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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Jan 24. 2024

입사하기 싫어지는 면접 질문 1위

그리고 아무도 사실대로 답하지 않는

매거진 ≪무대책 퇴사자의 30일 생존기≫는 무대책 퇴사 후, 커리어 계획 혹은 무계획적 일상에 관해 30일간 쓰는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아무 대책도 없는데 답도 없이 즐거웠던 백수 생활이 곧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다행히 지난번 그 회사가 내 회사 커리어의 마지막은 아니었더라고…)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온 회사 몇 군데에 최근 면접을 보러 다녔는데, 면접에서 붙어도 여긴 확실히 안 가겠다고 생각한 회사에서 공통적으로 집요하게 던진 질문이 하나 있다. 

“전 직장 근무 기간이 짧네요. 퇴사 사유는 무엇인가요?”


퇴사 사유가 경력직 면접의 중요 질문 중 하나라는 건 안다. 나는 이 질문에 매번 적절히 대답해 왔고, 그걸로 특별히 문제가 된 적도 없었다. 나도 면접관이었던 적이 있어서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는 데도 동의한다. 문제는 이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면접관 때문에 가기 싫어지는 곳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질문의 의도는 로열티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지원자의 경력에 대해, ‘저 회사에서 6개월 일했다면, 우리 회사에서도 6개월 있다가 관두는 거 아냐?’라는 의구심을 면접관은 품을 수 있다. 수많은 경력직 면접 가이드에서는 이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지 말라고 한다. 더 도전적이고, 더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찾아 퇴사했다고 하는 게 정답이라고. 너무 짧은 재직 기간은 아예 이력서에 쓰지 말라는 조언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다. 면접에서 굳이 전 회사를 욕해서 나쁜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도 납득 가능한 답변으로 적당히 넘어갔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진실의 일부를 적당히 포장해 말했다. 그런데,


“그런 사유라면 전 회사에 직무 변경을 요청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럼 이 회사에서도 같은 일이 생기면 퇴사를 고려할 건가요?” 

같은 꼬리물기 식 질문을 던지는 면접관이 있었다. 


회사를 잘 다녀 보려던 직장인이 퇴사를 마음 먹는 데에는 그럴 만한 계기가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는. 퇴사자 개인의 성실성에 문제가 있는지 보려면, 그 사람의 경력을 살펴보면 된다. 회사 서너 군데를 매번 1년 미만 다녔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 다른 회사는 몇 년씩 다니며 성과를 냈다면, 그 한두 군데가 그 사람과 잘 맞지 않은 것이다. 


후자가 나의 경우였는데, 어떤 면접관들은 1년 미만의 경력을 이력서에 쓰는 게 천인공노할 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집요한 면접관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다른 회사에서는 다 납득하고 넘어간 답변에도 이 사람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럼 어쩌라고요, 그 회사에 다시 가서 계속 다니게 해 달라고 할까요?’ 라는 답이라도 듣고 싶었나 보다. 


사진: Unsplash의Elimende Inagella


경력자에게 던질 수 있는 하고많은 질문 중에, 퇴사 사유를 묻는 질문이 제일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1) 어차피 ‘그 회사가 거지같았으니까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지원자는 별로 없다(그 지원자가 제정신이라면). 거짓말에 근거한 문답을 길게 주고받는 건 의미가 없다. 


2) 전 직장 퇴사 사유가 납득 가능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지원자가 이 회사에 로열티를 보일 것이라는 보장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로열티를 보여줄 가치가 있는 회사에만 로열티를 보여준다. 저 회사에서는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찾아 퇴사했다 해도, 지금 지원하는 이 회사에서는 성장 기회도 연봉도 상사도 동료도 모조리 거지같아서 퇴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기 전에 면접관 회사의 퇴사율과 평균 근속 연수부터 체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3) 무엇보다 퇴사 사유에 집착하면 그 회사가 없어 보인다. 그 면접은 내가 지원한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내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해 왔는지보다, 가장 짧게 재직한 회사의 경험과 퇴사 사유가 뭔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두 번째 파생 질문을 받자마자 ‘아니… 내가 입사하자마자 그만둘까 봐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님네 회사가 문제 있는 거 아님요?’ 같은 말이나 떠올랐다. 그 회사에 가고 싶은 생각도 면접이 시작한 지 10분 만에 사라졌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했는데, 놀랍게도 이 회사는 당일에 합격 통보를 해 왔다. 그조차도 너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아무 말을 했는데 오라고 한다고??? 제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하신 건가요???


‘하 여긴 꼭 가야겠다' 싶어서 성실히 준비하고 답한 면접에서는, 퇴사 사유 같은 건 묻지도 않았다. 쉬는 동안 뭘 했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거기서 하게 될 것과 유사한 이전 경험, 거기서 얻은 인사이트에 관해 면접관과 나는 오랫동안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가 나를 고양시켰다. 진짜 그 회사에 가고 싶게 만드는 면접 질문과 경험이란 이런 것이다. 


심지어 퇴사 사유에 집착했던 그 회사는, 내가 최종적으로 가기로 한 회사에서 제시한 것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 그래도 안 가요… 그 면접관의 면접 방침이 회사 전체의 기조와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 아니지만, 이미 여러 회사를 다녀본 경력자에게는 곤조도 확실한 취향이라는 것도 있다. 면접 경험부터가 별로라면 그 회사에서 일하는 경험도 별로고, 결국 그래서 관두면서 “내가 면접 때부터 알아봤어!”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직감도 있다. 


퇴사 사유를 아예 물어보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 질문을 좀 더 스마트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 일에 관해 지원자 분이 갖고 있는 기대와 비전은 무엇이며, 그전에 하신 일은 그 기대와 비전을 어떤 면에서 충족했고 어떤 면에서 충족하지 못했나요?” 


이것은 로열티보다는 일에 관한 지원자의 관점과 애티튜드, 커리어에 관한 메타 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대체로는 이런 것들이 로열티보다 더 중요하다. 직장인이 회사에 붙어 있게 만드는 건 로열티가 아니라 회사와 일이 직장인에게 주는 가치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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