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9 : 사업 망하면 이혼은 국룰?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데, 뭘 잘못했는지 알기는 아니?"
"집 담보대출해서 사업 키우려고 했던 것도 미안하고... 집안일 못 도와준 것도, 애들 혼자 키우게 한 것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사업 망한 것도... 미안해..."
"당신은 아직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 맨날 미안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 뭘 잘못했는지..."
사업 말아먹고 생활고까지 겪게 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와이프는 10년 넘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정답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잘못한 것으로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넘어져가는 사업을 살려보겠다고 와이프 앞으로 명의까지 돌려가며 대출받았으니 말 다한 것이다. 그 때문에 와이프 또한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렸다. 이혼하자고 하면 나는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애들 중학교 갈 때쯤이면 외국도 몇 년 나갈 계획도 잡아놓고 있었고..."
"당신은 돈만 많이 벌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그랬다. 나는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걸 아내가 알아주길 바랐다. 돈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우선순위 중 가장 최상위에 있었다. 결국 그렇게 돈을 좇다가 최하위 신용등급을 경험하고 있지만 말이다.
한창 사업이 잘 될 때는 아내가 뭔가 불만 사항이 있거나 싸울 것 같은 분위기에서 전자제품을 바꿔 주거나(밥솥, 청소기, 세탁기...) 새 차를 뽑아준 적도 있다. (그것도 최장기간 할부로...)
7년간 사업기간 중 약 2년간은 일 때문에 주말부부로 살았는데 말이 주말 부부지 한 달에 한번 집에 갈까 말까 했었다. (그 당시 프랜차이즈 일까지 벌여놓은 상태라 정신없이 살았다.)
오랜만에 집에 들러서 동네 고깃집을 가면 거기 사장님께서 항상 애 엄마가 애들 데리고 와서 싱글맘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이제 와서 나열하자면 미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아내가 도망가지 않은 건 하늘이 도우셨다.(실제 남편을 용서하고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 3년 전부터 와이프는 종교를 가졌다.)
우리는 첫째를 놓고 나서 육아의 편의를 위해 지금까지 10년간 각방을 썼고, 그 흔한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소소한 부부간의 대화도 한 적이 없었다. 전화통화는 사업에 관한 온통 나의 이야기였고 끊기 전 '오늘 애들은 별일 없었어?'와 같은 형식적인 안부가 다였다.
아내는 차라리 2년간의 주말부부 생활이 더 편했다고 했다. 남편 없다 생각하고 사니 스트레스도 없고 눈치도 안 보고 말이다. 그렇게 10년간 아내의 마음은 혼자였으며, 애들만 바로 보고 살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내가 찾은 해답은 사업이 망해서도 아니고, 집안일은 안 해서도 아닌 '혼자 두게 해서 미안해'였다.
아내는 돈 보다 행복한 가정을 원했고, 좋은 아빠 다정한 남편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었다.
쫄딱 망하고 와이프랑 같이 길에서 과일노점상을 할 때,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항상 이혼하자고 하더니, 요즘 그 얘기 안 하네?"
"내가 당신이랑 이혼한다 해도 당신 재산도 없고 애들도 당신이 키우면 엉망일 텐데 내가 키워야 할 거고 양육비도 제대로 안 줄 거 뻔한데 이혼해봤자 나한테 남는 게 없더라고..."
(실제로 와이프는 변호사 상담까지 받았는데 이혼해도 실익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어차피 망한 건 망한 거고 당신 믿어가지고 안 되겠다고, 나도 돈 벌고 뭐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한다.
그때 길에서 과일 파는 와이프 모습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어쩌다 내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회의감도 많이 가졌다. 와이프도 어떻게든 먹고살려는 남편 모습에 안타깝고 그동안 원망했던 게 미안했다고 한다.
요즘은 정말 사이가 좋다.
오늘은 정수기 영업을 와이프랑 같이 갔었다. (얼마 전 같은 회사로 옮김)
같이 다니니까 데이트하는 거 같기도 하고... 도시락 싸서 공원에서 먹기도 한다.
"사장님~! 이 제품은 취수량이 많은 제품으로 주방 근처나 조리수밸브도 가능하고요~ 고객 테이블 근체에 셀프 식수대로 쓰실 거면 좀 더 작은 이 제품이면 충분합니다. 비용대비 성능도 우수하고요, 조작이 간단해서 손님들이 귀찮게 안 할 거예요"
나의 조잘조잘 설명이 정수기 렌탈하려는 사장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 계약 성사!'
잘 마무리하고 차에 앉자마자 아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 남편 멋있더라~~~"
"아 그래? 뭐 이 정도는 기본이지~!!"
(계약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또 언제가 멋있었어?"
"수영장에서 막 손 흔들어 줄 때!"
"어?"
얼마 전부터 온 가족이 저녁 7시면 다 같이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부터 수영을 했었고 와이프는 이제 첫 강습 중인 '초급반'이다. 어제도 호흡하다 물을 된통 드셨다고 했다.
한 번씩 우리 와이프 물 안 먹고 잘하고 있나 초급반쪽 라인을 쳐다봤는데 와이프랑 눈이 마주쳤고 크게 손을 흔들어 줬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나 보다.
'이제 남편 아닌 당신 편이 되어줄게'
'다시 외롭지 않게 할게'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사업 망했다고 이혼하는 건 국룰까진 아닌걸로!!!
<이은우>
10년간 회사생활 후 창업 / 7년간 자영업자
코로나 이후 폐업 / 신용회복 2년 차
40대 초반 / 초등생 두 아이의 아빠
야간 아파트경비 / 주간 방제회사영업 투잡러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
좌충우돌 신용회복기 에세이 연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