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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Jan 03. 2024

브런치북, 기획이 먼저다

2024년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하세요 (1) 

매거진 ≪무대책 퇴사자의 30일 생존기≫는 무대책 퇴사 후, 커리어 계획 혹은 무계획적 일상에 관해 30일간 쓰는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결과가 발표된 지는 좀 되었으나, 비교적 최근까지 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에 관한 글들을 많이 보았다. 이 매거진 ≪무대책 퇴사자의 30일 생존기≫는 (일시적) 백수의 생존 신고서로서, 일관성은 없고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뭐든지 업데이트하는 게 목표라 오늘은 아직 세간의 관심이 시들지 않은 화제를 가져와 봤다. 



이 글은 전적으로 개인의 시각과 의견을 담은 것으로 당연히 나와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 다만 막연히 쓰고 싶은 걸 쓰기보다 ‘수상’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브런치북을 쓰고 싶은데 그 전략을 도무지 모르겠는 분들에게는 이 접근법이 약간의 도움이 될… 되기를 바랄 뿐이다.


기획이 먼저다

수상작들의 공통점

브런치는 트렌드에 상당히 민감한 플랫폼이다. 즉, 브런치에서 유행하는 주제는 1년도 아닌 반년마다 바뀐다. 몇 년간 지켜본 바 브런치북 수상작 또한 일부는 그 해의 인기 주제나 관심사와 직간접적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모든 수상작에는 공통적 경향성이 있다. ‘하나씩 들여다보면 개성도, 재미도, 감동도 있다’라는 것은 독자로서의 감상이다. 그것보다는 더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브런치북을 단순한 글 모음집이 아니라 ‘책’이라는 하나의 상품으로 본다면, 브런치북에 필요한 것은 명확한 주제와, 컨셉과, 대상이다. 작가의 메시지가 쉽게 읽히고(주제), 브런치북을 읽은 독자가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은 이런이런 책이야’라고 한 줄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컨셉), 독자의 페르소나가 확실하다면(대상) 예선쯤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선을 통과하면 그다음부터는 상업성과 운의 문제다.

또한 내용 면에서는 유익하거나 충실하고 표현은 명료하거나 아름답거나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세부 장르가 조금씩 다르긴 하되 올해 수상작들도 이러한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각 수상작을 살펴보면 표지만 봐도 주제, 컨셉, 대상이 바로 나타나 있다.


목표 설정

남에게 보여주는 글을 쓸 때는 으레 글을 잘 써야 한다고들 한다. 못 쓴 글은 공감도, 인기도 얻지 못할 테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글이 ‘잘’ 쓴 글인가? 글을 ‘잘’ 쓰려면 막연한 개념을 제대로 정의할 줄 알아야 한다. 멋진 문장이나 화려한 경험이 들어 있어야만 ‘잘’ 쓴 글은 아니다. 그보다 브런치북은 명확한 목표(메시지)와 그에 맞는 기획이 먼저다. 출간 프로젝트 수상작이 되고 나면 비문이나 맞춤법이야, 전문 편집자가 알아서 잘 고쳐 줄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의 당선작이 되면 좋겠다’라는 것은, 목표처럼 보이기는 하나 실은 결과 지표다. 우선적으로 브런치북의 목표는 특정한 대상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으로 삼는 게 낫다.

목표는 구체성을 띤 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글의 목표는 [2024년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서 상을 타고 싶지만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는 작가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쉽게 알려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미 방법을 잘 아는 분들은 이 글의 대상이 아니다. 이 글에서 고차원적 기획 전략을 다루고 있지도 않다. 이것이 구체성이다.

다음으로 내 글의 대상이 누가 될지, 나는 무슨 이야기를 전할 것인지, 내 이야기가 독자의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킬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일이 기획에 해당된다.


팔리는 기획

기획 자체가 질적으로 훌륭하다고 해서 무조건 상을 타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북 대상은 출판사가 ‘이건 책으로 만들면 좀 팔리겠는데’라는 필이 온 브런치북의 작가에게 주는 것이다.

