯 걸었지. 그걸 넌 다 맞춰서 해주더라.


어색할 틈바구니 없이 바르셀로나 맥주 축제장에 들어서면서도 우리 둘 다 추워서 사람들 안 오는 거 아니냐고 했었는데 사람들 거기 다 모여 있던 거 기억나지? 서로 얼굴 보면서 당황했었는데 그리고 바로 표사고 맥주 뭐 마실까 고민했잖아.


한 바퀴 슝 도는 사이에도 커다란 칠판엔 재빠르게 재고 소진되는 메뉴도 있었고 분명 알파벳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에 난감할 때도 있었지. 그래서인지 필스너가 너무 쉽게 우리 눈에 들어왔었나 봐.


동네 수제 맥주 같은 부스들엔 사람들 잔뜩 서있고, 눈치 게임하다가 한 군데씩 가서 사서 서서 먹는 테이블 밖에 없어서 겨우 얻어서 기다렸던 게 벌써 2년 전이네.


난 아직도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해. 그날이 내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널 만난 순간이었거든. 한잔 짠 하고 너는 내게 말을 놓자 했지 어차피 동갑이라고. 뭐 이런 능구렁이가 있나 했는데 그냥 난 네가 편하고 좋았던 거 같아.


낯선 공간에서 세상에, 동갑을 만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 내가 널 만난 날이 마지막 날인 게 아쉬워질 때쯤 지금 당장 Viana를 가자고 했어.


내가 오늘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넌 내게 주고 싶었나 봐 아니면 나와 더 함께 있고 싶었을 수도. 가는 길에 너무 추워서 들린 마트에서 네가 얘기한 Inedit dam 한 병씩 사 가지고 유유히 빠져나갔잖아.


너는 내비게이션처럼 길을 잘 찾는다고 했는데 비가 너무 억수같이 내리고 불빛도 어둡고 하니까 길을 헤맸지 좀 많이. 내가 인내심의 한계가 다가와서 춥기도 하고 이번 한 바퀴만 돌고 없으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자 했던 거 기억나지.


그때 짠 하고 나타났잖아, 거짓말처럼. 이미 가게 안은 만원이라 샹그리아 주문하고 밖에서 마시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건지. 너도 나도 하이하이 했었는데. 중간에 사람들 나와서 담배 태우니까 네가 가로막아 서 내가 냄새 안 맡을 수 있게 방어도 해주고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매장에 들어가선, 샹그리아 또 주문하고 참치타다끼랑 하몽이랑 주문해서 곁들여먹는데 스페인 여행 중에 최고의 맛집이었어. 너와 함께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구구절절 과거 연애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얘기들을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정말 편하게 스리슬쩍 다 얘기했던 거 같아.


지금 하라고 하면 못했겠지만, 그땐 네가 날 그렇게 만들어줬었나 봐. 아직도 눈에 선한 그 골목을 다시 찾게 되었을 땐 어떤 마음이 들까.


가게를 나와서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때려 부순 느낌으로 비가 내렸어. 진심으로 하늘에 구멍이 났나 생각이 들었잖아. 지하철역까지 가는데 왜 이렇게 거리가 먼 걸까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서 비 맞았는데 추우니까 더 그랬나 봐.


그때, 가게 위에 있는 작은 비 피하는 공간에 네가 날 안아줬잖아. 무슨 용기인 건지 너는 이미 몸이 반 정도 젖어있었더라. 지금 생각하면 넌 엄청 추위도 많이 타는데 대단했었어. 그리고는 너의 체온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따뜻했어.


시간이 멈춘다는 느낌.

나는 그때 네가 날 안아준 순간에 느꼈어. 너의 입술이 내 입술 앞에 다가왔을 때에도 거절할 이유도, 거절하고 싶지도 않더라.

따뜻함.

네가 내게 준 첫 선물이었어.


그 따뜻함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서 지하철 역으로 가야 했고 뛰어가는데 가게 호객하는 사람들이 여기 따뜻한 곳이 있어 너희 여기서 와서 있어 막 그랬잖아. 1초 흔들렸지만 어서 가고 싶어서 지하철역 갔지.


지하철 막차를 타는 순간까지도.

넌 날 안고 안 놔주더라.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도 않고 각자 길 가는 느낌이었어. 너의 체온이 내 손안에 감도는데 찌릿하더라. 설레더라 정말.


너와의 첫 만남.

난 정말이지 너와 비포 선라이즈 주인공이 된 것처럼 설렜고 아직도 내 마음 안에 선한데.


누구를 탓할 수 없이 놓아야 하는 지금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자꾸 닭똥 같은 눈물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은데 그게 자꾸 흘러. 가만히 일하다가도 눈물이 나고 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날 하여금 눈 붓게 만든다.


잘 가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 헤어지는 게 아니라고. 근데 내 마음이 그걸 못 견뎌하는 것 같아 너무 힘들다. 보고 싶다 귀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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