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깊고 깊픈, 섬집아기
엄마가 차려준 밥상 위에 간이 세게 벤 고등어를 먹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밥투정을 부렸더랬다.
삼치가 아니면 고등어 밖에 올라오지 않던 밥상에, 나는 온 세상 물고기 중 먹을 수 있는 게 그뿐인 줄 알았다.
큰 의미 없었던 이 과거는 요리사가 되어서야 내게 돌아왔다.
애써 돌아보지 않았던 내 과거는 다른 이의 과거와 만나, 끝내 나의 빈곤함을 끄집어내었다.
탓하지 않았던 내 과거는, 빈곤한 유년시절의 상징이 되었다.
출발선이 다르구나.
열심히가 가진 가치는 결국 이 현실을 다르게 만들 수 없구나.
고등어는 오랫동안 내게 벗어나지 못할 후유증이기도 했다.
항상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콤플렉스.
경험이 전부인데, 그 전부인 경험조차도 부유했던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함에
항상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콤플렉스.
먼지가 쌓인 그 콤플렉스의 끄트머리에 아주 살짝 묻어있는, 부모의 경제력에 대한 말하지 못할 아쉬움.
내 미래는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건 아닐까,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던 그 모든 순간을 지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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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지 못할 경험들을 상대하려 했다.
그래야만 했고 여전히 그렇기에, 그래서 항상 주저앉았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알고 있는 정보를 간절해 하는 상대적인 내 주제가 무력했고,
그들이 즐겁게 경험했던 내용을 듣고 치열해졌고,
그들의 여유 있는 행동에 내 절박함이 허무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로 인해 나의 일상은 저주를 받았고, 그 저주는 내 성실함을 바보로 만들곤 했다.
달라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박함. 어리석은 절박함. 그게 세상인데 받아들이라고 이해하는 척하곤 했다.
가끔 나의 귀찮음을 합리화해야 할 때마다, 나는 쉽게 세상 탓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내게 등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핑계들을 허무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내 앞에서 먼저 그 길을 걷는 사람들. 불구덩이처럼 보이는 저 길에 자기 방식대로 디뎌내는 사람들.
존경했던 그들의 발치를 쫓아보니, 멀찍이 서 노심초사 하는 엄마를 봤다.
내가 콤플렉스라고 기억했던, 부끄럽다 기억했던 일상을
절박하게 지켜냈을 엄마가 그 끝에 서 있었다.
등이 푸르기에 억지로 먹어야 했던 그 생선엔
탓을 했던 엄마와, 내게 미안해했던 엄마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어른으로서의 엄마가 모두 담겨 있다.
#2.
날이 좋아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를 보고 생각을 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그저 거추장스러웠던 느낌만 남아있고, 왜 굳이.. 같은 기억도 남아있다.
그냥 100원짜리 동전에 100이라고 쓰여있는 게 별생각 없었던 것과 비슷해 기억이랄 것도 없었는데,
그들의 삶에 가까워져서야 그 삶이 디테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힘듦을 쌓아 올렸을 그들의 현재가,
볕이 있는 날 아이에게 볕을 보여줄 수 있도록, 또 그 기억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그 작은 웃음을 지켜낼 수 있도록 힘들여 온 그 삶에 어떤 역사가 남아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켜켜이 쌓아 올린 그들의 삶이 지닌 무게를 존중하게 되고, 그걸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나의 역사에서 그 일들을 들여다볼 수 있던 계기는 아내다.
나만 생각하면 되었던 나의 시간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기 위한 노력으로 바뀌어야 했고,
나는 그제야 현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게 아득히도 멀기만 했던 울릉도의 한 소녀가 내 인생에 들어와 그 작은 몸짓으로 내 손을 잡고, 또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부터.
그 사람의 시선으로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의 삶이 구현한 세상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함께할 사람과 볕을 보고 유모차를 끌기 위해 지켜내야 할 일상의 무게를 받아들였다.
그제야, 나는 타인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서야, 나의 소중한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차마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우리 엄마의 역사.
#3.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엄마가 구워줬던 생선은 짠 것 같았지만 뼈가 발라져 있었고, 좋은 밥은 내가. 눌은밥은 엄마 몫이었다.
아내는 내게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
그녀가 한 음식 역시, 그녀의 어머니가 해왔던 음식이었다.
그녀가 줄곧 먹어왔을 된장국은, 내겐 생소하지만 익숙했고, 그 맛이 참 좋았다.
꽁치가 들어간 엉겅퀴 해장국.
그 역시 그녀의 엄마가 전달했을 사랑이겠다.
사랑.
아내 역시 내게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었다.
둘은 내게,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을 내주었다.
엄마는 내게 자신의 젊음을 내주었고, 내 아내 역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내게 내주리라.
내가 이해할 엄두조차 못낼 엄마의 위대함을, 내 아내는 이뤄내며 살아갈 테다.
나는 그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 내어준 것들을 생각한다.
그제야 내게 등 푸른 생선들은, 콤플렉스가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 그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또 다른 것으로부터 공통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그래서 그녀의 고향으로부터, 내가 가진 엄마의 기억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깊고 깊픈, 그곳에서 먼 곳에 있는 내게 전달된 이야기를
그 익숙하지만 지나고서야 특별한 기억들을
내게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내게 너무 소중해지고서야 전달하려고 한다.
깊고 깊픈 바다처럼, 깊고 깊픈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그 기억은 이제 내게 콤플렉스가 아니라 자랑이도록.
내가 할 줄 아는 것들로 이야기하고,
멀리멀리 자랑해보려 한다.
깊고 깊픈 나의 기억으로부터
깊고 깊픈 고향으로부터
아득히 깊었던, 엄마의 헌신으로부터.
나의 자랑스러운, 그 기억으로부터.