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발설하지 않는 위로
큼직한 벽걸이 달력 만 한 사각형 바람구멍 사이로 바다처럼 파란 하늘이 보였다. 엄지손가락으로 한동안 건드리지 않던 핸드폰 앱을 열었고, 마침 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열고 닫을 문이 없고 유리로 막히지도 않았으니 창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이름을 두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굳이 사물들의 관계를 언어로 번역하거나 의식할 필요 없는 순간들이 있다. 건물의 벽은 콘크리트일 것이고, 벽의 사각형 구멍은 액자가 공중에 걸려 있는 듯 보였다. 낡은 건물 꼭대기 층 계단이거나 옥상일 것이다. 통풍구(라고 부르자) 이편 아래에는 마트에서 쓰는 쇼핑 용 카트 같은 것들이 옆으로 촘촘히 겹쳐 있었다. 그것들이 지금도 쓰이는 것인지, 쓸 일이 없어서 임시로 보관 중인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건물이 마트인지 한때 마트였는지 알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통풍구 사이로 바람만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액자 속의 그림이거나 사진 같았고 그 사이로 구름도 새도 비행기도 지나다닐 듯했다. 액자 안에는 목이 구부정한 사람처럼 가로등 하나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로등은 길을 비추는 것이니 아래쪽으로 구부정한 것이 당연한데 그런 당연하고 무심한 것이 허무하고도 가득 차 보였다. 핸드폰 화면의 반 크기도 안 되는 그 사진을 바라보는 내 눈도 무심했다. 무심했지만 마음의 장면이 조용히 전환되는 듯했고 나는 그냥 계단 한 칸을 내려서는 기분이 들었다. 계단 한 칸 차이는 공기도 바람도 다르게 느껴졌다. 내려섰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가슴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양껏 쏟아져 들어왔다. 사진 한 장을 봤을 뿐인데 기분은 순식간에 이완되고 마음은 한바탕 넓어지는 듯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텅 비었지만 그런 순간으로 꽉 찬 사진이었다. 무의미로 꽉 차 있다는 건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의미 없음은 우리가 '말로써 세계의 존재에 대해 규정하거나 의미를 부여할 수 없고, 그럴 필요가 없는, 그냥 그대로'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나는 그때 마음도 무겁고 기분도 울적하고 현실도 서글프기 그지없는 우중충하고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주 그렇다. 기댈 데도 없고 앞날은 막막하고 심신은 무력해서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아무런 기대도 섣부른 희망도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마주한 무의미로 가득한 순간이 오히려 동질적이고 편해서, 그 구부정한 가로등의 모가지가 나 같아서 그냥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형태건 묘사건 예술 그 자체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의미와 교훈이나 주장 같은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선동이나 가르치고자 하는 말에 많다.
그 사진 한 장, 모르는 사람의 자그마한 사진 한 장으로 그냥 마음속에 자욱하던 흙먼지가 잠시 가라앉고 시야가 편해졌다. 핸드폰 화면 속 그 작은 사진은 나를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떤 곳 어떤 시간으로 데려다주었다. 위로는 위로의 말이 아닌, 잠시 척박한 이곳의 지금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 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여기 지금으로부터 잠시 다른 곳 혹은 다른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것은 말로 하는 위로보다 클 때가 있다. 현재를 잊는 게 아니라 현재로부터의 얼마간 휴식 같은 다른 감각의 자리, 아니면 무감각의 자리. 그것은 장소이기도 하고 시간일 수도 있다. 몸의 다른 감각이 열리고 받아들이는 사소한 환희의 순간, 현실도 고뇌도 없는 어떤 상태. 그런 것이 오히려 격려고 위안이다. 울지는 않았지만 한 순간 울고 난 후의 카타르시스 같았다. 그 사진은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고 위로하지 않았지만 보이는 그대로 격정과 허무와 우울을 '착'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파란 하늘 때문이었는지 사람의 얼굴을 닮은 구부정한 가로등 때문이었는지 황토색 벽 아래 겹겹이 밀쳐져 있던 쇼핑 카트의 핍진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을 분석하는 일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사람의 내면 어딘가를 넌지시 어루만지는 느낌이었고, 나는 이유 없이 편했다. 가로등처럼 구부정한 목을 가진 나에 대한 자기 연민도 끼어들었을 것이다. 그 사진은 그렇게 무겁고 무력한 나의 하루를 견디는 데 큰 일을 했다. 견뎠다기보다 그냥 보통의 생각들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줬다. 물론 그것이 현실을 바꿔주진 못했지만,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하루도 따라 지나갔다.
