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벗게 되더라도
얼굴은 실제이면서 상징이고 대상이다. 얼굴은 사람에 대한 기억의 중심이고 관계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경우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어지간히 가깝거나 어쩌다 밥이라도 같이 먹는 사이가 아니면 마스크 쓰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그 사이 이런 대면과 비대면의 풍습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앞에 다가오는 저 사람이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일 것 같은데, 별로 친하지 않거나 귀찮게 인사까지 하지 않아도 될 관계라면 그냥 지나쳐버려도 된다는 안이함이 벌써 자리 잡아 버렸다. 그도 아마 비슷한 생각으로 나를 지나쳤을 것이지만 확인되는 바는 없으므로 그것이 그리 죄책감 들 일도 아니라고 피차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가끔 관계를 정리하거나 판단하는 데 도움 되기도 한다는 발상까지 그리 놀랍지 않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어떤 구석에서건 핑계나 합리화의 근거를 찾아내고 심지어 조작해 내기도 한다. 오랜만에 친구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고 확신을 가지고 격하게 아는 척했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나니 그런 소극성이 더 힘을 받게 되었다.
마스크로 코와 입과 턱과 볼을 가린 사람들과의 관계도 오래되다 보면 그것 또한 일반적 관계처럼 돼버린다. 초면부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알게 된 새로운 관계의 양상은 좀 다르다. 그 경우는 오히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두어 달 간 임시로 일을 맡아 사무실에 출근한 적 있다. 그곳의 모든 이들과는 처음부터 마스크 쓴 채로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한두 명 같이 식사를 한 적 있는 분들이 아니면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그 기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도 많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여성은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A 선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닮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분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그분도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마스크 뒤의 코와 입과 턱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가고 내가 아는 A 선생과 거의 비슷한 이목구비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목소리만 내가 아는 그분과 달리 꾀꼬리 소리 같았다. A 선생은 낮은 목소리를 가졌다. 어쨌든 한 두 달이 아주 바쁘게 지나갔고 나는 매일 그 분과 마주치며 옛날부터 알던 지인을 떠올리곤 했다. 나중에는 흡사 A 선생과 함께 지내는 듯한 착각이라 생각할 만큼 은연중에 친숙한 감정까지 들었다. 물론 나만 그랬다. 그리고 약속한 기간이 되어 일을 끝내고 그분을 보지 못하다가 한 달쯤 뒤에 다시 그 사무실에 갈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르는 얼굴을 만났다. 그분은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누구를 뵈러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자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꾀꼬리 같은 소리였다. 그렇다, 그분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분과 목소리는 같았다. 그리고 내가 닮았다고 생각한 A 선생과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다. 마스크가 가리고 있던 코와 입과 턱을 제외하고(상상일 뿐 직접 가리지 않는 이상 가능할까) 봐도 A 선생과는 닮은 곳이 거의 없는 외모였다. 그냥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목소리를 듣기 전에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할 뻔했다.
보이지 않은 것들에 의해 좌우되는 시각의 혼돈이란 것을 현상적으로 체험하고 그 경이로움과 한 편의 허탈함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그분은 다시 내가 오래전부터 알던 A 선생과 직전 얼마간 알고 지냈던 그분, 두 사람이 한꺼번에 내 앞에 있는 듯했다. 과장하자면 마스크 쓴 얼굴을 보니 오히려 익숙하고 반가울 지경이었다. 잠시 어느 정도 친한 척을 해야 되나 하고 고민까지 해야 했다. 사람의 얼굴은 그런 것이었다. 사람의 얼굴에 대한 타인의 생각,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상상들이 그런 것이었다. 익숙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가리고 일부의 이미지 만을 취하는 것이었다. 기계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듯 우리의 상상도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측두엽의 방추상 얼굴 영역을 통해 기억 세포에 저장하고 있었다. 다음에 또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누군가를 만나 그가 나를 아는 척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마스크를 써주시겠어요? 내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게."
생김새뿐 아니라 행동과 목소리까지 한 사람의 인상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마스크를 쓰고 만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코와 입을 제외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그 사람의 코와 입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누군가의 얼굴로 대체되어 기억되고 있다. 얼굴 형이건 목소리 건 움직임이건 내가 가장 비슷하게 생각하는 지인(연예인이나 유명인일 수도)의 코와 입으로 대체되어 그 사람이 기억 속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의도하지 않아도 상상하고 추측한다. 시각적으로 차단된 거의 모든 것들의 여백을 자연스럽게 추측하고 상상하고 채워서 완성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실체와는 차이 나는 나만의 그 사람을 기억 속에 갖게 되는 것이다. 목소리도 그 사람의 가린 얼굴의 여백을 채우는 요소가 된다. 내가 아는 누군가와 목소리나 어법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마스크 뒤의 얼굴에 대한 상상으로 그 사람의 얼굴이 채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한 사람의 실제와 추상을 버무려 창조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다. AI로 만들었다는 가상 인물의 얼굴과 비슷하다. 한동안 마스크를 벗을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는 마음속에 그리고 기억 속에 오래 자리 잡게 될 수도 있다. 이 전염병은 앞으로 인류의 생활 패턴을 영원히 바꿀 것이다. 마스크를 쓴 얼굴 또한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정체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때로는 그 사람의 얼굴에 있어 KF94와 비말 마스크와 면 마스크와 덴탈 마스크, 검정과 흰색과 하늘색 마스크, 드물게 꽃무늬 면 마스크, 가끔은 낯 뜨겁지만 정치적 메시지나 다짐인지 욕망인지를 담은 글귀와 로고를 새긴 마스크들이 사람의 인상에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마스크를 쓴 얼굴로 아는 사람과 마스크를 벗은 얼굴로 아는 사람으로 관계가 나누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라면 당분간 두 부류의 사람을 알고 지내게 될 수 있다.
어디든 가면 누구든 만날 것이다. 출퇴근 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하루에도 여러 명의 아는 사람들, 오래 연락 없이 지낸 친구와 형님 누나 동생 들을(닮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계기가 없다면 기억할 일도 없는 과거 속 어떤 인물을 갑자기 떠올리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마스크와 인간의 상상력은 눈에 띄지 않는 일도 하고 있다. 더 이상 각별하지 않아도 멀리 과거 속에서는 애틋했던 순간이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를 지나간 사람들을 한 번 떠올리게 된다는 것, 왠지 인간적이다. 그렇다고 굳이 다가가서 손 내밀고 인사할 필요까지는 없겠다. 십중팔구는 모르는 사람이다. 반대로 지금 만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 그 누군가가 길을 가다가 나를 닮은 사람을 보고는 수십 년 만에 나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나를 잠시 궁금해한다고 생각을 해 보자. 서로 간의 인생에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그런 상상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있을 것이다. 나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세계에도 가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처럼.
정부에서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모두 해제했다. 실내에서도 그리 머지않은 언젠가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개인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안 쓰게 되는 데는 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단지 감염 예방을 위해서뿐 아니라 습관이 돼서라든가 뭔가 허전해서라든가 하는 등 여러 이유로 적잖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닐 것 같다. 모자나 안경처럼 마스크도 자연스러운 인상착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