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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May 31. 2020

#1 하고 싶은/싫은 일, 할 수 있는/없는 일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일들

사람이 마주하는 모든 상황은 다음의 기준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하고 싶은 일  /  하기 싫은 일
할 수 있는 일  /  할 수 없는 일

이렇게 2가지 기준을 두면 총 4가지의 분류가 가능하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
하기 싫은데 할 수 있는 일
하기 싫고 할 수 없는 일

자기의 의지와 상황에 따라 분류한 2가지의 기준이다. 이것이 인연이다. 내 안에서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 바깥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로 나눈다. 그러면 각각의 경우, 이에 대해 어떤 괴로움이 올지도 생각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별해야 한다.

우선 하고 싶다고 하면서 하지 않고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머릿속으로 ‘하고 싶다~’ 하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착각에 빠진 것이다. 하루를 돌아 보면 하고 싶은 건 하고 있다. 그게 하고 싶은 일이다. 그리고 하고 싶기 때문에 돈을 모으고 있거나, 공부를 하거나, 노력을 지금 하고 있다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인지부터 알 수 있다면 이 기준을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로또를 사면 10억 원 이상을 벌 수 있다. 슬롯머신 땡기면 수천만 원도 벌 수 있다. 그러나 이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배가 고프기 때문에 집에 있는 초콜릿바를 뜯어 먹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다. 날이 너무 더운데 태양이 없어지거나 겨울이 됐으면 좋겠다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뚜렷하게, 날카로운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할 수 있다면 이 기준도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흔히 생각하는 기준은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가 있다. 보통의 경우 자신이 마주하는 일을 생각함에 아주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별 게 아니다. 있을 수 없는 기준이다. 아무것도 사람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강제할 수가 없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가 있다.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싫기 때문에 해야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강제하는 건 무엇도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나다. 어린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어떤 결과를 마주했을 때 그 원인이 자기라는 생각도 잘 못한다. 원인 자체를 모른다. 그래서 부모가 알려준다. 제대로 못 알려줘서 문제다. 성인은 자기가 생각할 수 있다. 누가 알려줄 필요도 없고, 이렇게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다.


해야하는 건 없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그렇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법이 정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들이 있다. 이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니다. 할 수도 있다. 대신 하고 난 다음 감옥에 간다. 해야하는 것도 없다. 일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대신 돈이 줄어들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좀 덜하게 된다. 그건 싫으니까 일을 안 할 수 없다. 안 할 수 없으니 해야한다고 자기를 강요한다. 스스로 자기 자유를 없애버린다.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이걸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생각하면 된다. 해야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는 것이지만 하게 되면 계속해서 여러가지 종류의 괴로움을 만들어낸다.


위에 정리한 4가지 분류가 있다. 이에 따라 어떤 상황이고, 어떤 괴로움이 있을지 미리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마주하는 상황을 분류하여 어떻게 행동할지 쉽게 대처할 수 있다.


1.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

이 경우 가장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고 싶은데 할 수도 있다면 하면 된다. 당장 할 수도 있고, 시간을 조금만 들이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간 조금 들여서 노력한 다음 하면 된다.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이 경우에도 괴로움이 만들어지곤 한다.

— 100%는 없다.

모든 일에 100%는 없다. 그러나 100%를 확신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면 괴로움이 찾아온다. 100%라고 기대하면 괴로워진다. 확률이 올라갈 뿐이다.

— 귀찮음, 노력 부족, 강박

하고 싶고, 할 수도 있는데 귀찮아서 안 하거나, 노력을 덜 하거나 해서 안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하고 싶고 할 수도 있는데 안 하고 있네’하면서 스스로를 질책할 수 있다. 일종의 강박이 생긴다.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었고, 할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면 알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착각했거나,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자만하여 착각한 것이다.

