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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Feb 07. 2021

冊. 걱정이 많은 오이

[우울할 땐 뇌과학]

‘전전두피질’이라는 명칭은 뇌의 가장 앞부분에 있어서 붙은 것으로, 이 영역이 인간의 계획 회로와 의사 결정 회로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한다. 즉 자기 인식, 계획과 전략 수립, 충동 조절, 감정 억제 등 인간다운 삶에 꼭 필요한 기능들을 이 영역이 주로 담당하는 것이다.

내 두개골은 이마의 절반 지점을 횡으로 갈랐을 때 바로 그 아래쪽부터 눈썹에 이르는 지점까지가 툭 튀어나왔다. 말하자면 남들보다 두개골의 그 부분이 두터워 앞으로 돌출된 것인데, 얼굴 사진을 찍으면 눈에 띄게 그늘이 질 정도라 그것이 종종 미미한 콤플렉스였다. 가만있어도 어쩐지 찡그린 것처럼 보이고 찡그리면 심지어 화나 보이고. 미간에 주름을 잡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사나워지는 바람에 내 강퍅한 성격이 좀처럼 본성을 드러낼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게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남들보다 두터운 그 뼈가 내 소중한 전전두피질을 든든히 지켜준다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야 있는 줄도 모르는 얼굴의 미미한 그늘쯤이야.

두개골 앞부분의 두께가 남보다 실하다고 해서 반드시 튼튼한 것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두개골 두께와 전전두피질의 기능성 사이에는 하등의 연관 관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들보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능하고 피로와 지루함을 견디며 해야 할 일을 보통보다 높은 수준으로 완수해 내는 데도 얼마간 자신이 있다. 뇌에 관한 책을 읽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발견하고 ‘내 두개골 뼈도 훌륭하지만 내 전전두피질도 상당히 훌륭하군!’이라고 기쁨에 젖었던 것도 잠시, 중요한 일을 많이 하는 만큼 과부하가 걸리기도 쉬운 전전두피질은 걱정, 죄의식, 수치심, 우유부단함과도 관련 있는 부위라고 한다.

몸의 90퍼센트가 수분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그저 걱정이 많은 오이에 불과하다지만, 그중에서도 나머지 10퍼센트를 걱정으로 꽉꽉 채워 가진 사람들 중 하나가 나다. 내 전전두피질이 하루 17시간을 꼬박 회사에서 집에서 격무에 시달린 결과다. 타고나길 걱정이 많아서 예상되는 모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일을 많이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걱정도 는 것이다.
걱정도 뇌 활동의 산물이란 걸 알고 나니 다행히 걱정하는 일이 전보다 줄기는 했다. 이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생각’이라는 명쾌한 등식 덕분으로, 걱정이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적당한 선에서 나 스스로 멈추면 된다. 그것을 멈추게 할 메타 인지도, 썩 기능이 괜찮은 내 전전두피질이 갖춰 놓았을 것이다.

그밖에 전전두피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로는 충분한 수면과 운동, 그리고 빠른 결정 내리기가 있다. 앞의 두 개는 만성부족이지만 내가 또 INTJ형 인간이다. 속히 결정하고 속히 실행해서 잘되면 좋고 안 되면 또 속히 관둔다. 전전두피질은 목표지향적이라 이렇게 결정을 내리는 행위 자체가 도움이 된다는데, 성향도 성격도 이렇게 뇌에 좌우되는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제가 아니라 제 뇌가 걱정도 목표지향도 담당하고 있습니다’라고 써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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