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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기록, 혹은 기억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by 은이은






구름이 어느 한 구석엔가 비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대중교통으로 멀리 서울까지 나가야 하는 Y는 준비가 분주했다. 우산은 물론 쫄딱 비를 맞을 것에 대비해 반팔 상의와 반바지까지 챙겼을 정도였다. 요즘 비가 좀 사나운가. 얼마 전부터 현대미술관 어플에서 새로운 전시가 있다고 알림이 오고 있었다. 전시 시작일이 8월 14일이었다. 기다리던 새 전시구나. 그런데 열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처럼, 가기 전까지 기대를 품고 싶었다.



덕수궁으로 갔다. 전시 제목은 '광복 80주년 기념 : 향수, 고향을 그리다'였다. 아... 재미있을까? 전시실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살짝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Y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비슷한 제목의 전시를 보고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름만 그럴듯했다고 할까?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전시에는 귀한 작품들이 많았다. 신경을 쓴 큐레이션이었다. 참고로, 전시물 중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건 김환기, 유영국의 작품만이었다.

한 번에 털기는 좀 아까울 것 같고, Y는 세 편 정도로 나눠서 전시를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시 기간은 2025.8.14.~11.9. 이니까, 독자들이 가 볼 시간은 충분하다.

Y는 며칠 전 방송 뉴스에서 앵커가 '기억의 힘'이라는 말을 클로징 멘트에서 쓰는 걸 봤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구하고 있다."는 한강 작가의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행위이다. 무위(無爲)가 아니고 유위(有爲)이다. 그것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하물며, 비극을 기억하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사진을 찍은 것과 달리 그림을 그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기억하는 일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기억을 다시 꺼내 추체험하는 일이다. 따라서 비극의 현장을 그린다는 것은 수백 번, 수천 번 붓질을 하면서 머릿속에 기억으로 가라앉아있던 그 광경을, 우리 눈을 통해 맺혔던 상을 수 백번, 수천 번 되새긴다는 일이다.

미술에 무관심했던 탓일까, Y가 기억하는 한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혹은 625 전쟁 당시 참상에 대한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그런 작품들을 만났다. 그때의 현장과 참상들이 화폭에 담겨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거나 소장되거나 하다가, 광복 80주년에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전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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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몽상가. 브릿G에서 소설을 씁니다. 언젠가, 경주에 정착할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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