그에게 DM(Direct Message)을 보내서 '나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진이라고 하는 자로서, 귀하의 그 의미를 알듯 말듯한 사진에서 일종의 감동을 받았는데, 그 장소가 과연 어디며 어떤 느낌으로 그 사진을 찍으셨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사진과 사람 간의 감정 교류를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일인 것 같다. 여기에 그 사진을 붙이는 것도 궁금증을 덜어주는 것 이외에 그다지 효과는 없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그 사진에 대해 다른 느낌을 가질 것이고, 대부분은 내가 가졌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혹은 무심한 느낌(아니 느낌 자체가 없는)을 받을 것이다. 그런 실험이나 비교를 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상상하고 그려보시기 바란다. 어떤 사진이건 그림이건 그런 순간은 수시로 찾아올 수 있다.
이 사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던져진 어떤 순간의 건조한 정서가 들어맞았던 것이었으리라.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종종 생각보다 크다.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언어의 그물망(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등 여러 철학자이자 선각자들이 쓴 말이다)으로 건져 올릴 수 없는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그저 말이 되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리지만, 간간히 지나고 보면 그것이 말이었던 것들이 있다. 말로 표현되지 못했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되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은 감흥이란 그런 것이다. 살아보니 의외로 그런 순간들이 많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뭔가가 되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다. 말로 에워쌀 수 없는 뭔가는 남아서 보존되거나 타인에게 전달될 수 없다. 말이 아닌 표현 즉 사진이나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으로서의 매개를 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이나 시각적 기록에 기대서 말할 수 없는 뭔가를 말하고 보존하고 전한다. 손에 잡히거나 말에 잡히지 않아도 뭔가가 되고 말할 수 없는 어떤 말이 되어 보는 이의 마음이나 감성에 가 닿는다. 이럴 때 우리는 '말이 필요 없다'는 말로 이미 충분히 말의 기능을 넘어서는 뭔가를 했다고(보았다고) 말한다. 다만 말이 되지 못한 그것을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 볼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차이는 크지만 그것 조차 말을 통하지 않고 전해지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어떤 이들에게는 관계없을 뿐이다.
노래거나 글이거나 그림이거나 굳이 발설하지 않고 다른 장면 혹은 시간으로 데려다 주는 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힘내라'든지 '잘하고 있다'든지 '무조건 네가 옳아'라는 식 낙관주의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내 마음이 움직여서 어디론가 가야 한다면, 굳이 그것이 말 때문일 필요는 없다. 현재를 잊는 게 아니라 현재로부터의 얼마간 휴식 같은 다른 감각의 자리. 그것은 장소이기도 하고 시간일 수도 있다. 몸의 다른 감각이 열리고 받아들이는 모종의 순간, 현실도 고뇌도 없는 어떤 상태. 그런 것이 오히려 격려고 위안이다. 내게는 그렇다.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라기 보다 현실의 다른 면을 잠시 바라보는 것이라 해두겠다. 쉽게 발설되는 것들은 쉽게 잊히거나 때로는 반감마저 일으킨다. 그 이유 또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사진가는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을 아무런 설명도 정보도 없이 달랑 던지듯 올려놓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사진처럼 침묵의 말로 그냥 거기 있을 뿐이었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무언의 말이 닿았을 것이다. 단지 물리적 사진 한 장으로만 그것을 대했다면 '이 장소가 어딜까' 혹은 '이 사진가는 누군가'라는 궁금증이 일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침묵의 순간에 스민 적막한 기운이 전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말이 아닌 것들은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눈을 통해서 마음으로, 혹은 마음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몸에까지 자연스레 스며들기도 한다. 그렇게 말로 대신할 수 없는 것과 말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것들이 뒤섞여 존재하는 것이 현실세계다. 예술이라 말할 수 있든 없든 예술이 하는 작용은 그렇게 드러나기도 하고 모르는 사이 은근한 영향만 끼치고 사라지기도 한다. 사진도 메시지나 가르침에 연연하지 않고 그 본연의 말, 내면의 기운으로 전해지는 깊은 침묵 같은 말을 지니기도 한다. 의미도 아름다움도 갖추지 않고 그냥 거기 물끄러미 있다는 것 자체로, 서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