따라서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는 글 또는 확실하게 돈을 낼 의사가 있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글을 써야 하며, 그러려면 팔리는 책의 기획법을 알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책 기획에 대한 여러 책이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좋았다. 목차만 훑어도 팔리는 책의 요건이 뭔지는 대강 보인다.

가장 어려분 부분은 팔리는 글의 요소가 뭔지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걸 내 글에 직접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수요와 상업성

구상과 기획 단계에서 무엇이 잘 팔릴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트렌드는 계속해서 바뀌고, 경쟁에서는 누군가 나보다 더 좋은 기획을 내놓으면 그만인 까닭이다.

그러나 무엇이 팔리지 않을지를 가늠하기는 비교적 쉽다. 기획이 엉성하면 팔리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실패라는 이야기는 위에서 했다. 브런치에서 종종 등장하는 주제이지만 인기를 끌어모으거나 수익화하기 어려운(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여행, 퇴사, 연애

여행, 퇴사, 연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경험해 보았으니 보편적 주제로 보이지만, 그만큼 개인적 측면도 강하므로 남들이 관심을 갖고 꾸준히 봐 주기는 어렵다. 게다가 경험 자체가 위주여서 메시지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교토를 여행했다, 그래서 뭐?)

이런 주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면 막 떠오르고 있는 마이너한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한발 앞서 제공하거나, 10군데쯤 되는 유명한 회사(아마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를 요란하게 줄퇴사하고 창업했다가 보기 좋게 망한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쓰거나, 환승연애 저리가라 할 정도로 끈적끈적 징그러운 치정물로 독자가 밤잠도 못 이루고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들어야 한다.

똑같이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가족’이라는 테마가 이따금 브런치북 수상작 반열에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가족이라는 테마가 개인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모습이 다르다 하나, 많은 이들이 가족 관계에서 갈등을 겪어 보았기에 그 나름나름의 불행으로부터 일반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잡다한 신변 이야기(바로 이 브런치 같은) 

이런 주제로는 현란한 글솜씨를 가진 천재 작가 또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이미 유명한 사람(그분은 책에서 주구장창 자기 티셔츠 이야기만 해도 팔린다)이 써야 팔린다. 또 신변잡기식 에세이집이라면 주제는 글마다 다르더라도 전체적인 컨셉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에세이 시리즈가 그런 컨셉을 참으로 잘 보여준다. 『작가의 마감』, 『작가의 계절』, 『작가의 산책』, 『작가의 서재』로 이어지는 소위 작가 시리즈인데, 특정한 컨셉별로 일본 작가들의 에세이를 묶었다. 더구나 실린 글들이 하나같이 유려하다.


푸념, 불평불만, 토로 

부정적 경험을 통한 레슨 런드에 관해 쓰는 것은 괜찮지만, 내리 부정적 감정만 쏟아내는 글은 읽기가 불편하다.

부정적 경험과 감정을 주로 다뤘는데 사람들이 많이 읽게 하려면 웃기기라도 해야 한다. 유머 감각은 불편함을 해소하는 훌륭한 장치다. 아니면 푸념에서 시작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건드리는 것도 좋다. 


‘뭐야, 그럼 특별한 경험도, 빼어난 글솜씨도, 유명세도, 엣지 있는 기획력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상을 타라고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아무나 브런치북을 만들 수는 있어도 아무나 상을 탈 수는 없다. 수상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수상 외에 내가 확실히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케이스 스터디: 실패한 기획의 사례

나는 2021년에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미 막연하게 느끼기는 하였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니 대실패한 기획이었다.

