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깨운 것은 아카시아 향기였다. 옆 자리에 누군가 와서 앉았다.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오래 전에 느껴봤을 법한 젊은 사람의 공기가 왼쪽 뺨과 후각의 촉수로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감각만을 시야의 밖으로 움직여 본 바로는 긴 파마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물들인 여대생 쯤 돼 보였다. 아카시아 꽃의 원래 향기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 향기는 아카시아 향이라 이름 붙인 향수의 냄새였다. 사람들은 감각적 일들에 이름을 붙여 기억과 연결시켜 놓았다. 향기는 달아서 하얀 꽃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숲의 바람소리를 실어다 주었다.
첫 직장의 마지막 퇴근길에는 비가 왔다. 20년 넘는 세월동안 쌓여 이삿짐이 되어버린 짐은 휴일에 조용히 나와 챙기기로 하고 회사를 나섰다. 혼자 나선 마지막 퇴근길의 무거운 하늘을 감당하기 버거워 술을 마셨다. 동료들은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지만, 그 권유가 강하지 않았고, 감당할 수 없는 질문과 나도 알지 못하는 부질없는 대답의 시간이 막막해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20년 넘게 술 먹고 놀았던 동네의 아는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자축할 일이었으므로 자축했고,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 대부분의 동기가 위안 받아야 할 이유를 가졌으므로 위안 받고자 했다. 술이 하는 일들이 그런 것이지만 그 효과 또한 허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서 마신다. 한참을 마신 듯 했지만 시간은 더디게 갔다.
버스를 타고 시계를 보니 9시 좀 넘어 있었다. 덥혀진 차 안 공기에 취기가 올라 술이 눈앞을 가렸다. 때마침 제대로 굵어진 빗줄기는 차창에 비스듬히 쏟아져서 바깥 풍경을 가려주었다. 지금 견딜 수 없이 절박하다고 생각하는 동기는 곧 잊힐 것이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선택한 어처구니없는 길의 현실 앞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즐거운 기억이건 증오의 힘이건 기억은 사람을 힘내고 견디게 해 주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난 기억의 끈들을 붙들고 나는 충분히 누렸음을 자위했다. 오랜 무위와 무력의 시간에 짓눌려 뒹굴며 살아가게 될지, 별 것 아니더라도 사소한 행운들이 미래의 길을 찾는 계기를 가져다 줄 것인지 알 수 없다. 한숨 늘어지게 자고 싶었지만 꿈을 꾸는 것인지 귓전에서 타인의 연결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 말의 소리들이 맴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한참이 흐른 것 같았지만 버스는 여전히 서울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틀고 또 잠을 청했다. 라디오 헤드와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는 늘 그 목소리로 노래했지만, 단 한 곡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특별한 날에는 뭔가 특별한 엔딩타이틀 같은 노래가 필요했지만, 노래 따위에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다. 얼마를 잤는지 얼마를 깨어있었는지 알 수 없는 얕고 까마득한 잠 끝에 눈을 떴지만, 경기도 소도시행 광역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양재 인터체인지 부근까지도 가지 못했다. 다시 아카시아 향기가 비 갠 아침처럼 다가왔다.
옆자리의 젊은이는 앞 유리창에 시선을 두고 그날따라 막히는 길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차 안의 대부분 사람들과 달리 전화기를 만지작거리지도 않았다. 이미 평소 귀가시간의 두 배를 잡아먹고 있었다. 버스 전용차선까지 차들은 코가 닿을 듯이 줄 서 있었고, 승객들은 목을 빼서 앞 유리창 건너편을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라도 났을 것이라 짐작들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리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지루하지 않았고, 이 시간이 길어져 있음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무한정 길이 막혀서 너 댓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도 괜찮을 듯 했다. 아카시아 향기와 젊은 공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더 이상 서두를 일이 없어져 무감각해진 시간 탓이었을 수도 있다. 이미 잠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는 아카시아 향기 속에 다시 눈을 감았지만 정신은 점점 맑아졌다. 이 절절한 밤이 영원이기를 바라고 꿈이면 아침이 오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속적이고 맹목적인 악은 견뎠지만, 예리하고 정확한 악은 견디기 힘들었다. 지나간 22년으로부터 도망치는 길이었다. 내일 아침의 허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집에 가는 두어 시간 쯤이야 그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의 옆모습은 20대 말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건강한 대학 후배의 이마를 떠올리게 했다. 오랜만에 그 원만하고 적당히 고집스런 이마의 곡선을 보았다. 후배는 미국 캔자스에 살고 있다고 오래 전에 들었던 것 같다. '캔자스'라는 지명을 입 안에 굴려보았다. 사탕을 깨무는 맛이었다.
꿈처럼 두 시간이 넘어 지나고 고속도로 공사장 옆을 버스는 힘겹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비 내리는 밤에 도로공사로부터 공사를 발주 받은 인부들은 차로 두 개를 막고 도로 포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입의 쓴 맛이 느껴졌다. 담배를 줄이느라 갖고 다녔던 리콜라 무가당 레몬 맛 사탕을 꺼내 물었다. 새콤하게 달았다. 기대를 배신하지 않은 사탕 한 알 덕분에 현실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종이로 된 작은 사탕 통으로 옆 사람의 눈길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 먹기 미안한 일이었다. “사탕 하나 드릴까요?”라는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네에~” 하는 발랄한 대답의 끝에 비음이 섞여 들려왔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캔자스 후배 보다는 아담한 이목구비가 둥글었고, 미소는 수줍어 보였다. 사탕을 꺼내느라 통을 살짝 털었더니 노란 사탕 한 알이 통의 입구를 헤집고 나와서 떨어졌다. 그녀의 손 위로 떨어지나 했더니 사탕은 더 굴러서 손을 벗어나 허벅지께로 떨어졌다. 허벅지를 벗어나지 않고 멈췄다. ‘인디고 블루’ 가로 줄무늬 면 티를 입고 있던 그녀는 “아이쿠” 하면서 사탕을 집어 입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 젊은 기운이 눈물겨웠고, 버스를 내릴 힘이 생겼다.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무엇을 기대하셨다면 미안하다. 사람에게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과거는 사람의 생각 속에서 완성되는 무형의 것들이라 과거의 울타리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의 길이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생각은 집에까지 가는 길 위의 시간을 덮고, 온 지구를 덮고, 우주를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아쉬운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버스를 내린 나는 ‘내가 내 외연으로서의 사진으로 누군가에게 아카시아 향수 한두 방울 정도의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 절절한 시간을 견디는 데 한 줌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비 그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시간은 각자의 것이라 받아들이는 다양한 부피와 변화무쌍함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P.S. 그 버스 노선은 얼마 가지 않아 없어졌고, 다른 번호의 버스들이 비슷한 노선을 다닌다. 사진은 그날의 사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