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by 장재현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아버지 어깨도 주무르고, 청소도 하고, 잔심부름을 하고 잔돈을 받아 모은 돈을 가지고 롤러 브레이드를 샀다. 나만 없는 그 바퀴 달린 신발이 뭐 때문에 그렇게 갖고 싶었던 지, 신이 나서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더랬다.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 같다가도, 금방 사춘기가 오면서 타지 않았지만.


많이 모은 것 같은 그 돈도 롤러 브레이드 가격의 3분의 1이나 되려나.

결국 사준 사람은 아버지였지.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가게에서 제일 좋은 놈으로 사 오셨던 것 같다.

바퀴가 플라스틱이 아니었으니.


시작한 말이 민망하게도,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가족사진엔 항상 없고, 술에 취해있던 그.

술 없이 못 사는 경상도 남자.

한 문장으로 몇몇 사람들은 자기 기억에서 닮은 사람을 꺼내놓을 수 있을테다.

나는 그 덕에 술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하기도 한다.

우리 때 아버지가 다 그랬다지만, 우리 아버지는 유독 에고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 결과로 나는 사춘기를 혼자 보내게 되었고, 또 덕분에 난 죽어도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본 게 전부인 건지, 피가 당기는 건지.

나에게 분명한 그 아버지의 모습이 존재했으니까.

매번 다짐해서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게 되고, 경상도 근처를 가지 않게 되고, 남자다움에 가치를 두지 않고.

나와 같은 삶을 미래에 부여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결혼할 마음도 접고 살았다. 그는 분명 나쁜 사람이었으니까.

왜 책임을 질 수 없는 행동을 할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나도 나이가 들고

더 이상 나이 먹지 않는 어린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서툴렀구나.'

그리고

'여렸구나.'


그가 겪은 시행착오들이, 본인에게 가장 힘들었던 거네.

급작스레 어른이 되어 버려선 자기를 이해하고 알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었구나.

나라고 그에게 강요된 남자다움이 있던 환경과 시기에서도 달랐을까.


그걸 알게 되면서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다짐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시간이, 높아 보이던 사람의 곁을 지나면서

서툴렀던 그 사람의 모습을 주변인을 통해 경험하고선

다짐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과 달리 작년에 결혼을 했다.

그와는 다른 남자답다의 기준이 생겼다.

여전히 술을 마시지 않지만, 더 이상 그 행위 자체를 혐오하진 않는다.

그러면서도, 선물을 할 땐 아버지처럼 그 가게에서 가장 좋은 걸 산다.

목수였던 그의 손재주를 닮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장기를 둔다.

그 처럼 장난을 즐기고, 즐겨 드시던 따듯한 순두부가 길을 지날 때 들리던 종소리를 기억할 때면 그의 상기된 표정을 추억한다.


안암은 그와 함께 해장국을 사러 가던 보문천의 그 새벽길을 기억하며 만든 음식점이다.

내가 싫어하던 아버지도, 좋아하던 아버지도 내게 짙은 영향을 남겼다.

따뜻한 순두부를 좋아하는 나는,

더 이상 그와 닮은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10년을 더 살았다면, 20년을 더 살았다면 실패한 아버지가 아닐지 모른다.

서투른 채로 끝난 삶에 더 이상 시도할 수 없었으니 그 기억에 풋내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더 큰 실패로 남을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어쨌건 그는 제대로 된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게 조언을 해 줄 어른이 있다면, 할 땐 참 궁금하다.

그가 지금 내 곁에 있다면 내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그 어린 아버지 곁에, 내가 세상에 온다는 것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을까.

그는 어땠을지 알았다면 좋았을걸, 묻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


그는 며느리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아들의 자식에게 어떤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을까.

혹시, 순두부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푼수처럼 손주 자랑을 하고 다니는 장난꾸러기 할아버지가 되진 않았을까.


가끔 그가 궁금할 땐,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 밑에서 롤러 브레이드를 숨기고 올라오던 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우리 아버진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자식에게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줘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아마 가게에서 가장 좋은 롤러브레이드를 사서 숨겨 들고 오는 사람이라고, 순두부 아저씨가 지나가면 설레는 표정으로 순두부를 사 와서 나눠먹던 사람이라고 설명하겠지.



그리고, 할아버지 아빠랑 똑같네,라는 말을 듣게 될 거다.

나는 분명, 아버지와 닮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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