나는 이 브런치북을 통해, 스타일도 효율적 공간 활용도 지속 가능한 쇼핑도 놓치기 싫은 1인 가구 세대주의 의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라는 제재는 정해져 있었으나 주제도 컨셉도 대상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 브런치북을 본 독자가 제3자에게 이걸 설명하려 했다면 어… 혼자 사는 사람의 옷 얘기?라고 하고 말았을 것이다. 기획에 구체성이 없으면 이렇게 된다. 독자에게 하려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이 브런치북에 필요한 것은 훨씬 더 좁은 범위의 주제, 구체적인 컨셉이었다.

구체화할 수 있는 방향은 대략 다음 세 개 정도다.


1인 가구 의생활 보고서

만약 컨셉이 1인 가구의 의생활에 관한 보고서라면 제목에서부터 독자는 데이터와 분석을 기대할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답게, 1인 가구 세대주 여성의 연령대별 평균 연 지출 의류비부터 시작해 의생활과 관련된 온갖 통계 자료를 가져와 보여줘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분포도에서 자기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내친김에 찾아보니 이런 통계가 있는데, 나는 이번 4분기에만 3벌의 외투와 2벌의 니트를 샀다. (나도 내가 백수인 건 알아요, 하지만 당근마켓에서 누가 이자벨 마랑 코트를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놨는데 어떡해요.) 어쨌든 보고서라면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누가 써 주면 재미있게 보겠지만 나는 귀찮아서 못 한다.


내 옷장털이

컨셉이 나의 옷장 소개였다면, 나는 옷장을 전부 까뒤집어 사진과 함께 내가 언제 산 얼마짜리 무슨 옷을 갖고 있고 이걸 어느 계절에 어떤 식으로 코디하는지, 이 옷에 어떤 추억이 얽혀 있는지, 또 이 옷들을 어떻게 7평짜리 원룸에 욱여넣어 정리했는지 등에 관해 구구절절 늘어놓아야 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100벌 넘는 옷을 7평 원룸에 욱여넣는 방법은 없고, 마타주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런 컨셉의 에세이는 일본에서 종종 나오는 걸로 아는데, 이 에세이 독자들은 패션에도 남의 소비에도 관심이 많고 취향이 퍽 까다로워 언제든 작가에게 서슴없이 비난을 퍼부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 부자도 아니고 취향이 훌륭한 것도 아니니 그 독자들에게 욕하는 즐거움 외의 것은 못 줬을 거야. 

그래도, 내 옷에 관해 쓰고 싶었다면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았다.


지속가능한 의생활 

마지막으로, 컨셉이 지속 가능한 의생활을 제안하는 것이었다면 내가 가진 옷들이 내게 오기까지 찍힌 탄소 발자국의 총합을 세어 그게 휘발유로 굴러가는 차 한 대를 사는 것보다 과연 지구에 더 해로운지 아닌지 비교하는 식으로 전개 가능했을 것이다. 환경적으로 그나마 무해한 옵션, 혹은 지속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를 소개할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사실 지속가능한 의생활은 그냥 옷을 한 벌도 안 사고 낡아빠진 옷을 매일 입든 주변 사람들에게 얻어 입든 하는 거다. 미니멀리스트들이 자꾸 뭘 사면서 ‘미니멀리스트의 책장 ‘미니멀리스트의 옷장’ ‘미니멀리스트의 침대’ 이런 광고를 해 대면 신뢰가 가겠는가. 즉 이 주제에는 설득력과 진정성이 좀 부족하다. 설득력을 높이고 싶다면 차라리 사계절을 옷 다섯 벌로 난 이야기 같은 걸 써도 좋겠다. (다섯 벌도 많나…?)


이처럼 좋은 기획에는 하나의 주제, 뚜렷한 컨셉, 구체적인 대상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후는 물론, 대체 누가 이런 걸 읽고 싶어할 것인가 즉 수요의 문제인데, 나의 2021년 브런치북은 예선까지도 가지 못했으므로 이제 와 고찰하기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짚어 보니 실은 내가 이 주제에 관해 할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같다. 


여기까지가 기획의 중요성과 기본 요건이다.

다음에는 2021-2023 수상작과 참여 출판사를 비교해 보겠다. 내키면,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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