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우 Apr 02. 2023

여유로웠다. 좋았다.

일상. 아저씨 일기장

4월 1일 (토) 만우절.



야간근무 마치고 애들한테 무슨 장난을 칠까 생각했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서 바로 잠들어 버렸다. 아들이 수영장 가자고 깨우는 소리가 분명 들렸고



" 아빠 안 일어나는데 우리끼리 가자!"



나도 수영장은 정말 가고 싶었고 아들의 짜증 섞인 말투도 들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못 들은 척 자버렸다.



오후 4시쯤 일어났는데 아직 수영장에서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히야신스도 우리 딸도 모두 휴대폰을 놓고 가셨다.



이때다! 롤을 켰다. 컴퓨터 게임을 신나게 하려고 하니 현관문 삑삑거리면서 히야신스랑 애들 시끌벅적하게 들어온다. 양손에 초밥 한가득 사 왔다. 그런데 내 몫은 없다 ㅋㅋㅋ



열어보니 양도 생각보다 적어서 나까지 먹으면 애들 배고프다고 난리 날까 봐 테이블 구석에 있던 빵 두 개 먹고 애들 먹는 거 구경만 했다.



그래도 히야신스가 육회초밥 자기는 못 먹는다고 한점 줬다. 우리 딸 메밀국수 맛있게 먹더니 다 못 먹겠는지 아빠 먹으라고 건네준다. 꽤나 양이 많았다.



딸이 엄마한테는 요즘 짜증 많이 낸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호의적이다. 엄청 귀엽다. 뉴진스 벨소리로 바꿔 줘서 그런가... 요즘 아이들 눈높이에서 원하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해본다.



저녁에 바람 쇠러 나가자고 하니 아들 딸은 피곤했는지 '나는 집돌이'를 외치며 안 가려고 한다. 엄마아빠만 나갔다 올까 하니 그래도 좋다 그런다. 유튜브보고 지네들끼리 신나게 놀겠다고...



히야신스랑 둘이서 차를 타고 광안대교를 건너는 중에 나윤권의 '나였으면' 노래를 듣는데 한 발짝 늦은 노을과 바다풍경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참 여유롭다... 너무 좋은데?"



요즘 들어 예전에 장사할 때는 못 느꼈던 여유가 있다. 금전적인 여유는 힘들어졌겠지만 분명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마흔이 넘어서 30대일 때는 없었던 인생의 내공일까... 아니면 애들만 집에 두고 나와도 지네들끼리 잘 노니까 긴장이 풀려서 일지도...



둘이서 나왔지만 마땅히 갈 때도 없었다. 광안대교를 건너 맥도널드에 가서 슈슈버거를 반값쿠폰으로 샀다.  그리고 좋아하는 드립커피를 샀다. 히야신스는 콘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 했는데 차에 손잡이과자 부스러기 흘리는 거 싫어서 500원 더 쓰고 바닐라 선데이아이스크림으로 샀다.



매장에서 오붓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히야신스는 차에서 먹자 그런다. 애들도 차에서 먹는 거 좋아해서 꼭 어디 가면 포장해서 차에서 먹는데 나는 쓰레기 귀찮아서 차에서 먹는 게 싫다.



이제는 나이가 들다 보니 갖춰진 공간에서 편하게 여유 있게 먹고 싶어 진다.  내 인생 중 운전석에서 허둥지둥 햄버거 먹었던 모습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햄버거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연예인 박소현을 보고 자기도 '소식좌'가 되겠다는 히야신스는 햄버거를 참 맛있게도 먹는다. 적게 먹기는 하지만 매우 자주 드신다. 요즘 들어 엄청 귀엽다. 딱 내가 좋아하는 푼수 때기 아줌마다. 



애들한테서 언제 오냐는 전화가 왔다. 배고프다고 해서 도넛 사갈까 물어봤더니 요즘 시크한 우리 아들 어른처럼 말한다.



"도너츠 괜찮지. 올 때 사 오면 좋고.."



흡사 우리가 맛있는 식당에 가서 '이 집 참 잘하네'라고 말할 때 나는 느낌으로 말하는 듯하다. 요즘 히야신스와 초2 아들의 이러한 시크한 말투로 많이 웃는데 얼마 전 내가 휴대폰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절정이었다.



"필요하긴 한데... 있으면 좋지."



이 으른스러운 대답은 뭐지... '아빠 나 핸드폰 사죠' 이런 대답을 기대했는데 이때부터 우리 아들 말투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다.



히야신스도 공감했는지 내가 이 사건을 말하니 웃음이 빵빵 터졌다.



"맞제? 우리 아들 너무 어른스럽지 않나?"



아들바보 히야신스는 아들얘기 할 때마다 그렇게 흥분하며 광대를 승천한다.



다시 광안대교를 건너 상록수 카페라는 곳을 갔다. 낮에 커뮤니티에서 본 카페인데 빵 사진이 맛있어 보여 생각난 김에  애들 사주기로 했다.



젊은 사장님은 빵이 마지막  딱 두 개 남았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카페는 허브민트향이 나서 방향제가 있나 두리번거렸는데 실제로 식물이 매장에 많아서 나는 향인 듯했다.



요즘 들어 개인카페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다. 카페로 돈을 벌고 싶다는 것도 있겠지만, 손님이 '너무 이쁘다' '너무 맛있다' 이런 칭찬이 듣고 싶은 것 같다.


'소식좌' 히야신스는 애들 줄 빵을 구경한다며 포장을 열어보고는 빵 모퉁이를 뜯어먹고 있다. ㅋㅋㅋ



"엄마가 조금 뜯어먹었어. 맛있게 먹어!!"


한창 먹을 때라 그런지 애들은 순식간에 빵을 먹어치웠다. 앞으로 점점 많이 먹을 텐데 식비걱정에 적당히 벌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 여유롭게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세차하러 가자!"


"응?"



아직 퇴근시간이 아니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물로 무언가를 씻는걸 매우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다. 설거지. 화장실 청소. 세차...


샤워를 할 때도 따뜻한 물 맞는 걸 좋아하지 거품을 구석구석 칠하진 않는다.



엊그제 오타니 계회표 보고 만든 만다르트 계획표에 주기적 세차를 적어놔서인가 세차하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셀프세차장은 만차였다. 반짝반짝 다들 차에 진심인 사람들이라  단순 얼룩제거가 목적인 나와는 다르다. 세차 장인들이다.



거품질 할 때는 차에 타고만 있더니 물기제거 할 때는 위생장갑까지 끼고는 부산을 떤다. 나는 히야신스의 이런 푼수끼가 너무 좋다. 아줌마가 되고 나서 더 귀엽다.



집에 돌아와서 자기 전에 예전에 사용하던 폰을 꺼내봤다. 백업이 안된 아이들 사진이 많아서 고민 끝에 네이버 마이박스 정기 결제를 신청하고 업로드를 걸었다.



그토록 찾았던 아들 출산 동영상도 찾았다.

히야신스에게 보여주면 너무 좋아할 것 같다.



애들한테 만우절 장난은 못 쳤지만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라는 말처럼 여유롭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서인지 기분이 참 좋다.



만우절마다 생각나는 멋진 형님.

장국영이 떠난 지도 벌써 20년째인가...

세월 참 빠르다.





가을에 태어난 딸과 봄에 태어난 아들

귀여운 푼수아줌마 히야신스와 함께 삽니다.


아저씨 일기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