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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May 30. 2020

冊. 의지 대신 습관이 일하게 하기

[해빗], 웬디 우드

내가 회사에서 시들한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데, 대체로는 비즈니스나 자기 계발 영역의 책을 골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읽으며 모여서 잡담을 하는 정도의 텐션을 유지하고 있다. 텐션은 그 지경이지만 읽는 책들은 하나같이 훌륭해서(물론 참석자 여러분도 훌륭하다) 이번에 읽은 책에 대해 쓸 것이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시크릿] 류의 자기계발서처럼 막연하게 습관의 중요성이나 그걸 강조하는 교훈 따위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뇌과학과 실험으로 검증된 결과들에 기반하여 습관이 왜 개인의 의지보다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그래서 어떻게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하거나 반대로 부정적인 습관을 타파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나는 타고나길 성실한 인간이지만 그와 함께 인내심 부족도 타고났기에 애시당초 내 끈기나 의지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멋진 나이키 러닝화 한 켤레를 사놓고 코앞에 있는 공원에 안 나가는 것도, 집구석에 굴러다니는 폼롤러에 늘 발이 걸려 성가셔하면서도 절대로 그걸 더 유용하게 쓰지 않는 것도 다 내 의지력 탓이 아니라니 어찌 이 책의 내용이 솔깃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론편 

개인의 삶에서 습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적으로 약 43퍼센트라고 한다. 습관은 드러나지 않고, 목표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를 쓰지도 않는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뇌의 작용에 관한 지식이 좀 필요하다. 자기 인식, 계획, 판단, 전략 수립, 충동 억제 등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은 인류의 뇌에서 가장 발달한 부분이지만 그만큼 지속적인 자극과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인간이 의지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서 습관, 반복-보상과 관련 있는 부분은 조가비핵이다. 즉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뇌 영역과, 그것을 습관화하는 뇌 영역이 각기 다른 것인데 이 원리를 잘 활용하면 인간은 지나치게 애쓰지 않고도 습관의 힘을 빌려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실행편

이 책에서는 몇 개의 장에 걸쳐 습관을 형성하거나 타파하는 방법들을, 그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들과 함께 제시했다. 그중 내가 잘하고 있는 것들만 꼽아보았다.


[1] 나를 중심으로 상황을 재배열하라 (환경 통제 전략)

가까우면 편하고, 멀면 불편하다. 뇌에는 관성이 있어서 환경이 갖춰져 있으면 자꾸만 그걸 하게 된다. 나는 혼자 사는 데다 실행력도 있으므로 이 환경 통제 전략을 아주 유용하게 이용해왔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현관 입구에 마스크 박스를 두면 된다. 청소를 하는 날에는 출근 전에 현관 바로 앞에 청소기를 놔두고 간다. 행여나 도전 의식이 도져서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해보겠다고 설치다가 시간과 돈과 낭비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집안에 조리도구는 일절 두지 않는다. 자녀가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게임기를 내다버리겠다고 위협하는 부모의 선택이 틀리지만은 않은 셈이다. (그래봤자 게임을 못 하게 될 뿐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긴 하다.)

좋은 습관을 기르려면 환경부터 거기에 최적화시켜야 한다. 방해가 되는 것은 내다버려야 한다. 이 원칙은 인간관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 책에는 주변인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훌륭한 사람을 곁에 둘 수 없다면 나한테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도 멀리하는 것이 유익하다.


[2] 적절한 곳에 마찰력을 배치하라

마찰력을 잘 배치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한때 잘하지도 못하는 온라인 게임에 미쳐서 새벽 두 시까지 옷방의 PC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걸 끊으려고 키보드를 빼서 침실로 옮겼더니 키보드 연결이 귀찮아서 더 이상은 PC를 쓰지 않게 됐다. 물론 나는 멀쩡한 물건이 제 역할을 잃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기에, 맥북에 LG울트라파인4K 모니터를 마련하여 그 키보드를 물려서 침실에도 근사한 컴퓨터 사용 환경을 마련해뒀다.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먹지 않는 방법도 나는 몇 주 전에 개발했다. 나는 배민에 가입하지 않아서 매번 전화번호를 인증받아야 주문을 할 수 있다. 배송 요청란에는 ‘전화 주시면 내려가서 받겠습니다’라고 입력해둬서,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옷을 갖춰 입고 신발을 꿰어차고 몇 층을 내려가서 음식을 받아와야 한다. 그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귀찮더라도 두 번에 한 번은 퇴근길에 어딘가에 들러서 저녁거리를 사게 된다. 매일 시켜먹지 않는 게 어디야.  


