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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May 18. 2020

기대를 했는데, 실망이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 상황이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

사람은 살면서 여러 가지를 기대하고 산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하고, 상황이 잘 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기대하는 것의 큰 두 가지 갈래다. 이외에도 사람마다, 직업마다, 위치마다, 상황마다 다들 다양한 기대를 품고 살아간다. 기대대로 이뤄진다면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하기도 하고, 잘 됐다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도 하고, 자책도 하고, 이런 저런 종류의 괴로움에 빠져든다.


먼저,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해야할 말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기대대로 해줄 필요도, 이유도 없다.
당신의 기대는 다른 사람이 기대대로 해주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하여 당신이 그대로 해줄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기대대로 한다면, 당신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들고 싶거나, 별거 아닌데 한 번 해주지 뭐 하는 식으로 따라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기대한 대로 해주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렸다. 당신이 기대한다고 해서 그대로 해줄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러하며, 부모자식 간에도 그러하다.


허나 상대방이 기대대로 해줘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여기서 괴로움이 생겨날 싹이 트는 것이다. 기대대로 해줄 이유가 없는데 자기가 기대했기 때문에 그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이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기대한 것 때문에 실망감 같은 괴로움이 생겨난다. 그 사람이 당신을 괴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기대했기 때문에 괴로워지는 것이다.


당신이 기대했는데 그대로 되었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기대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전에 기대대로 해줬기 때문이다. 우연히, 또는 상대방의 선심으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자신이 자신을 속여 ‘기대하면 다른 사람이 해준다’ 라는 잘못된 인과관계를 머릿속에 둔다. 그러니까 기대대로 됐다고 그게 마냥 맞는 인과가아니다. 상대방이 당신을 좋아하거나, 당신의 기대를 한 번 들어주지 뭐 하는 정도의 호감을 품은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것과 기대가 이뤄지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기가 기대하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에 일정부분 작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이뤄진다는 것은 아니다. 행동은 전적으로 상대방이 하는 것이며, 내가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기대한다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길가를 걸어가던 사람이 뜬금없이 물구나무를 서서 노래를 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무 상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괴롭지도 않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라는 생각을 갖다 붙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은 분리된, 전혀 다른 존재이며 내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안 들어줄 자유가 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자유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기대를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괴로움을 가져올 확률이 아주 높다. 그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이 찾아올 것이며, 그대로 됐을 때 다음 상황에서도 또 기대를 하여 이뤄질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수 있다. 괴로움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지난 글에 썼다. 좋은 것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기대하거나, 싫은 것에서 떨어지고 싶다고 기대하거나, 원하는 것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뜻을 기대로 둔 것이다. 그렇다면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옳을까.


우리의 모든 일은 확률이다. 될 확률과 안 될 확률이 있다. 우선 확실히 해놔야 한다. 49%와 51%가 있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51%를 선택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다. 아무리 2%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51%가 확실히 확률이 높다. 이것이 이성적인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확률은 운명처럼 그저 주어지고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행동을 할 수 있고, 이 행동으로 확률을 높일 수도 있다. 기대대로 되도록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할 때, 기대대로 되도록 노력한다면 확률이 올라간다. 돈을 주거나, 칭찬을 하거나, 설득을 할 수도 있다. 허나 여기서 폭력과 협박을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 뒤에 찾아올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점은 확률을 높이도록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요, 사람이 기대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으니 확률을 올릴 행동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 자신의 기대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대도 기대를 하게 된다면 자신이 힘을 좀 써야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이 있다.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100%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안 될 확률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노력 했을 때 안 됐다 하더라도 실망할 이유가 없다. 실망한다면 100%로 어차피 만들지 못하는 것인데 자기 스스로 100%가 됐다고 착각한 것이다. 자기가 착각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배신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괴롭게 만든 것이 아니다. 만약 정말 기대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다 해봤을 것이고, 그랬는데도 안 됐다면 더 할 방법도 없기도 했고, 어차피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안 될 일이 안 되었다고 괴로울 이유가 없다. 예를 들었듯, 지나가던 사람 물구나무 서서 노래 하라고 아무리 해도 안 해줄 것이 당연하다.


이제 상황에 기대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대를 한다면 노력을 할 수 있다. 노력을 하면 확률이 올라간다. 모든 노력을 했는데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면 어차피 안 될 일에 기대한 것이다. 모든 노력을 할 수 없었다면,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돼서 그랬을 뿐이니 조금 아쉬울 순 있어도 계속 떠올리며 괴로울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 오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롭다’에서의 뜻을 구별할 수 있다. 기대라는 감정이 삶에 끼어들 틈이 없다. 기대라는 것은 나와 분리된 다른 사람, 외부의 상황이 자기 마음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람과 상황이 그래줄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노력할 수 있고, 그렇다면 확률이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까 기대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은 뜻을 세웠다면 행동하면 되는 것이지, 기대하거나 기대대로 안 됐다고 괴로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려고 할 뿐인 것이다. 이것 뿐이지, 이외의 감정은 낼 필요가 없고, 그것으로 괴로움을 불러들일 필요도 없다.


이 생각은 여러 가지에 적용할 수 있다. 자식이 시험을 잘 봐왔으면 좋겠다거나,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내 생각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거나, 점원이 친절했으면 좋겠다거나, 친구가 약속을 지켜준다거나,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호회에서 모두 마찬가지다. 사람은 살면서 참 많은 기대를 하고 산다. 기대하는 습관이 든 것이다. 이 시작은 처음 기대했을 때 그대로 되었던 경험에서부터다. 그때는 어렸고, 잘 몰랐기 때문에 기대한 대로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기대하는 습관이 들었고, 기대대로 안 되면 괴로운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짜여버렸다.


로또를 샀다고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로또를 사고 1등 당첨 되면 어떻게 돈을 쓸지 잔뜩 계획을 세우다가 한 주가 지나고, 꽝이 되고, 괴로움에 빠져 술을 진창 들이키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은 꽝일 확률이 아주 높은 상황에 큰 기대를 했기에 괴롭다. 꽝일 확률이 아주 높고, 큰 기대라는 것은 요점이 아니다. 꽝일 확률이 있고, 그 확률 대로 꽝이 나왔는데 기대를 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모든 일 역시 꽝일 확률이 존재한다. 확률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 사람과 같은 사고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기대는 실망을 가져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렇다면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부러 찾아서 괴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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