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 추수, 아가몬 대백과
여름은 박물관의 비수기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랜만에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시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갈 때마다 즐겨 찾곤 했던 테라로사도 휴점이어서 Y는 난감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 아침에 챙겨 오려고 했던 백팩도 놓고 온 터라, 차분하게 앉아 노트북으로 소설을 쓰기도 어려웠다. 세상 모든 일이 그랬다. 마음먹은 대로, 예상했던 대로 전개되는 건 사실 별로 없다. 언제나 의외의 상황을 맞닥뜨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을 만난다. 아직도 마음 수양이 덜 된 거야. Y는 솟아오르는 짜증을 꾹꾹 누르면서 혼잣말을 했다. 다행히 구름이 많아서 내리쬐는 태양은 없었다.
현대미술관에서 삼청동 방향으로 길 하나 건너에 있는 조그만 카페가 있다. Y는 거기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값이 꽤 되지만 두툼하고 재료가 실해서 만족감이 있는 편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달랐던 건, 그 카페 통유리 앞에 흰색 외제차 한 대가 서있었던 거였다. 누가 저렇게 몰상식하게,라고 Y는 생각하다가 아, 저건 아마도 카페 주인의 차겠거니 했다. 예상이 맞았다. 폭스바겐 골프의 좀 오래된 모델이었는데 흰 차의 오른쪽 앞 범퍼가 차체에서 약간 들려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오래된 모델'이라고 추정한 건 버튼식이 아니라 금속 키를 꺼내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오전, 60대 이상이 되어 보이는 카페 사장님은 앞치마를 두르고 케이크 하나를 포장하다가 - 커다란 케이크였다. 피자 한 판 크기는 되어 보이는. 흰 상자에 넣었는데 그 위에는 초록색 리본을 묶었다. - 앞치마를 두른 채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고도제한 때문에 재건축은 쉽지 않은 지역이겠지만 서울 한가운데 카페를 운영하는 저 사장님의 삶은 어떤 색깔일까? 벽지가 브라질의 열대우림 같은 녹색이고 흰색 각진 테이블과 우아한 라운드 의자를 곁들인 공간, 그 공간을 창조하기로 했던 주인공은 그 공간을 영위하며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걸까?
Y는 요즘 현기증이 난다. 육상 트랙 위에 목숨을 걸고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빅테크들의 AI 전쟁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 전쟁의 양상은 글이건 수학 문제풀이건 코딩이건 창조력 겨루기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승점은 아마도 '초지능'인 것 같다. 메타의 주커버그나 오픈 AI의 샘 알트먼, XAI의 일론머스크 모두 그 '초지능'이 초래하게 될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뢰할 정보인지 출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주커버그는 어떤 불의의 사태가 발생하면 피신할 수 있는 섬을 마련해 두었다는 기사도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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