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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산'은 산 위에 있다

뮤지엄 산 | 안도 타타오와 제임스 터렐, 안토니 곰리

by 은이은





'뮤지엄 산'은 산 위에 있다. 말장난인 것 같지만, 그 조건이 압도적인 공간의 아름다움을 가능케 한다. 내가 선 곳의 경계가 끝나는 지점에 산 봉우리가 걸리고, 창으로는 자연 외에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높은 돌담으로 경계 지워진 그 공간은 성이자, 성소이다.


build_img31.png https://www.museumsan.org/


몹시 뜨거운 날이었다. 5분만 그대로 서있으면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Y가 휴가를 얻어 경기도의 한 콘도에 쉬러 갔다. 멀지 않은 곳에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쾌재를 부르며 달려갔던 거였다.


표를 사기 위해 대기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Y는 '뭘 저렇게 오래 설명을 하나... 필요 없는 걸 굳이 말하는 건 아닐까?' 하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었다. 전체를 단 번에 값을 치르는 구조가 아니고,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 공간이 두 곳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범위로 관람을 할지 정하기 위해선 충분한 이야기가 필요한 거였다. 굳이 Y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거기까지 갔는데 못 봤는데?' 하실 분이 혹시 계실까 해서다.

map_origin_big_202506.jpg https://www.museumsan.org/


'뮤지엄 산'은 크게 보면 '안토니 곰리 관'과 '뮤지엄 본관'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제임스 터렐 관'이렇게 세 덩어리로 나뉘는데, 나는 본관 - 제임스 터렐관 - 안토니 곰리관의 순서로 관람했다.


Y는 안도 타다오라는 건축가를 안다. 책으로 읽어 먼저 아는 사람이 아니었고, 제주에서 그가 설계한 유민 미술관에 들어가 보고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았다. 그러니까 머리보다 실체에 대한 감각이 먼저였던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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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유민 미술관, (우) 뮤지엄 산 (C) 은이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Y는 '뮤지엄 산'의 표를 사고 그 공간에 들어설 때까지, 그 건물이 안도 타다오의 작품인 것을 알지 못했다. 디테일한 공간의 나눔, 빛의 효과를 노린 창의 배치, 시각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좁은 복도... 이런 것들을 감각한 뒤에야 Y는 '이 건물은 아마도'라고 짐작했고 그 짐작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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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은이은


열역학 법칙이란 게 있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정연한 질서는 무질서함으로 바뀐다. 그래서 언뜻 보면 자연은 무질서한 듯하다. 늘 경계를 허물고 만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흐르면 달라진다. 그 무질서함에 시간이 질서를 부여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창조자가 부여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가지를 뻗는 모양에는 질서가 있다. 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해변 모래사장의 고운 곡선이 형성되고 누가 조성하지도 않았는데 그 앞에 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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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몽상가. 브릿G에서 소설을 씁니다. 언젠가, 경주에 정착할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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