— 즐거움과 괴로움은 하나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이뤘기 때문에 즐겁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어 즐거울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붙어 있다. 이것을 알면 즐거워도 적당히 즐겁고, 괴로워도 적당히 괴롭다. 마음에 즐거움의 파도가 이는구나 고요히 바라보고, 괴로움의 파도가 이는구나 고요히 바라보면서 미소 한 번 짓고 그냥 넘어가 버린다. 즐거움에는 왜 괴로움이 따르는지는 다음에 쓸 내용이니 자세히 쓰지는 않는다. 간단히 괴로움이 없다면 즐거움도 없고, 즐거움이 없다면 괴로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이뤘는데도 괴로울 수 있다. 고요히 바라보지 못하고 즐거움에 취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럴 확률이 무지하게 높기 때문에 괴로워진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고 싶으니 할 것이고, 할 수 있으니 다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되는데 괴로움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괴로움에 대처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괴롭지 않을 수 있다. 그저 하는 것이고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안 하고 있다면 자기를 질책할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을 알면 된다. 몰랐기 때문에 자기를 탓하게 되는데 몰랐던 것을 어떻게 미리 알고 모를까, 알면 그걸로 다 해결 된 거다. 그리고 마냥 즐거움에 취한다면 반드시 괴로움이 온다.


2.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인 경우 쉽게 괴로워진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괴로움은 3가지에서 오며 요약하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롭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다는 뜻이 있는데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는 할 수 없느냐를 먼저 생각하면 좋다. 한 가지 예시를 생각할 수 있다.

— 감옥에 있는데 지중해에서 서핑하고 싶은 사람

이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보이는가. 명백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주 괴로울 것이다. 지중해 가서 멋진 풍경 속에 서핑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마음을 없애면 된다. 당연히 이게 말처럼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사람은 자기 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허튼 뜻을 가졌다. 동쪽에 창문이 난 집에 사는 사람이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에 아침에 눈이 부셔서 잠을 못자겠다며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란다면 이 사람은 매일매일 괴롭다. 감옥 속에 있는 사람은 감옥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괴롭지 않고, 눈이 부시면 커튼을 달면 된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게 단 하나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단 하나만 매달리게 되면 집착이다. 그것은 이뤄도 괴롭다. 집착이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놓을 수도 있다면 집착이 아니다. 안 돼도 괴롭지 않으면 집착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쓰면 주제를 알고 살아라 하는 오만하고 건방진 소리가 되기 쉽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그런 뜻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없는 법이다. 이룰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모범수가 되거나 사면을 받아 지중해에 갈 수도 있다. 동쪽에 창이 난 집이 싫으면 집을 바꾸면 된다. 화성에 가고 싶으면 우주선을 만들면 된다. 미국에 있는 친구와 얼굴 보고 이야기 하고 싶다면 영상통화를 만들면 된다.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할 수 있어졌다. 그래서 할 수 없느냐를 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 정말 할 수 없는 일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시로 비칠 수 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좋은 집에 살고 싶고, 맛있는 음식 먹고 싶고, 코로나19 상황에 수영하고 싶고, 일이 바쁘지만 여행 가고 싶은, 이런 것들이야말로 사람들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방법을 찾아 정말 할 수 없는지를 알아보고, 정말 할 수 없다면 단념하면 된다. 단념이란 생각을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끊지 못한다면 집착이다. 집착은 되지도 않는, 있지도 않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자꾸만 만들어내고 붙잡는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인데 왜 자꾸 하고 싶어하는가. 바보가 따로 없다. 방금까지 물 끓이던 펄펄 뜨거운 주전자를 양손으로 소중히 감싸 들고 있을 수가 있나. 사람이 그럴 수가 없다. 탁 놓치게 된다. 할 수 없는 일이란 이런 것과 똑같다. 그럼에도 자꾸만 생각이 들면 할 방법을 찾거나 계속 괴로워 하면 된다. 할 수 없는 일을 단념 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단념하면 괴롭지가 않다. 괴롭지 않은 것이 중요하지 뭘 꼭 해야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이 괴롭지 않다면 계속 하고 싶어하면 된다. 그게 즐겁다는 사람도 봤다.

— 하고 싶다는 생각

그렇지만 마음처럼 안 된다. 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고, 원래 사람이 그렇다. 원래 그런 걸 어쩔 방법은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아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괴로움을 만들고 있구나, 내 괴로움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구나, 알면 괴롭지 않다. 또 집착이 되는 것을 경계할 수 있다. 다른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면 된다. 이렇게 찾는 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집착이 되지 않는다. 탁 놓아버리면 되는데 놓을 수 없다면, 놓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구나 알면 되고, 다른 것을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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