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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Feb 12. 2021

冊. 내 눈높이에 걸맞은 품위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만 읽자고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도, 결국 연휴 첫날 서점에 나가 하루키 신간을 사고 말았다. 이것은 내 얄팍한 결심이 아니라 기계 문명을 탓할 일이다. 책갈피만 끼워두고 읽는 것도 안 읽는 것도 아닌 책만 너댓 권은 된다. 그나마 실용서는 눈에 띄면 종종 집어 읽지만, 픽션의 서사를 따라갈 만큼의 인내심도 체력도 샘솟는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업무 시간엔 쉴 새 없이 울리는 슬랙과 지메일 알림에, 업무 외 시간엔 마찬가지로 빈번히 뜨는 트위터 알림에 내 전두엽이 지나치게 자극받은 탓이다. 하여 새로운 작가는 엄두를 못 내고 이미 알아 문체가 익숙한 작가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잘못 길들여진 나의 독서 취향이여.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는 몇 달간 '독서에 가장 적절한 장소는 카페'라는 내 생각을 고쳐먹을 기회는 충분했다. 그래도 모처럼 서점까지 노구를 이끌고 나가 책을 샀으니 오랜만에 카페에 가야지 했는데 서점에도 하도 오래 머문 탓에 날이 금세 어두워져 계획이 무산돼 버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누군가 "카페에 사람 개많네"라고 불평하는 걸 들었는데, 자기도 그중에 한 명이면서 그 불평에 공감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싶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많은 손님들 중에는 틀림없이 카공족도 있었을 것이다. 카페 매장 영업이 중단됐을 무렵 패스트푸드점, 제과점을 찾아 다니던 학생들, 취준생들, 직장인들을 싸잡아 욕하는 목소리가 높기도 했다. 당시 나는 사뭇 겸허한 기분으로, 내 시야와 눈높이와 내가 속한 계층을 참으로 다행스러워했다. 속 편히 남을 비난하는 것과 3평, 5평짜리 방에 갇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봐야 하는 지경에 처하는 것 중 고르라면 단연 후자다. 


한때는 나도 연휴 기간 이 카페 저 카페를 전전하며 보내는 처지였다. COVID-19가 내 이십대에 창궐하지 않은 것이 고마울 정도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의 행동을 두고 '사정이 있겠지' 하고 우선 지켜보는 분별력을 키워준 나의 경험들에 대해서도 아마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또는 나의 결정을 그런 마음으로 잠자코 지켜봐준 사람들에게. "청년을 위한 주거권"을 내세운 어느 진보 정당의 현수막이 돌아오는 길에 유달리 눈에 띄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느슨한 독서 모임에서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상류 계급에 속한 자도 단지 본인의 혈통이 계급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므로, 본인보다 더 지위 낮은 자 중에도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는 반면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설령 모든 구성원이 제 능력에 걸맞은 지위나 대가를 누리고 있지 않다 하여도) 상위 계층에 속한 자가 본인이 누리는 것을 가질 온전한 자격이 본인에게만 있다고 믿는다"는 통찰이 특히 빛나는 책이었다. (시민 사회 출현 이전의 귀족보다 오늘날 사회 지도층의 현실 인식 능력이 뒤떨어진다면 과연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사회에서는 공정함이 가장 옳은 가치이므로 마땅히 실현되고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나는 종종 마주한다. 출신, 외모, 성별과 관계없이 공정하게 평가받고 능력대로 보상받는 것도 특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도 마주한다. 그럴 수 있는 특권이 아예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를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비난해도 되는 권리'로 착각할 일이 나한테 없다는 것만큼은 어찌나 다행인지. 원래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을 소리 높여 비난할 자격이 본인에게 있다고 여기는 것은 품위와는 거리가 먼 태도다. 그것이 타인의 사정에 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성과도 거리가 좀 멀어 보인다. 


이렇게 말해도 내가 남을 전혀 속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변덕스러운 관용은 나보다 약자인 사람만이 그 대상이며, 저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세상으로부터 받는 대접이 나의 것보다 딱히 뒤처지지 않는 것 같으면 나는 그제야 '공정'에 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심지어 출발선이 나보다 앞에 있었는데 도중에 나한테 뒤처졌다면 마음속으로 무시 정도는 할 수도 있지. 


그래서 말인데, 연휴에 카페가 붐빌 것 같으면 그 자리가 더 절실한 사람에게 양보하고 나는 집에서 책 보려고. 그리고 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씨를 아주 마음 편히 비판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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