[4] 행동과 보상을 긴밀히 연결하라

나는 내가 성실하고 그래서 종종 스스로를 몰아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보상을 줄 때만큼은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자이로토닉을 열심히 배우던 시절 지출이 위험 수위를 찍은 건 그 때문이다. 운동 한 회를 하고 돌아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새 옷이나 신발을 사주는 버릇이 들었는데, 이처럼 보상은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지만 원활한 경제 생활을 위해 보상의 한도를 미리 정해놓는 것이 좋겠다. 이 사치스러운 보상 습관을 통제하기 위해 나는 마찰력 법칙을 적용시켜 모든 쇼핑몰 앱을 스마트폰의 가장 구석진 폴더에 넣어두고 로그아웃해버렸다.


[5] 마법이 시작될 때까지 반복하라

이 책에 따르면 습관은 특정 행동을 반복할 때 설계된다. 최근 내가 들인 좋은 습관 하나는 점심시간에 계단을 이용해 사무실까지 올라가는 것인데, 이것을 한 달 동안 반복하니 이제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 있어도 자연히 계단으로 발걸음이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환경 조건(계단의 손쉬운 접근성), 마찰력(점심시간에 유독 미어터지는 엘리베이터), 즉각적 보상(애플워치의 칭찬)이 훌륭하게 작용하였다.


[6] 습관 단절

습관 단절이란 상황 변화에 의해 습관이 방해를 받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사, 이직, 결혼/이혼 등 일상을 바꿔놓는 사건이 일어나면 일시적으로 개인의 의지력이 습관을 이긴다. 습관 단절의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면 개인의 행동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사를 열다섯 번쯤 다녔고 그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친 습관들(야식 주문, 중독 수준의 쇼핑, 늦잠)도 있다. 바로 최근에는 코로나의 창궐로 그렇지 않아도 뜸하던 외출을 더욱 삼가고 그 시간을 아주 생산적으로 사용했다.


[7] 습관 촉진

습관 촉진이란 개인의 의지력과 인내심이 한계에 직면했을 때 습관의 실행력이 촉진되는 현상이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 뇌에 과부하가 걸리면 뇌는 자기 보호를 위해 의식적 자아의 활동을 최소화하고 습관에 통제권을 내준다, 이 때문에 개인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럴 때야말로 그간 길들여온 좋은 습관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나는 기질이 다소 예민하고, 또 어느 정도 완벽을 기해야 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어 평범하게 일을 할 때에도 과한 스트레스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1인가구 세대주 여성의 삶은 말할 것도 없이 온갖 위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더 젊었을 적 나는 스트레스에 압도당하면 반드시 자기파괴적인 선택을 했다. 깊다면 깊고, 얕다면 얕은 구렁텅이들을 어떻게든 기어 올라온 지금은 나름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지쳤을 때, 화났을 때, 슬플 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 것. 이것이 한번 습관이자 원칙으로 자리잡으니 전보다는 자기파괴적인 충동에 몸을 덜 맡기게 됐다.


[9] 의식과 습관

올바른 습관은 삶을 안정시키고 몰입을 돕는다. 나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나는 때때로 언제고 잘못 발을 디디면 사회적 안전망이 거두어 올리지 못하는 어느 틈바구니로 떨어져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는 실존적 공포에 시달린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습관과 그것을 있게 한 환경의 도움으로 10년 전, 20년 전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웬만한 것들을 갖고 나니 이제 나는 주말 오전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가장 좋아하는 커피잔에 내려 먹는 커피 한 잔, 나무가 보이는 카페의 창가에서 읽는 최애 작가의 책 한 권에 깊은 행복을 느낀다.



이 책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은 [우울할 땐 뇌과학]인데, 우울감에 잠식될 것 같을 때 얼마 남지 않은 내 전전두피질의 분별력을 발휘해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책은 거듭해서 내게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이 자의식으로만 이루어진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각자 기능이 있는 여러 영역으로 이루어진 뇌의 지배를 받는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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